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는 무엇으로 사는가
미혼모는 무엇으로 사는가
  • 서성희
  • 승인 2012.11.14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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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me... I came..." 부산에서 온 한 여성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키울 자신이 없어 아이를 낳자마자 떠나보냈던 이 미혼모는 다시 '엄마'가 되기 위해 프랑스로 왔다. 차가운 헤어짐으로 시작하는 영화 <영도다리>는 간절한 만남을 향한 한 편의 여정이다.

영화는 부산 중구와 영도구를 잇는 '영도다리'를 배경으로 한다. 영도다리는 한국 전쟁 당시 부산에서 흩어진 피난민들이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던 장소다. 실제로 많은 피난민들이 전쟁 이후 이곳에서 가족을 되찾기도 해, 영도다리는 '만남'을 상징하는 장소가 됐다. 하지만 이 다리는 '헤어짐'을 상징하기도 한다. 절망에 빠진 이들이 다리 아래 바다로 몸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한 때는 '조금 기다려라'는 푯말이 세워지기도 했다. 만남과 헤어짐이란 상반되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 영도다리는 주인공 인화의 굴곡진 삶과 일맥상통한다.

열아홉 인화는 일찌감치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고아다.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원조교제도 꺼리지 않는다. 그러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미혼모가 돼 버렸다. 영도다리를 지나다 진통을 느낀 인화는 결국 가까운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한다. 그러나 자기 몸 하나 건사할 능력이 없는 그녀는 걸림돌처럼 여겨졌던 아이를 입양시킨다.

이후 인화는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자 다짐한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들과 어울리고 일자리도 구해보려 하지만 사회는 냉담하기만 하다.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화는 오히려 사회로부터 고립돼 간다. 사회로부터의 배척, 그것은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인화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그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인화는 점점 주변에 무관심한 인간으로 변해간다. 바다에 빠진 사람을 보고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라면을 사먹는다.

하지만, 젖몸살에 시달리던 인화는 문득 자기 몸에 새겨진 수술자국을 보며 자신이 한 아이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처음으로 느낀 모성애를 통해 인화는 '희망'을 본다. 사회에서 소외당한 인화는 아이만이 자신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여기며, 어릴 적 버림받았던 과거를 딛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꿈을 품기 시작한다. 자기 삶의 걸림돌이라고만 여겼던 아이가 이제 희망이 된 것이다. 결국 그녀는 아이를 찾아 험난한 여정에 돌입한다.

미혼모에게 있어 삶은 곧 고행이다. 200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혼모는 동성애자 다음으로 가장 많은 차별을 경험한다. 그들은 사회적 편견 때문에 제대로 채용되지 못하고 기본적인 생활권도 보장받지 못한다. 게다가 미혼모는 대부분 출산과 동시에 학업을 포기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도 힘겹다. 미혼모 관련 시설이 확충되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영도다리>의 전수일 감독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폭력을 솔직하게 담아내고, 그 상황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방치되고 소외당하고 있는지에 대해 나타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영도다리>는 한 미혼모의 사연을 담은 그저 슬픈 영화가 아니다. 인화의 비극적 삶은 이제껏 우리가 외면하고 망각했던 친구이자 이웃의 현실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이유는 바로 지금도 소외당하고 있는 또 다른 인화에 대한 걱정 때문일 것이다.

홍슬기 기자
hakbosg@donga.ac.kr

동아대학보 제1099호 2012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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