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인용과 표절 사이
[기자수첩]인용과 표절 사이
  • 서성희
  • 승인 2012.05.1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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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는 어디에서도 자료를 무단 도용하지 않았음을 보장한다'는 조항에 서명한 적이 있는가? 기자는 단 한 번도 이러한 조항을 본 적이 없다. 그 누구도 이와 같은 조항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의 대학생들은 과제를 제출할 때마다 이 조항에 서명을 해야 한다.

과제와 인용은 떼려야 뗄 수 없다. 담임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하기 위해 두터운 전과를 뒤적거리며 답을 그대로 옮겨 적던 초등학교 시절을 거쳐, 인터넷이라는 깊은 바다를 헤엄치며 과제를 했던 중·고등학교를 지나왔다. '큰 학문'을 가르치는 대학교에 입학하자 과제의 깊이는 깊어만 갔다. 교수님들은 인터넷과 논문, 참고도서 등 방대한 영역에서 자료를 찾길 원했고, 학생들은 그 요청에 따랐다.

미국 하버드대 신입생들은 4시간 동안의 표절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는다. 정부가 학위를 주는 프랑스에선 학위논문을 표절하거나 졸업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할 경우 5년간 모든 국가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또 미국 버지니아주립대는 표절이 드러날 경우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뒤 사안에 따라 최고 무기정학까지 내리기도 한다. 게다가 표절 사실은 성적표에 기록되기 때문에 다른 대학으로의 편입도 힘들어진다.

기자는 이번 학기 전공과목을 수강하던 중 처음으로 인용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담당 교수님은 문학작품을 분석하는 과제를 내면서 "이 작품을 분석할 때에는 꼭 자료의 출처를 적어야 한다"고 공지했다. "만약 이걸 적지 않으면 점수를 깎을 것"이라는 엄포와 함께 손수 출판사, 출판년도 등 인용사항을 알려주었다. 그제서야 기자는 이제껏 해왔던 작품분석과 독후감 과제를 통틀어 처음으로 출처를 기재하게 되었다.

문득 '이제껏 내가 해왔던 과제들은 전부 인용이었을까, 아니면 표절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간 제출했던 과제들이 표절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은 다분했다. 단지 아무도 내게 표절 의혹을 제기하지 않아 운 좋게 피해갔을 뿐이다. 거기다 저작권 표시가 없어도 저작물을 만든 순간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게 된다는 사실은 기자를 당황케 했다. 블로그나 카페 등 많은 사이트에서 인용한 문장이나 구절들까지도 어쩌면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최근 논문표절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누군가의 피와 땀, 연구 성과가 집대성된 논문을 표절한 것은 부인할 여지가 없는 잘못이다. 그러나 그들을 비난하기 전에 기자는 그동안 해왔던 과제들을 돌이켜봤다. 기자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지 않아 그들을 쉽게 비난할 수없다. (※마지막 문장의 서두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서 인용했습니다.)

홍슬기 기자
hakbosg@donga.ac.kr

동아대학보 제1095호 2012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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