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가까워진 세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학술] 가까워진 세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 김강민 기자
  • 승인 2013.05.1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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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와 세계화
▲ 지난달 15일 발생한 보스턴마라톤대회 테러,

지난달 15일에 일어난 보스턴마라톤대회 테러에 사용된 압력밥솥 폭탄은 군수회사에서 만들어진 폭탄이 아니다. 알카에다(Al-Kaeda) 예멘 지부가 테러를 모의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만든 온라인 잡지 '인스파이어'에 제조법이 게재된 급조폭발물(Improvised Explosive Device)이다. 용의자로 지목받은 미국에 사는 형제는 알카에다가 만든 폭탄제조방법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알카에다가 만든 내용을 미국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듯, 정보는 온라인망을 타고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물자 또한 발달된 운송수단을 통해 지구 반대편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렇듯 세계가 가까워지는 현상을 흔히 세계화(Globalization) 또는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라 구분 없이 부르곤 한다.

세계적으로 상업 및 금융, 생산이 확대되자, 국가 및 가계의 경제적 운영을 다른 경제 주체들과 연계시키면서 세계적인 경제통합이 강화돼 왔다. 2008년에 발생한 미국발 경제위기가 전 세계를 전염시켰듯, 한 지역이 불안정해지면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지역의 고용, 생산, 저축 투자도 매우 빠르게 타격받고 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해진 것은 정보나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몇 초 만에 전해져 정보의 교환이 손쉬워졌기 때문이다.

정보의 교환이 손쉬워지자 그 망을 따라 자금이 오가게 됐고, 이로 인해 범세계적 경제시스템이 구축됐다. 매일 2조 달러가 넘는 자금이 세계 외환 거래 시장에서 거래되고, 그에 발맞춰 운송기술도 발달하면서 기업들은 해외시장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국가를 초월해 활동하는 초국적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경제 이외의 영역에서도 초국가적 집단은 계속 나타나며 발전하고 있다. 국제 마약조직이나 알카에다와 같은 초국적 범죄 집단이 나타났고, 이 집단을 구심점으로 하는 테러 네트워크가 구축됐다. 뿐만 아니라 그린피스, 국경없는의사회 같은 국제 비정부기구들의 출현 역시, 초국적 집단과 네트워크의 구축이 과거보다 훨씬 수월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경이 무의미해지고 범국가적 활동이 나타나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국가의 개념에서 차이 보여

국제화와 세계화, 이 두 개념은 상호의존의 강화라는 차원에서는 공통점이 있으나, 근본적인 관점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세계화에 대해 영국 스완지대학교 앤서니 맥그루 교수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공동체를 연결하며, 권력관계의 범위를 지역과 대륙 너머로 확대시키는 사회조직의 공간적 규모가 근본적으로 전환 또는 변환됨을 포함하는 역사적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사회조직의 공간적 규모의 전환 또는 변환'이라는 말은 국가라는 사회조직이 변한다는 말이다. 즉, 세계화의 지속은 국가 또는 영토라는 공간 속에서 이뤄지던 경제, 정치, 사회, 문화적 행위의 범위가 영토 이상으로 확대된다는 것이다. 결국 국가와 영토의 의미는 퇴색되고 그 영향력이 축소돼 종국에는 국가와 영토의 개념이 상실될 것이라는 말이다.

반면 국제화는 국가들 사이에서 점증하는 상호의존을 의미한다. 국제화의 관점에서 국가와 영토는 민족 고유의 영역, 국민 생활의 터전 등으로 역할이 분명한 사회조직이자 공동의 공간이다. 따라서 아무리 세계화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상호의존의 강화일 뿐, 국가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국제화'의 관점이다.

즉, 국제화와 세계화의 차이는 국가나 영토에서 발생하는 주권이 유지되느냐, 소멸되느냐다. 이러한 국가와 영토, 국가주권의 개념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국가와 국가주권이라는 개념의 시작은 1648년에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정립됐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근대 국가성이 확립될 수 있는 법적인 기초를 마련했고, 근대 세계정치의 근본적인 규칙 또는 헌법을 확립했다고 평가받는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정당한 주권적 통치 개념과 영토성 관념을 융합시켜 근대적 국가의 개념을 만들었는데, 그 개념을 이루는 요소가 바로 영토성, 주권, 자율성이다. 영토성은 '인류는 주로 고정된 국경을 가진 배타적인 영토적 공동체로 나뉘어 있다'는 개념이다. 베스트팔렌 조약 체결 이전엔 영토는 언제든지 빼앗을 수 있는 점유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통치자 위에 군림하는 교황이 영토를 마음대로 분할하고 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베스트팔렌 조약은 영토와 국경을 '국가가 가진 배타적 권위의 행사지'로 개념을 명확히 해 함부로 침탈할 수 없는 영역으로 만들었다.

