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레코드] 경쾌한 리듬 속에 담긴 노동자들의 애환
[시간을 달리는 레코드] 경쾌한 리듬 속에 담긴 노동자들의 애환
  • 정혜원 기자
  • 승인 2013.05.13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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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 노래를 찾는 사람들
▲ 1989년 발매된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반복되는 건반 소리로 시작된 노래는 연신 이 가사를 읊조린다. 경쾌한 리듬과 익숙한 멜로디의 노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1989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발표한 '사계'는 1970년대 공장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경제발전을 구실로 전국에 '선 성장 후 분배' 정책을 도입했다. 이러한 정책 하에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에 보호받지 못한 채 임금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했다. 노래는 장시간 미싱을 돌리는 여성노동자의 공장 생활을 그린다. 노랫말에서도 그려지듯 하늘에는 별들이 밤새 빛나지만 작업등은 공장을 밤새 비춘다. 장시간 노동의 고통을 겪는 그녀가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곤 공장 안에서 지켜보는 사계절의 모습뿐이다.

실제로 1970년 10월 6일 매일경제 사회면에 '저임금에 직업병까지-평화시장 피복 여공들 개선 호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당시 노동자의 근로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공장 안은 섬유 먼지로 꽉 차있었으며 천장은 허리조차 펴지 못할 정도로 낮았다. 약 2만 명의 평화시장 피복상회 근로자들은 이 같은 환경에서 하루에 12시간 이상 휴일도, 수당도 없이 근무했다.

1970년 11월 13일 발생한 '전태일 분신자살'은 당시 노동자의 울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1968년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피복 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은 우연히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 같은 노동자들이 법에 미치지 못하는 대우를 받는 것을 깨닫고 '바보회'를 창립해 노동자 인권운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탄압으로 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전태일도 평화시장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로부터 2년 뒤 다시 평화시장으로 복귀한 전태일은 '삼동친목회'를 조직해 노동청에 노동실태에 대한 진정서를 냈다. 이 사실이 경향신문에 실리게 되면서 평화시장의 대표는 임금·노동시간·노동환경 등 근로개선 작업에 돌입하는 듯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 후에도 계속 말만 오갈 뿐 실질적으로 지켜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전태일은 노동환경 개선을 외치며 분신자살을 택했다. 그는 자신의 몸이 불에 타면서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울부짖었다.

이처럼 70년대는 경제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노동자들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는 터무니없는 일들이 빈번했고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투쟁했다. 그 당시와 비교해 보았을 때, 현재 우리나라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토로하고 항변하는 노동자들의 아우성은 여전히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이룩한 경제성장이 외관상의 모습일 뿐, 실상 자본가들의 의식과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는 70년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짧은 시간 내에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데만 초점을 맞춰 진정으로 성장해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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