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정 (다우미디어센터 취재보도부장)
학창시절 친구가 하나 있었다. 친한 정돈 아니지만 인사와 농담 정도 주고받는, 말 그대로 '같은 반 친구'. 작고 귀여운 외모에 활발하고 싹싹한 성격을 지닌 그녀는 학급 내에서도 꽤나 인기가 있었다.
필자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7월의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 대화를 하던 중 뜻밖의 이야기를 접했다. "걔 있잖아 왜, 너랑 같은 반이었던 박ㅇㅇ, 걔 자살 했대". 대학 입학 후 친구도 많이 사귀고 학교에 적응도 빨리 했지만 남모를 우울증에 시달렸단다. 졸업 후 서울로 진학했다는 소식을 끝으로 잊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학창시절 누구보다 밝았던 그녀이기에 자살소식은 필자에게 큰 충격이었다.
지난달에는 스포츠 아나운서가 투신자살한 지 닷새도 채 되지 않아 한 남자가수가 우울증으로 목을 매 언론이 떠들썩했다. 특종을 건진 듯 흥분한 연예뉴스의 앵커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같은 반 친구'가 갑자기 생각난 것도 이 까닭이다.
몸이 으스러지고 숨막히는 고통을 감내하고 택한 그들의 자살은 생전 겪었던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말해준다.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동안 왜 주위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는 남에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개인의 특성에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나약한 부분을 숨기려 애쓴다. 혹시나 다른 사람이 눈치 챌까 아파도 "괜찮다", 힘들어도 "안 힘들다", 애써 웃어 보인다. 그래서 가면우울증(스마일마스크증후군, 우울한 기분이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겉으로 별로 드러나지 않는 우울증)을 지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으로 내향적인 경우가 다수다. 하지만 그들의 가면 뒤에는 걷잡을 수 없는 우울증세가 그들을 억누르고 있다. 가면우울증은 기존 우울증과 비교해 타인과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증세가 드러나지 않으며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데 더 큰 위험요소가 있다. 답답한 일상에서 사소한 것들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하며 찾아오는 것이 바로 가면우울증이다.
대학생들은 어느 세대보다 열정적이며 활기차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마냥 활기찬 대학생으로 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취업과 대인관계, 비싼 등록금, 심지어 부족한 용돈과 당장 내일 해야 할 발표 과제까지. 대학생들의 내면엔 우울한 현실의 무게가 그들을 억누르고 있다. 신체적으로 가장 건강한 20대 청춘들이 사실은 누구보다 가면우울증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가면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것이 절실하다. 대화를 통해 아무리 작은 스트레스 요소라도 없애버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하자. 그리고 들어주자. 아침마다 부랴부랴 출근하시는 부모님, 같이 수다를 떠는 동생, 수업을 함께 듣는 친구,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생활에 지쳐버린 '나'까지. 자신을 포함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웃는 게, 웃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도윤정 기자
hakboyj@donga.ac.kr
동아대학보 1088호(2011.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