영토에서 행사할 배타적 권위는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의미가 명확해졌다. 주권은 '국경 안에서 국가나 정부가 가지는 무조건적이면서 배타적인 최고의 정치적, 법적 권위'를 뜻한다. 영토와 주권 개념이 성립되면서 국가개념이 명확해지자 국가는 비로소 세계무대의 주체로 활동하게 됐다. 국가는 세계무대에서 '영토와 주권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정치·사회·경제 행위의 자율적 행사 주체'라는 자율성까지 확보했다.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근대 국가 개념이 정립된 것이다. 조약이 체결된 당시, 교황 인노겐티우스 10세는 베스트팔렌 조약을 "영원히 구속력 없는, 타락한, 의미 없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확립된 주권국가성은 세계정치의 보편적인 조직원리라는 지위를 획득해왔다. 하지만 이 개념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흔들리고 있다.

주권변용 가져온 범세계적 조직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한때 분명했던 국내 정책과 국외 정책의 구분이 흐려지고 있다"며 "사람들이 국내정책과 외교정책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는 대신, 세계경제, 안보, 환경 정책에 대해 토론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 정책과 국외 정책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말은, 세계가 탈 베스트팔렌 조약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에서부터 일상생활에 이르는 기본적인 문제들이 국내·외를 넘나들면서, 베스트팔렌 조약이 확립한 주권국가론은 과거의 개념이 되어가고 있다.

국경과 영토는 정치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영토성과 국경을 초월하는 정치·사회 조직 또는 권력이 등장하고 있다. 그 예가 세계은행, G20과 같은 다자적 제도와 정치기구 또는 세계상공회의소, 세계에이즈기금과 같은 초국적 단체·기관이다. 이들의 활동범위는 국가를 넘어선 세계다.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활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범세계적 조직과 권력의 탄생은 국가 주권의 변용을 가져왔다. 국가 주권은 영토내의 절대적 권력에서 국가·지역·지구적 권위 간의 절충을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이 변경됐다. 이로 인해 국가가 범세계적 문제인 테러, 마약거래, 금융 위기에 대한 효과적인 공공정책을 제공하려면 범세계적 조직과 권력에 주권 일부를 양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양보의 결과로 탄생·발전한 초국적 단체들은 인류 공통의 문제를 다양한 영향력을 가지고 장려, 규제 또는 간섭하는 지구적 거버넌스 복합체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계화는 과장된 개념일 뿐"

반면, 세계화에 대하여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는 대표적인 학자인 폴 허스트와 그래험 톰슨은 "세계화는 자본주의의 최신 국면을 가리키는 하나의 유행어이자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그에 대한 근거로 △현재의 세계화된 경제체제는 이전에도 존재했다 △국가를 초월하는 기업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투자와 고용의 대규모 이동이 없다 △무역, 투자, 금융이 몇몇 강대국에 집중되는 현 상황이 지속되는 한 세계경제는 전 세계적이기 힘들다 등을 든다.

이들은 국가 간 상호의존의 결과로 세계정부가 구성된다는 데 반대한다. 초국적기업의 등장과 상호 의존 강화로 인해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성립된 국가주권이 약화될 수는 있으나 소멸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결국 세계화는 과장된 개념일 뿐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명확한 개념은 국제화라 주장하는 것이다.

국제관계학을 연구하는 존 베일리스 교수는 "세계화는 모순적이며 이해하기 어려운 복합적 특징의 집합"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요소가 작용할 뿐만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시대의 흐름에 대한 개념이라 어떤 것이 옳은지 판단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덧붙여 그는 "세계정치는 매우 개인적"이라고 했다. 결국 세계화는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지니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공간에 따라 판단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경제적 입장이나 종교, 가치관, 환경에 의하면 현 시대가 어떻게 흘러갈 것이라 판단되는가. 답은 국제화인가 세계화인가, 아니면 제3의 다른 개념인가.

※ 참고도서
·John Baylis, Steve Smith et al, (2011), 『The Globalization of World Politics』 5/E, Oxford University Press
·토마스 슈뢰터, (2007), 『세계화?』 유동환 역, 푸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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