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좌문도]피아노 치는 여자
[동좌문도]피아노 치는 여자
  • 서성희
  • 승인 2012.06.0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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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음악학) 교수

 
"무슨 전공이세요?" "저는 피아노 전공자예요, 클래식이요." "우와~"

5살부터 피아노를 친 나는 이런 대화를 조금 과장해서 한 50번은 한 것 같다. 가끔은 사람들의 감탄에 어깨를 으쓱하거나, 우아하고 고상한 느낌으로 미소 지어준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음악 전공자들은 워낙에 어려서부터 음악교육을 받는 터라 전공을 선택할 때 '내가 하고 있는 음악이 좋다', '음악으로 먹고 살겠다'는 등의 이유를 대곤 한다. 어떤 이는 '대학 가야 하니까 어릴 때 하던 음악이나 할까' 하는 마음에 음악의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필자는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어느 분야이든 어떤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진리는, 말 그대로 진리일 것이다. 그러나 좋아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말 속에는 단순히 '좋아한다(like)'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음악을 위해서 참으로 많은 고통을 인내해야 하며 치열한 경쟁도 이겨내야 한다.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드레스를 입고 우아한 음악을 연주하며 받는 관객의 엄청난 박수세례는 바로 인내, 고통, 경쟁 등 이겨내야 하는 모든 고난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인고의 과정은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의 예전 인터뷰가 생각난다. "사람들은 즐기면서 하라고 쉽게 말하지만 절대 즐길 수가 없어요.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지…. 너무 힘들어요!" 올림픽에서 펼쳐진 김연아 선수의 손짓 하나에, 표정연기에, 엄청난 기술에 우리는 탄성과 눈물을 쏟아냈다. 하지만 우리는 화려한 아이스링크 이면에 그녀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음악은 인간의 수많은 감정을 표현한다. '희노애락(喜怒哀樂).' 어떻게 보면 간단한 4글자이지만 음악가는 단 몇 십 분의 음악 속에서 인간사의 오만가지 감정을 이끌어 내어 관객으로 하여금 온몸으로 부딪칠 수 있게 하는 엄청난 직업인 것이다. 요즘은 일반인들이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편이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을 어렵게 느끼고 음악회에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하지만 음악회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곳에서 얼마든지 음악회를 즐길 수 있다.

우리 대학교 음악학과 학생들은 학기 중 매주 목요일마다 구덕캠퍼스 석당홀에서 연주수업을 하고 있으며 매년 합창, 오케스트라, 현악앙상블, 피아노앙상블, 졸업연주, 교수음악회 등 수많은 연주를 한다. 학생들이 연주할 때 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객석의 반응도 자주 살펴본다. 지겨워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만 어떤 이는 마치 무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자세로 친구의 연주를 시종일관 경청한다. 한 연주자의 학부모는 자식의 연주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필자 역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초등학생 피아노 콩쿠르에서 '꼬마 피아니스트'의 연주에서 엿보이는 아이들의 순수함과 진실성에 가슴이 뭉클하고 짠해졌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30년 넘게 피아노를 쳐 오면서 단 한 번도 피아노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 해 본 적이 없다. 피아노는 곧 내 길인 것이다. 사람들이 나의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뒷모습을 보지 못할지라도, 사람들이 음악을 이해하지 못해도, 필자는 오늘도 구덕캠퍼스 연습실에서 들려오는 그 음악에 또다시 감동받는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을 몹시도 사랑한다. 나는 피아노 치는 여자다.

동아대학보 제1096호 2012년 6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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