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가르치며 희망을 얻다 - 다문화가정 희망공방 일일교사 체험
한글을 가르치며 희망을 얻다 - 다문화가정 희망공방 일일교사 체험
  • 이성미
  • 승인 2011.06.14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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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서구 초장동에는 평일 오후 2시만 되면 '가갸거겨'를 외치며 한글 공부에 매진하는 다문화가정 주부들이 있다. 지난달 30일 기자는 일일 보조 교사가 되어 그들을 만났다.


▲ 다문화가정 주부 학생이 교재를 들고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을 하기 전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공방을 사전 방문했다. 희망공방의 학생은 외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여성들이다. 이 희망공방은 초장동 주민자치회와 서구청의 지원으로 다문화 가정을 위해 설립됐다. 이곳에서는 이주여성들의 자립을 위한 기술교육에 중점을 두어 분야별 전문 강사와 함께 목재를 이용한 가구 만들기를 배우고 한글 수업, 수화 수업, 컴퓨터 수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 백장미 기자가 동화책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기자는 다양한 수업 중 한글 수업의 일일 교사를 체험하기로 했다. 일일 교사지만, 그들에게 기억에 남는 내용을 전해주기 위해 수업 전날 꼼꼼하게 준비를 했다. 한글 수업을 진행하는 여성문화회관 정남이 교사는 "학생들 모두 대여섯살 된 자녀가 있으니 수업을 통해 알게 된 재밌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도 전해 줄 수 있고, 그들 또한 한국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수업을 주로 하고 있다"고 조언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전래동화를 통해 우리나라 문화를 소개해 주자'는 수업 계획을 세웠다. 그들에게 소개해줄 우리나라 전래동화로는 '콩쥐팥쥐'를 선정했다.

드디어 수업 당일, 한손에는 '콩쥐팥쥐' 동화책을, 다른 한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그 곳을 다시 찾았다. 수업에 대한 두려움에 쉽사리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서성이며 맴돌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필리핀에서 온 엘리샤(36) 씨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문을 열며 "얼른 들어오세요"라고 어눌한 말투로 상냥하게 맞이했다.

약간의 긴장을 풀고 재빠르게 수업 준비를 시작했다. 한국의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준비한 사진들을 칠판에 붙이고 그 밑에 간략한 설명을 덧붙였다.

오후 2시, 가벼운 인사와 함께 수업이 시작됐다. 기자의 말에 귀 기울이려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고맙기도 했지만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콩쥐팥쥐' 이야기를 시작하며 어느 때보다 발음을 정확히 하고자 애썼다. 이야기 속 단어들을 작은 수첩에 삐뚤빼뚤 한 자씩 써내려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단어 하나하나 잘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수업 중간에 학생들은 '콩쥐팥쥐'에 나오는 '원님'이라는 단어나 '이방', '괭이', '항아리' 등이 무엇이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했다. 임기응변으로 지식을 동원해 설명했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는지 학생들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자신들의 모국어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당황하며 불안해하던 기자의 모습을 보며 정남이 교사는 웃으면서 학생들에게 쉽게 설명했다. 듣고 있던 학생들 중 다른 학생들보다 한국어 실력이 뛰어난 노나(필리핀, 34) 학생까지 모국어로 다른 학생들에게 유창하게 설명을 하며 수업을 도왔다.

우여곡절 끝에 이야기를 마친 기자를 향해 학생들은 "재밌었다"며 박수를 보냈다. 수업을 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외국인이기 이전에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을 사랑하고자 하는 학생들이었다. 아직 서툰 말투와 서툰 받아쓰기를 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한글을 배워 나가는 것이 즐거워 보였다.

20분가량의 짧은 수업이 끝난 후 기자는 '콩쥐팥쥐' 동화책을 희망공방 학생들을 위해 기증했다. 우리나라로 귀화한 김민서(베트남, 26) 학생은 이 책을 기증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자신이 제일 먼저 들고 가겠다며 "오늘 집에 가서 우리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 다문화가정 주부 학생이 한국어를 읽고 있다.

하루 동안 일일 보조 교사를 하면서 기자가 만난 다문화가정 주부들은 나와는 다르게 생긴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한국 노래를 좋아하고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학생이자, 아이들을 사랑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한편, 초장동사무소 관계자는 "초장동 외에도 다수의 동에서 다문화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곧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의 문화까지 포용할 수 있는 따뜻한 나라가 되는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백장미 기자
hakbojm@donga.ac.kr
동아대학보 1088호(201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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