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愛> - 잊힘에 대하여
<오월愛> - 잊힘에 대하여
  • 서성희
  • 승인 2012.05.1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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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신군부의 계엄군에 맞서 광주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은 '스스로' 총을 들었다. 타의가 아닌 스스로의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계엄군을 향해 전진했다. 광주시민들은 숭고한 희생이 어떤 것인지 직접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 숭고함만을 기억했다. 희생이란 이름 뒤에 숨겨진 아픔과 절망이 얼마나 큰지 우리는 알지 못했다. 영화 <오월愛>는 숭고한 희생의 이면에 가려, 잊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기록은 정교해졌지만 기록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고 있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의미심장한 문장 하나를 던졌다. 이 문장은 작은 돌이 돼 기자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기자에게 광주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에 중요한 사건이었을 뿐, 누가 그날을 겪었고 누가 살아남았는지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월愛>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폭로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고유명사 하나에 많은 사람들이 매몰돼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대한민국이 기념해왔던 그날은 명확하고 구체적인 사실이 아니라 단지 추상적이고 모호함으로 구겨진 한 단어였다. 그곳에 주인공은 없었다.

"아무 쓰잘데기 없어." 과일을 파는 아주머니의 넌더리가 담긴 이 말은 그날을 겪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듯 했다. 영화는 광주시민들이 가지고 있던 조각들로 광주민주화운동의 퍼즐을 하나씩 완성해나갔다. 카메라 앞에서 담담하게 그 때의 일들을 풀어내는 그들의 표정은 가슴 속에 간직한 쓰라림을 애써 참아내려는 노력처럼 보였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발포를 감내한 사람들이라고 보기에 그들은 지극히 평범했다. 자장면을 팔고, 시장에서 과일을 팔고, 작은 전파사를 운영하는 이들이 어떻게 정규군을 상대로 총을 들 수 있었을까.

계엄군의 폭력적인 진압 속에서도 굳건했던 광주시민들의 연대가 무너질 조짐이 보였다. 2005년 아시아문화전당 공사가 결정되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의 마지막 격전지이자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전남도청 별관 철거가 공시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5·18을 겪은 이들은 별관을 철거하고 새로운 상징물을 건축하기로 한 측과 별관을 내어줄 수 없다는 측이 나뉘어 대립하기 시작했다. 계엄군에 대항해 힘을 합쳤던 이들은 이제 서로 삿대질을 하며 거친 말들을 내뱉는 사이로 변해 버렸다. 그들이 옛 전남도청으로 갈등하는 것은 잊히는 것이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 그날을 기억할 수 있는 매개체가 없어질 것이라는 그 두려움이 죽음을 불사하고 항전했던 그들을 갈라놓은 것은 아닐까.

옛 전남도청에서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는 "잊히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했다. 그날이 줬던 상처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도 있었다. 그는 어쩌면 잊히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잔영은 아직까지도 그날을 겪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점점 잊혀가고 있다. 그들이 감내했던 폭거와 비난을 딛고 우리는 지금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광주민주화운동이란 위대한 무대에 다시 그들이 설 수 있도록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5월을 사랑하자. 잊힘을 두려워하는 그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도록.

김무엽 기자
hakbomyk@donga.ac.kr

동아대학보 제1095호 2012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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