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발언대]카이스트와 심부름하는 아이
[독자발언대]카이스트와 심부름하는 아이
  • 서성희
  • 승인 2012.05.10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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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 소식이 또 다시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자살한 학생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 보고는 같은 대학생으로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카이스트(KAIST, 한국과학기술원)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 집합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이스트에 모인 학생들은 세계 최고수준의 과학자로 성장하여 우리나라의 과학을 선도한다. 최고의 과학자 양산을 위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의 전략은 '경쟁'이었다. 하지만 매우 천박한 방식의 경쟁이었다. 서 총장은 학점이 3.0이상이면 등록금이 전액 감면되는 반면, 3.0미만이면 0.01점당 수업료를 6만3천 원씩 내도록 했다. 쉽게 말해, 공부를 못하면 돈을 내라는 것이다.

경쟁이 개인의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사실이다. 경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노하우는 자기 계발의 밑거름이 된다. 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면 집단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한가? 눈앞의 경쟁에 치여 정작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없었다는 한 카이스트 학생의 말은 무한 경쟁이 낳는 폐해를 그대로 보여준다.

사회학에서 꼽는 대표적인 사회병리현상 중에 '목적전치 혹은 목적전도현상'이 있다. 쉽게 말해서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것이다. 경쟁은 성장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돼야 한다. 그러나 이는 뒤바뀌어버렸다. 학생들은 당장의 경쟁에 집중하느라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겨를이 없다. 또 책을 읽거나 사색을 하는 등 최소한의 여유조차 누리지 못한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어쩌면 벌금을 내지 않기 위해 카이스트 학생들은 오늘도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문제는 최고의 인재들이 학문을 위해 탐구하고 사색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벌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공부한 학생들에게서 어떻게 창의성과 독창성, 진취성 등을 엿볼 수 있겠는가? 공부를 하는 목적과 수단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한 아버지가 심부름하기 싫어하는 아들에게 용돈을 조건으로 걸고 심부름을 시켰다. 아들은 열심히 심부름을 하겠지만 괴로울 수밖에 없다. 용돈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학생들을 보면서 심부름 하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더 이상 심부름 시키는 부모도, 그리고 괴로워하며 심부름하는 아이도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박창혁(토목공학과 1)


동아대학보 제1095호 2012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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