양재우 교수(전자공학)
연말이 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금년에 꼭 마쳐야 할 일 중 마무리 되지 않은 일이 너무 많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변이 뒤숭숭하다. 또 좌절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도 들고 내 능력에 대한 회의도 생긴다. 누구는 타협하라고 하고, 누구는 순리에 맡기라 한다.
아마도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과학자인 스티븐 호킹은 '도대체 이 세상의 시작은 무엇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겼을까'에 대한 질문을 그의 책 『위대한 설계』에서 던지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이 세상의 시작은 빅뱅으로 불리는 우주 대폭발로부터 생겨났고 그로부터 인간세계를 포함한 전 우주가 필연적으로 발생했다고 한다. 처음엔 소립자가 원자, 분자, 무기물, 유기체, 미생물,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 순으로 순서적으로 생겨났다. 그 과정에 여러 가지 변수가 있었지만 그 모든 시나리오는 과학적인 법칙에 의해 단 한 가지도 예외를 허락하지 않고 진행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사랑, 창조, 번민, 투쟁, 타협, 질시 이 모든 것도 그 결과일 뿐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많은 것은 결정되어 있고 확률에 따른 변수가 있을 뿐이다. 만약 원자나 미립자 레벨에서 내일을 설계하거나 예측한다면 그 계산이 너무 복잡해서 우리 생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내일을 구상하는 데 하루 이상이 걸리는 것은 사용 불가능한 방법이다. 간단하게 어림으로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미립자 단위가 아닌 물질 레벨을 넘어 정신과 영혼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의지가 과학적 필연이라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친한 친구가 칠레로 파견을 나갔다. 이는 우리 정부가 외국에 정보통신 기술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었다. 그에 의하면 칠레인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과 삶의 목표가 다르다고 한다. 그들에게 삶이란 더 나은 부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가족과 자신, 사회가 더 즐거운 추억을 공유하기 위한 것이란다.
그 친구가 하루는 우리 대학의 연구센터에 국제 공동과제를 통해 '타이어 이상 측정 장치'를 개발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타이어 이상 측정 장치'는 갱도에 들어간 차량의 타이어가 갱도 안에서 고장이 발생하여 서는 일이 없도록 타이어의 이상을 사전에 무선통신으로 알려 주는 장치를 말한다. 갱도의 깊이가 너무 깊어 차량 한 대가 갱도에서 고장이 나도 이를 수습하는 데 며칠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 장치의 개발이 검토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장치의 개발이 실행되지는 않았다.
얼마 전 칠레의 지하갱도에 광부 33명이 갇힌 일이 있었다. 지하 622m 절망의 구덩이에서 그들은 희망과 용기를 버리지 않았다. 세계가 그들을 구출하는 장치를 개발한 덕분에 69일만에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광부 모두를 극적으로 구출해낼 수 있었다.
구출 후 이를 총 지휘하던 칠레 대통령이 자랑스럽게 외쳤다. "매몰된 광부들의 서사는 우리 국가의 영혼을 밝혀 주었다."
위기에 영혼은 빛난다. 우리의 영혼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내 영혼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동아대학보 제1084호 (2010. 12.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