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중심,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논란의 중심,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 윤가람 기자
  • 승인 2013.06.03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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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5.18 민주화 운동, 6.10 민주항쟁 등 쟁쟁한 역사가 스민 날들이 지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여러 견해 차이로 시끌시끌한 가운데, 이웃나라 일본에서 왜곡된 역사관으로 망언을 일삼으며 국제 사회의 반발을 사고 있다. 그들의 발언은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2030 젊은 세대가 역사에 관심을 갖지 않아 온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렇지 않아도 공부할 것이 많은 학생들에게 복잡하고 외울 것이 많은 역사 과목은 매력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국사와 근현대사 과목이 교과과정에서도 선택과목으로 전락했고, '이걸 꼭 알아야 하나?' 싶은 부분까지도 문제화해 수험생들의 골치를 아프게 한 것도 역사 기피의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우리는 국보 1호 숭례문을 화재로 잃었고 강원도 원주 법천사 터의 지광국사현묘탑비에는 십자가가 새겨졌다. 홍순권(사학) 교수는 "역사 교육은 단순히 역사를 공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능도 있다"며 "역사를 중시하지 않는 교육정책이 문제"라고 말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사람들은 대통령 후보들의 외교 전략을 들으며 역사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 문제에 대해 쏟아내며 후보들이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사람인지 가늠했다. 이웃국가 일본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정권이 교체됐다. 일본은 2006년 물러난 바 있던 자민당의 아베 신조가 총리로 당선되며 극우 성향의 정치를 예고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3대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1990년대부터 역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중국을 맹비난하던 극우파 정치인이다. 2002년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관련해 강경한 대응을 주장하면서 일약 정치 스타로 부상한 아베 총리는 "종군위안부는 지어낸 얘기다. 일본 언론이 만들어낸 얘기가 밖으로 나간 것이다"와 같은 발언으로 주변국들의 눈총을 받았다.

침략에 대한 참회는커녕
궤변 늘어놓아…

▲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

일부 일본 정치인들의 극단적인 발언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들은 역사수정주의자, 통칭 '극우'로 불리며 역사 왜곡에 앞장서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침략의 정의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며 일본의 침략 행위에 대해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이후 누가 더 극단적인 발언을 하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지난달 13일 "총탄이 난무하는 속에서 정신적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강자 집단에 '위안부'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주일 미군의 성폭행 문제와 관련해 매춘을 권한다"는 요지의 말을 하면서 국제적으로 논란이 됐다. 하시모토 시장은 주변국들의 거센 반발에 미군과 관련한 발언은 취소하겠다고 나섰지만, 일본만 비난할 것이 아니라 세계 각국이 전쟁터에서 여성을 이용했던 과거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등의 궤변을 늘어놓았다.

뿐만 아니다.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공개적으로 참배하면서 논란을 더욱 부추겼다. 지난달 19일, 미국의 외교전문지 <Foreign Affairs>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 참배와 같다"고 말하며 신사 참배를 정당화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A급 전범이 안장되어 있는 곳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다는 것은 곧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변국들의 민간인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한 사람들을 신으로 추앙하며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한다는 의미다.

SBS 8시 뉴스 김성준 앵커는 아베 총리의 발언에 빗대 "침략의 정의가 명확치 않다는 아베 총리를 위해서 일본의 국어대사전과 고지엔 사전에 나온 침략의 뜻을 읽어보겠습니다. 타국을 공격해서 토지나 재물을 뺏는 것. 무력으로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 일본이 이런 일 한 적이 없습니까? 뉴스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클로징 멘트를 했다. 대다수의 네티즌들이 김 앵커의 멘트에 열광하며 속이 시원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에서도 아베 총리의 발언을 패러디하며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을 한 아베 총리를 풍자했다.

▲ '731'이 적혀있는 훈련기에 올라탄 일본의 아베 총리(왼쪽)와 1970년 12월 유대인 위령탑 앞에 무릎 꿇은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오른쪽).

지난달 15일 아베 총리는 '731'이라고 쓰여 있는 훈련기에 올라탄 사진으로 또다시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의 넬슨 리포트라는 정가 소식지가 아베 총리가 올라탄 훈련기에 731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다고 지적하면서 시작된 이 논란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을 때 사람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행했다는 731부대가 연상된다. 일부 언론은 이 점을 지적하면서 아베 총리가 얼마나 지난 역사에 대해 무감각하게 행동하는지를 지적했다. 뿐만 아니다. 아베 총리는 지난 5일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 프로야구 시구식에 '96'번이 마킹된 유니폼을 입고 등장했다. 아베 총리는 96의 의미가 일본 헌법 96조, 헌법 개정 의안과 연계돼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이는 개헌안 발의 조건 '중·참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2분의 1 이상'으로 개정하려는 것인데, 헌법 개정을 통해 사실상 군대인 자위대의 군비확충을 시도하려 하는 것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낸 것이다.

일본의 이런 정치적 행보는 독일과는 확연히 다르다. 독일의 총리들은 지난 역사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해왔다. 현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70주년 기념식에서 무릎을 꿇는 등의 행동으로 지나간 역사에 대한 반성을 표했다. 우리나라 역시 베트남 전쟁 당시 저질렀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베트남 전쟁 참전이 순수한 반공 전쟁이라기보다는 파병을 통한 국위선양과 미국으로부터의 경제원조도 계산에 넣은 결정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전투 도중 전투원이 아닌 민간인에 대해 불의의 피해를 입힌 것을 사죄했다. 

▲ 지난달 26일 올라온 문재인 국회의원의 트윗.

故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베트남 방문 때 호치민의 묘소에 참배하고 "우리는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공식 사과했다. 故노무현 대통령 역시 "우리 국민들은 마음의 빚이 있다. 그만큼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며 지난 전쟁에 대한 사과의 말을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26일에는 문재인 국회의원이 트위터를 통해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피해를 입힌 지역에 도움을 주고자 기획된 문화예술인의 프로젝트를 홍보하기도 했다.

2030세대의 변화,
역사 공부에 관심 늘어

이렇듯 근대사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진실을 알고 싶다'는 열망으로 자발적인 역사공부를 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그저 각종 시험을 대비해 역사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보지 않아도 내 나라의 역사를 잘 알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는 지난해 대선 즈음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선거 이후 2주 동안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史』 4권 세트가 약 1,000권가량 팔렸으며, 대선 전 2주 동안 한 권도 판매되지 않았던 『해방전후사의 인식 세트』는 이후 24권 판매됐다. 이밖에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고쳐 쓴 한국 현대사』 등의 관련 서적이 12월 초에 비해 10~20%가량 판매량이 뛰었다. 최근 우리 대학교에서 열린 '2013 동아 북 페스티벌'에서도 전체 판매량의 5%가량이 역사 관련 서적으로 집계되며 대학생들의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앙숙 관계이고 미국과 멕시코가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듯, 이웃 국가들이 부딪히는 것은 어떻게 바라보면 필연적이다. 한 국가의 역사는 이웃 국가와의 관계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웃에 대한 배려 없이 자국의 시각으로 바라본 역사가 무조건 옳다는 인식은 위험하다. 이것이 우리가 이웃 국가의 역사수정주의를 경계해야하는 이유이며, 일본의 역사수정주의가 비난을 받는 이유다.


<글=윤가람 기자>
<일러스트레이션=박미지(패션디자인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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