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기행 모티] 부산 한복판에 숨겨진 산속 마을, 물만골
[부산기행 모티] 부산 한복판에 숨겨진 산속 마을, 물만골
  • 김강민 기자
  • 승인 2013.06.03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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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 : '모퉁이'의 경상도 사투리. 잘못된 일이나 엉뚱한 장소라는 의미로도 쓰임

 도시철도 3호선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물만골'이라는 이름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수영방면 기준으로 연산역 다음역이 '물만골역'이기 때문이다. 물만골은 어떤 까닭으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 물만골에서 바라본 부산 도심.

물만골, 글자 그대로 보면 어떤 골짜기 이름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나 물만골역은 부산시청과 연산로터리에 인접한 도심 한복판에 있다. 물만골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골짜기 이미지와는 연관 짓기 쉽지 않다. 하지만 아무 상관없는 이름을 역명으로 정하진 않았을 터.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하듯, 물만골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물만골역으로 가보았다.

물만골역 1번 출구로 나와 우측 길로 접어들면 연산시장이다. 연산시장을 가로질러 걷다보면 연산2치안센터가 나오는데, 그 앞 마을버스 정류장에 물만골의 단서가 있다. 정류장의 연산 1번 버스 노선도를 보면 종점이 물만골이다. 통상 마을버스는 10~20분 거리를 운행하니 가까운 어딘가에 물만골이라는 곳이 있다는 말이 된다. 내친김에 버스에 올라 물만골로 향했다.

버스를 타면 대형마트 주변을 돌아 주택가로 접어든다. 골짜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려나 싶을 찰나, 버스는 난데없이 나타난 급한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기 시작한다. 한동안 주택가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서서히 도시의 모습은 옅어지고 주변 경관이 울창한 숲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바뀌는 풍경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면 나타나는 장승과 '물만골 자연부락'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입석. 그렇다. 물만골은 마을 이름인 것이다. 그것도 부산 도심 한 복판에 숨겨진 산속 마을.

물만골에 다다르기 위해 마을버스는 입석을 지나서도 한참을 숨 가쁘게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했다. 그만큼 산속 깊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물만골은 마을 한가운데를 흘러내려 가는 계곡을 중심으로 산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마을이다. 이 계곡물은 물만골을 품고 있는 황령산에서 발원해 내려오는 것으로 사시사철 유량이 풍부하다. 물만골은 항상 변함없이 흐르는 이 계곡물에서 유래됐다. 즉, '물이 마르지 않는 계곡' 혹은 '항상 물이 많은 골짜기'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만골의 역사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몰려든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부산 발전이 이뤄지자 강제로 철거된 도심 주변 판자촌 사람들이 모여 큰 부락을 형성하게 됐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런 식으로 형성된 마을 대부분은 시나 국가 소유의 토지에 무단으로 집을 지어 살고 있는 불법 거주인데 반해, 물만골은 마을이 들어선 골짜기를 마을 주민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 반대편 산에서 바라본 물만골 전경.

물만골이 처음 시작될 무렵에는 갈 곳 없는 이들이 무단으로 집을 지어 살았기에 다른 판자촌과 다름없었다. 어떻게 물만골 주민들은 이 땅을 매입해 합법적으로 거주하게 됐을까. 2002년, 부산시가 물만골을 황령산 순환도로 사업구간에 편입시킨 뒤 물만골 주민들을 불법거주라는 이유로 강제 퇴거 조치하려 했다. 그러자 주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부산시로부터 물만골 땅을 매입해 마을을 지켜냈다. 물만골은 마을 공동 소유가 됐고, 마을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함부로 이주해올 수 없게 됐다. 또한 마을 전체의 동의 없이 함부로 개발할 수 없어 예전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마을은 가파른 골짜기를 따라 형성돼 있어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지어진 집들이 많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페루 마추픽추를 연상하게 해 색다른 풍경을 제공해 준다. 예스러운 집과 오래된 골목을 이리저리 누비며 물만골마을 정상에 오르면 황령산 반대편에서 뻗어오다 물만골에서 멈춘 황령산 순환도로와 황령산 둘레길을 만나게 된다. 흐르는 땀을 훔치며 마을 아래를 굽어 내려다보자. 저 멀리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올라가는 빌딩 숲과 황령산에 감싸 안겨 옛 모습 그대로인 물만골이 대비돼 이질적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가파른 길 오르느라 수고가 많았으니 풍경을 마주하며 잠시 쉬어가자. 혹시 마을입구에서 여기까지 올랐음에도 힘이 남는 이들은 잘 가꿔진 황령산 둘레길이 손짓하고 있으니 숲길 산책을 추가로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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