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 스크린에서 펼쳐진 파란만장 굿 놀음
<파란만장> - 스크린에서 펼쳐진 파란만장 굿 놀음
  • 서성희
  • 승인 2012.06.0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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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홀로 밤낚시를 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들려온 방울 소리. 힘겹게 들어 올린 낚싯대 끝에는 고기가 아닌 하얀 소복 입은 여자가 걸려 있다. 놀라 기절했던 남자가 깨어나자 귀신인지 사람인지 모를 그녀가 남자와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 곧 그녀의 입에서 "아빠" 하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영화는 박찬욱, 박찬경 형제가 감독을 맡은 단편영화 <파란만장>이다. <파란만장>은 스마트폰 영화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모 기업이 광고를 목적으로 이 영화를 후원했다는 비판이 있었으나 <파란만장>이 영화 제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스마트폰 영화의 등장은 충무로로 대변되는 한국영의 스펙트럼을 대중을 향해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파란만장>은 한 편의 씻김굿이다. 굿은 망자를 위로함과 동시에 산자들의 슬픔을 헤아린다. 또, 구천을 떠도는 원혼을 좋은 곳으로 보내고 남은 자는 슬픔을 거두어 다시 살아가게 한다. 낚시터를 배경으로 삼은 것은 어쩌면 물의 신앙적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불교에서는 저승으로 가는 도중에 삼도천(三途川)이 있다고 믿었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스틱스강이 지상과 저승의 경계를 이룬다고 믿었다. 또, 힌두교에서는 갠지스강의 물이 사자의 혼을 승천시킨다고 믿었다. 이러한 물의 종교적 의미는 영화의 작품성을 한층 끌어올린다.

남자의 낚싯대에 달린 방울은 흡사 무당의 그것과도 같다. 기절했던 남자가 정신을 차리자 여자는 남자의 복장을 하고 있고, 남자는 소복을 입고 있다. 이 대목에서 관객들은 그녀가 왜 이곳에 왔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상에 놓인 생선포, 막걸리는 보다 친절한 설명이다.

사연을 인물의 입으로 구구절절 늘어놓기 보다는 극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것 또한 이 영화가 가지는 매력이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가 부르는 노랫말 하나에도 남자의 사연이 담겨있다. 홀로 낚시하는 사내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흐르듯 지나가는 일기예보 방송은 그가 세상을 떠나게 된 이유를 말해준다. "강바닥 밑에서 따뜻하게 잘 있다"는 한마디로 그의 죽음은 현실로 다가온다.

이 굿판을 관람하는 또 다른 백미는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다. 배우 이정현의 신들린 연기는 관객을 압도한다. 박찬경 감독은 낚시 바늘에 걸려 두 주인공이 엉기는 장면에서 "(이정현이) 연기를 너무 잘해 인형을 가져다 놓고 촬영하는 듯 했다"고 호평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에 모두 출연한 배우 오광록의 연기 또한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가 가진 아우라는 영화의 분위기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혹자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관객의 역할도 중요하다. 영화 <파란만장>은 제작과정에 스마트폰이 쓰였다는 이유로 하나의 기사거리, 일시적 유행으로만 조명되기 쉽다. 그러나 '렌즈'로 영화를 판단하는 사람이 올바른 관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관객은 스마트폰 너머에 있는 우리네 삶의 '파란만장'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여다정 기자
hakbodj@donga.ac.kr
동아대학보 제1096호 2012년 6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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