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지침보다 정(情)이 필요한 나라
[시론]지침보다 정(情)이 필요한 나라
  • 이성미
  • 승인 2011.04.07 1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희 교수
교육대학원 가정교육 전공

일본의 지진 대참사를 보면서 어떤 이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기본적인 욕구를 절제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양보했던 일본인들에게 감동을 느꼈다. 어떤 이는 매뉴얼대로만 행동하고 합리적이고 융통성 있는 위기대응을 못하는 일본에 대해 벤처 리더십의 부족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른 이는 자국내 국민이 생존을 호소함에도 불구하고 벌떼같은 도움의 움직임이 없는 일본 내 분위기에 놀라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일본은 일사불란하게 자체 내 지침대로 움직였다. 이들은 똑같은 유니폼 속에서 동일한 움직임으로 그들만의 방식으로 순차적이고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지원통로가 한 곳이다 보니 도움이 곳곳에 미치기는 어려울 터였으나, 이들은 외부의 지원을 거절했다.

최근에는 지침이 없다며 일본이 각국의 물품을 거부한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지침이 있는 것은 안정감과 편리함을 주지만 때로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자원개발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건설과 동시에 붕괴를 생각해야 하는 섬나라 일본에서 산다는 것은, 문제해결을 위해 철저한 정서은폐를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흔들릴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강렬한 불안이 내재되어 이들은 마음(heart)보다는 머리(brain)에 치중하여 철저하게 준비하고 지침을 만들어 왔다.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들은 일본인에게 작은 '개인'보다는 보다 큰 '모두' '함께' '하나'를 강조하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전체 속에 소외된 작은 개인들은 일상에서 철저하게 '나'를 챙기며 각 '개인의 최고성'과 타협없는 자부심을 통해 스스로를 지키고자 한다. 이는 결국 독보적이고 자폐적이기조차 한 자생적 생존방식으로 그 이중성(二重星)을 굳혀왔다.

일본인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효도하라(親孝行)', '정직하라(正直)', '모든 이가 단결하여 크게 이루자(大和魂)' 등을 기본으로 배워왔다. 학교에서는 매주 한 시간 정도 수신(修身)시간을 가지고 정신교육을 하기도 했다. 상급학생이 동네의 동급생과 하급생들을 일정한 장소에서 만나 줄서서 손을 잡고 등교하는 것은 일상이었으며, 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뒷모습과 등에 매달린 책가방이 일렬로 늘어서 교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또한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이웃마을 사람들과 경합을 벌이는 것도 일상적인 행사들이었다. 작은 힘을 모아 큰 힘을 만들자는 이들의 정신은 일본의 건국정신이 되었으며, 정직하게 부모에게 효도하고 주변을 살피며 같은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하는 이러한 가정교육의 밑바탕에는 일왕을 향한 일심(一心)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지침이 시작된 한 곳을 향하는 가치와 문화는 개인을 용납하지 않으며 일사불란한 체제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그 흩어짐 없는 규칙성과 지침, 그 안에서 자생하는 타협불가의 개인적인 독보성은 변화와 융통성이 필요한 맥락에서는 걸림돌이 된다. 요코하마시립대학의 모 교수는 현재 일본이 보이는 폐쇄성과 비현실성을 무책임과 답답함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정(情)을 배제한 철두철미한 지침과 대비가 바람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타협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진정으로 함께 하는 세상에서 정(情)이 필요한 섬나라 일본은 이제 그들이 내세우는 합리성마저 잃어가고 있다.

동아대학보 1086호(2011.04.0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부산광역시 사하구 낙동대로550번길 37 (하단동) 동아대학교 교수회관 지하 1층
  • 대표전화 : 051)200-6230~1
  • 팩스 : 051)200-62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영성
  • 명칭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제호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0
  • 등록일 : 2017-04-05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이해우
  • 편집인 : 권영성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