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놈, 먹는 것 좀 보소
고놈, 먹는 것 좀 보소
  • 정혜원 기자
  • 승인 2013.06.0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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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하정우는 '먹방계의 대부'로 칭해진다.

 지난 2010년 개봉한 영화 <황해>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하정우다. 영화 속의 그는 김, 어묵, 감자와 같은 평범한 음식을 맛깔스럽게 먹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가 <범죄와의 전쟁>, <베를린> 등 영화를 찍을 때마다 먹방 인기는 고공 행진했다. 하정우는 이제 '먹방'이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그야말로 하정우가 먹방의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들은 이런 그를 '먹방 계의 대부', '절대강자'로 칭한다.

다양한 먹방 스타 등장

먹방은 '먹는 방송'의 줄임말로, 2008년 실시간 인터넷 개인 방송 '아프리카 TV'를 통해 시작됐다. 당시 '먹쇼'(먹는 쇼)라는 이름의 방송이 인기를 끌자,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개인방송을 시작하게 됐다. 사실 먹방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2003년 MBC 드라마 <회전목마>에 출연한 배우 수애의 치킨 먹방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녀는 남편과 같이 먹을 치킨을 혼자 순식간에 먹어버리고, 다시 사온 치킨마저 유혹에 못 이겨 다시 닭다리를 뜯는다. 단아한 외모와 달리 그녀가 손으로 양념치킨을 사정없이 뜯으며, 손에 묻은 양념까지 쪽쪽 빨아가면서 먹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침샘을 자극했다.

▲ MBC 일밤 <아빠!어디가?>의 윤후 '먹방'.

수애와 하정우의 먹방을 이을 떠오르는 샛별은 단연 '윤후'다. MBC 일요일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에 출연 중인 윤후는 올해로 8살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먹방 대부를 이을 정도로 음식을 맛깔스럽게 먹으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방금 일어나 밥맛이 없다던 윤후는 "너 가장 좋아하는 계란 후라이 해서 밥에 비볐는데"라는 아빠의 말에 당장 일어나 크게 한 숟가락을 입으로 넣는다. 빠진 앞니도 자신의 식욕을 가로 막을 수 없다는 듯이 이내 한 그릇을 다 비우고, 간식으로 나온 달걀 서 너개를 순식간에 해치운다. 특히, 같은 프로그램 출연자인 방송인 김성주가 만들어주는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를 먹는 모습은 사람들의 식욕을 정점에 달하게 한다. 앞니가 없어 면을 송곳니로 자르면서 오물오물거리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일제히 짜파구리를 먹고 싶게 만든다. 이러한 윤후의 먹방은 짜파구리를 대중화 시켰으며 이후 CF까지 찍게 됐다.

▲ MBC 일밤 <진짜 사나이> 샘 해밍턴 인터뷰 중 한 장면.

윤후가 어린 나이로 먹방계를 평정했다면 좀 더 이색적인 먹거리로 먹방계에 도전을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샘 해밍턴이다. 호주에서 온 외국인이지만 한국에서 개그맨으로 활동 중인 그는 요즘 MBC 예능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서 군대 음식계의 먹방 달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의 군대 생활을 체험 하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군대리아, 바나나라떼, 뽀글이(라면 봉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것) 등 다양한 군대 음식들이 등장하는데, 샘 해밍턴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맛보는 군대 음식을 완전히 섭렵했다. 그는 야간 경계 근무를 마치고 분대장과 함께 야식으로 뽀글이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군대음식 베스트는 바나나라떼"라고 말해 많은 대중에게 그 맛에 대해 궁금증을 안겼다. <진짜 사나이> 방송이 끝나면 샘 해밍턴을 거쳐간 군대음식들은 각종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처럼 먹방은 영화뿐만 아니라 예능까지 장악했으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콘텐츠가 됐다. 이는 그만큼 대중들이 먹방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왜 대중들은 이토록 먹방에 열광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먹방에 열광하는가?

먹방은 '식욕'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으로, 음식에 대한 인간의 본능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는 기존의 음식 프로그램과는 차이가 있다. 대개 TV에서 방영하는 음식 프로그램은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먹는 장면을 동원하거나, 특출나게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가 식욕을 돋우는 등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도구화된 행위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열광하는 먹방은 우리가 평소에 먹는 음식들에 열중한다. 예를 들면 계란과 간장을 넣어 비빈 밥, 김에 싸먹는 쌀밥, 라면 등이 있다. 이것들은 특별한 음식도 아니고, 일부러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먹는 것들도 아니다. 먹방은 순수한 '식욕' 그 자체를 표현한다. 이는 KBS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의 '야간매점' 코너 성격과도 잘 맞는다. 야간매점에서는 스타들이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레시피를 소개하는 코너다. 이 코너에서 채택된 음식들은 대부분 초간단 요리이면서 동시에 저비용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이 많다. 또한 실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재료를 가지고 만든다. 이는 먹방을 상품화하여 도구화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식욕의 본연 그 자체인 야식(음식)을 먹고 싶게 만드는 욕구를 자극했다.

▲ KBS2<해피투게더 - 야간매점>의 한 장면.

두 번째는 '대리만족'이다. 지난 3월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은 "지난해 40~69세 한국인 신체 측정 결과, 체형이 8년 전보다 서구화 됐다"고 밝혔다. 특히, 40대 남성의 평균 신장은 1.3cm 늘어났지만 평균 몸무게는 0.9kg 줄어들었다. 이 같은 현상은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40, 50, 60대 모두 키가 각각 2.4cm, 2.2cm, 1.3cm로 증가한 것에 비해 몸무게는 전체적으로 0.1~0.4kg 줄어들었다. 이처럼 사람들의 몸이 점점 서구화 되는 데에는 통통한 체형에 대해 문제 삼는 사회의 분위기도 한몫했다. 미디어는 날씬한 몸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을 부추겼으며, 다이어트는 대중들에게 일상적인 일이 됐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미디어가 먹방을 보여줌으로써 마치 본인이 직접 먹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된다. 직접 먹지는 못하지만 맛깔스럽게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대신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먹는 것에 자유롭지 못한 이들의 대리만족이 자기 대신 맛있게 먹어주는 브라운관 속 사람들을 열광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변화하는 가족구조에서도 먹방에 열광하는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최근 사회는 개인주의 확산과 가치관의 변화로 1인 가구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독일은 대도시 가구의 29%가 1인 가구이고, 일본 역시 1인 가구 증가를 큰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 또한 마찬가지다. 미국은 맨해튼의 절반가량이 1인 가구로 추정된다는 보고서가 있을 정도로 지난 60년 동안 가장 큰 변화로 1인 가구의 증가를 꼽는다.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달 24일 통계청은 "1인 가구는 이미 국내 전체 가구의 4분의 1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국내 1인 가구는 1990년 9.0%에서 지난해 25.3%로 늘었으며, 2035년에는 34.3%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에는 한 울타리에 3대 이상의 직계친 및 방계친을 포함하는 대가족이 살았지만 현재는 부부와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이나 1인 가구 세대가 주를 이룬다. 소수의 가족 구성원들과 살면, 신체적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나를 위한 투자가 늘어나지만 '외로움'은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된다. 이는 식사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혼자 먹는 밥은 즐겁지 않다. 이 때, 먹방이 외로움의 빈 공간을 채워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 소수 문화였던 먹방은 어느새 지상파로 흘러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이 존재한다. 과도한 간접광고로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인기편승으로 너도 나도 먹방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식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식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먹방의 인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글=정혜원 기자>
<일러스트레이션=박미지(패션디자인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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