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아빠의 매력에 빠지다
대한민국, 아빠의 매력에 빠지다
  • 김지은 기자
  • 승인 2013.05.13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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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부성애'는 지난해의 '힐링'처럼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모성애를 자극하던 기존의 영화나 소설들은 이제 부성애로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주말 황금시간대의 드라마나 예능은 물론 영화계에도 부성애 바람이 불면서 한동안 드라마나 영화, 문학계에서 대중을 울리고 웃겼던 '엄마 신드롬'을 대체하고 있다.

▲ MBC 예능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의 한 장면.

부성애는 방송과 스크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실 모성애를 조명한 작품은 흔히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부성애 코드가 유독 눈에 띄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부성애를 내세운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최근 불고 있는 부성애 코드 열풍의 주역은 단연 MBC 일밤의 <아빠! 어디가?>다. 제목에서부터 아빠를 내세운 이 프로그램은 평소 바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은 아빠가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살을 맞대고 어울리며 더욱 친해지는 아빠와 아이의 모습은 <아빠! 어디가?>를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올려놨다. 예능뿐만이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부성애는 나타난다. 지난 3월 종영한 KBS 주말드라마 <내딸 서영이>는 자식에게 묵묵히 헌신하는 서영이 아빠 '삼재'의 이야기다. 삼재는 드라마 초기에는 기존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었던 가부장적 아버지였지만, 아내의 죽음 이후 자식에게 헌신한다. 딸이 아버지를 속이고 결혼식을 했음에도 사위 대신 사고를 당하는 등 조용하지만 뜨거운 부성애로 큰 사랑을 받았다.

▲ 친구같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7번방의 선물>.

자식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쏟는 아버지의 모습은 스크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레미제라블>부터 <7번방의 선물>까지, 최근 성공을 거둔 영화는 부성애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저예산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7번방의 선물>은 부성애 코드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6살 지능의 주인공은 어딘가 결핍된, 그야말로 '딸바보' 아빠다. 죽기 전까지도 딸 '예승'을 안심시키기 위해 익살스러운 춤을 추던 주인공 아빠 '용구'의 순수한 부성애에 대중들은 감동했다. 감옥에서 용구가 예승의 건강을 염려해 말한 "예승이, 콩 먹어야 돼요"라는 대사는 '예승이' 유행어로까지 번졌다. 영화 <레미제라블> 또한 부성애 코드를 담고 있다. 의붓딸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장발장 이야기 <레미제라블>은 낯선 뮤지컬 형식에 러닝타임도 길어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과거 '엄마 신드롬'에 빠져있던 사람들은 가려져 있던 헌신적인 아버지에 빠졌다. 이와 같은 성공에 힘입어 최근 개봉하는 영화들도 아버지를 선두에 내세워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 <전설의 주먹>에는 홀로 키운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아버지와 가족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가 등장한다. 사춘기를 맞은 딸과 아버지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이야기는 대중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왜 부성애인가?

부성애 코드는 '프레디(Friend+Father, 친구 같은 아빠)'나 '플대디'(Play+Daddy, 아이와 잘 놀아주는 아빠), '스칸디 대디'(Scandi Daddy,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아빠)와 같은 신조어로도 이어졌다. '친구 같은 아빠'를 일컫는 프레디는 패션계에도 영향을 미쳐 부자 혹은 부녀가 연인처럼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는 '프레디룩'의 구매량도 증가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아버지상은 철저한 봉건적 가부장제 아래 가장의 권위를 누리는 엄한 아버지였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아버지의 권위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유행했던 부성애 코드는 평생직장을 빼앗기고 용기마저 잃은 아버지에게 전하는 '아빠 힘내세요'와 같은 위로 메시지들뿐이었다. 한동안 '아버지'는 가족 중에서도 가까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현대사회에 들어 가족은 가족 해체, 1인 가족 등의 모습으로 구조적인 변화를 겪었다. 여성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맞벌이를 하는 이른바 '워킹맘'이 등장했다. 근대화와 동시에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정립되면서 자녀들은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하는 가족 내 위계질서에 불만을 가지게 됐다.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수평적 관계를 요구했다. 어머니 또한 희생적 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가 되면서 점차 친구 같은 부모로 변했다. 기존의 가부장적인 아버지상이 퇴조하고 부드러운 '친구 같은 아빠'가 나타난 것이다. 이와 같은 아버지의 새로운 얼굴이 반영된 것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동안 아버지상이 엄숙하다는 이유로 대놓고 표현하기 어려웠던 부성애도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자녀에 대한 배려'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부성애 코드 바람을 대중 용어로도 정착된 '딸바보' 유행에서 번졌다고 보기도 한다. 한때 여성들은 결혼하지 않은 남성 연예인이 어린 여자아이를 사랑하거나 지켜주는 모습을 '딸바보'라고 부르며 열광했다. 이러한 현상은 영화 <아저씨> 개봉을 전후로 일어났고, 여성들이 어린 여자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보호받으려고 했다는 것을 그 원인으로 본다. 원빈을 시초로 '딸바보' 반열에 올랐던 남성 연예인들이 잘생긴 미남형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보호받고 싶었던 여성의 속마음은 장기화된 경제위기 속에서 대한민국 전반에 퍼졌다.
경제 위기와 계속되는 경쟁 속에서 보호받고 싶은 대중들은 자신들의 굳건한 '보호자'를 찾았다. 특히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서라도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아버지가 그 보호자가 됐다. 이에 관해 인문영상연구소 김길훈 소장은 "남성은 모두를 보호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며 "아빠와 아저씨가 모두 남성이라는 점에서 영화 <아저씨> 속 아저씨와 소녀의 관계가 보호자로서의 아버지와 딸의 관계로 전위됐다"고 설명했다.

▲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쿨한 엄마 시리즈'

새로운 엄마가 온다

가려져있던 아빠가 대중의 관심사로 자리를 잡았지만 엄마는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대신 달라진 아빠에 맞서 엄마도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워킹맘이 늘어나고 있는 사회에서 대중 문화속의 엄마는 더 이상 자식만을 생각하는 억척스러운 모습이 아니다. 자식보다 자신의 인생을 추구하려는 엄마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금이야 옥이야 자식을 맹목적으로 밀어주던 엄마들은 이제 옛말이 됐다. 최근 시작한 SBS 주말드라마 <원더풀 마마>는 전략적으로 시나리오를 짜서 철없는 자식을 갱생시키는 내용이다. 거창하진 않지만 자신의 인생을 중요하게 여기는 엄마들의 도전적인 변신에 대중의 시선은 유쾌하기만 하다.

'쿨한 엄마'는 20대들 사이에서 개그의 소재로도 사용된다.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었던 쿨한 엄마와 자식의 대화가 바로 예다. 자식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주던 엄마에서, 엄마가 아니라 친구 같은 답변으로 자식과 한층 가까워진 것이다.

대구대 이진숙(사회복지학) 교수는 '현대사회와 가족의 변화' 논문에서 "가족 이후에 무엇이 올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가족'이라고 응답할 것이다"고 했다. 이 교수의 말처럼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가족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고 이러한 변화는 계속될 것이다. 사회를 반영하는 대중문화 속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엄마는 쿨하게, 아빠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우리의 부모님은 친구처럼 점차 친밀해지고 있다. 중장년층에게, 혹은 성인이 된 여러분에게 묻는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일러스트레이션 = 박미지(패션디자인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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