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아파트 공화국 연대기
[학술] 아파트 공화국 연대기
  • 김무엽 특임기자
  • 승인 2013.12.09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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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파트 성공 신화는 아직 유효한가

 집은 여러 종류가 있다. 아파트, 단독주택, 빌라, 타운하우스, 원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고시원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단연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가구·주택)에 따르면 아파트 거주 가구 비율이 47.1%로 단독주택 거주 가구 비율(39.6%)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이처럼 아파트는 대한민국의 주된 주거 문화로 자리 잡으며 하나의 문화현상으로까지 떠올랐다.

▲ 주거의 개념이 아닌 아파트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도서가 연이어 출간됐다.

그러나 2008년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동시에 이에 따른 문제점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비단 '주거'의 개념이 아닌 아파트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가 쓴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을 시작으로 올해 『아파트 한국사회』(박인식), 『아파트』(박철수), 『아파트 게임』(박해천) 등의 책이 연이어 출간됐다. 아파트 현상에 대한 진단은 여러 분야로 나눌 수 있겠지만 지면상 박해천의 『아파트 게임』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아파트(부동산) 불패 신화의 역사, 그리고 그 신화가 끝난 이후에 대해 살펴보았다.

아파트 불패 신화의 흥망

생소하기만 했던 '하우스 푸어'라는 말이 이제는 익숙하게 들린다. 하우스 푸어는 '집을 보유한 가난한 사람' 혹은 '집 가진 빈민'이라는 뜻으로,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했으나 주택가격 하락 등으로 빚을 지거나 손해를 본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하우스 푸어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아파트 불패 신화'다. 역사적으로 아파트를 구입한다는 것은 중산층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아파트 가격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성공 신화 때문에 사람들은 집을 사기만 하면 뭐든지 다 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이제 아파트 불패 신화는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사실 아파트를 통해 서민이 중산층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는 한국 사회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데 중요한 요소였다.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중산층은 "번듯한 직장과 30평대 아파트와 중형차를 배경으로 삼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4인 가족의 사진은 고도성장이 가져다준 물질적 풍요의 실체를 가감 없이 보여 주는 KS마크 같은 이미지"(『아파트 게임』)였다. 이러한 중산층 성장 신화는 1970년대부터 30년간 지속됐다.

아파트 성공 신화의 첫 주인공은 4.19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이들이 가정을 꾸려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조성하려 애쓰던 시기는 1970년대였다. 이 시기에 박정희 군사 정권은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중화학공업 육성을 통해 추진해 온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의 성과를 가시화하고 있었다. 경제 성장률은 평균적으로 10%를 상회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국내 시장에는 돈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중동 건설 붐을 통해 해외 파견 노동자들이 가계로 송금한 외환이 통화량 증가의 주요 원인이었다. 이 돈의 일부가 당시 건설 중이던 강남 지역의 아파트단지에 흘러들어갔다.

아파트 시장은 투기 시장으로 변했다. 그런데 아파트 투기 시장은 특정 계층에 국한됐던 이전 투기 시장과는 달리 그 특성과 규모 면에서 이전보다 훨씬 폭넓은 계층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때 4.19세대는 이 흐름에 편승해 전·월세를 전전하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었다. 이 중산층 성공 신화는 "부동산 투기나 환물 매점을 하는 사람들은 불로소득의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고 비판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담화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전에 투기의 물살을 탄 사람들은 중산층의 대열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다.

다음 주인공은 유신세대라고 칭해지는 이들이다. 이 시기의 경제 성장률은 1970년대와 유사한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다. 1980년에는 1979년의 박정희 대통령 사망과 제2차 오일쇼크의 여파로 -1.9%까지 주저앉았지만, 다시 평균 10%라는 경이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박해천 교수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들의 조국은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의 3저 호황을 거치면서 어느덧 개발도상국의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었다."(『아파트 게임』)

1980년대의 투기 과열은 신군부의 '주택 500만 호 건설' 정책이 어느 정도 현실화된 뒤에야 일어났다. 이 시기는 대통령 직선제 선거를 앞둔 1987년 하반기였다. 3년 연속 경상수지 흑자로 외화가 차곡차곡 쌓인 데다 대선과 총선을 치르면서 선거 자금까지 흘러들어 시중의 통화유동량이 크게 증가했다. 거기에 올림픽 이후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대선 당시 남발되던 개발 공약에 대한 기대까지 가세했다.

그 상승 행진의 선두는 강남의 아파트들이었다. 이를테면 1978년에 1,100만 원이던 25평 반포주공아파트의 가격은 1989년에 이르자 1억 5,000만 원으로 13.6배나 뛰었다. 이런 투기 과열 양상은 4.19세대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강력한 규제정책으로 마무리됐다. 어쨌거나 유신세대 역시 4.19세대와 같은 과정을 밟아 중산층의 반열에 올랐다.

중산층 성공 신화의 마지막 주인공은 386세대다. 앞선 이들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노태우 정권의 주택 200만호 건설 정책)가 들어서던 때였고, 경제성장은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386세대는 "민주화에 대한 결의로 충만했던 광장의 기억을 건네주고 중산층 진입의 꿈을 담은 아파트를 건네받았다."(『아파트 게임』) 하지만 이 시기는 앞선 20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문민정부가 고위공직자의 재산 공개를 단행하면서 부동산 투기의 실상이 낱낱이 공개된 것이다. 이로 인해 중산층 성공 신화의 마무리를 장식해야할 정부의 규제가 이른 시기에 단행된다.

이 시기에는 경제성장이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 기현상을 보인다. 토지 공개념 도입과 부동산실명제 시행 등 때 이른 정부의 규제로 투기적 수요는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숨을 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386세대는 앞선 세대처럼 투기 과열로 인한 부동산 폭등세는 얻지 못했지만 아파트 한 채 정도는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1997년의 외환위기(IMF)와 2008년의 외환위기(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겪으면서 중산층 성공 신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파트를 통해 이어진 30년간의 중산층 성공 신화는 "고도성장을 통해 축적된 사회적 부를 시세 차익이라는 형태로 그 소유자들에게 배분하는 사회 시스템"(『아파트 게임』)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 과정은 "고도성장의 열매가 성과급의 형태로 예비 중산층의 계좌로 흘러들었다가 아파트 분양 대금으로 용도를 변경한 뒤, 부동산 시장의 가파른 상승세와 보조를 맞춰 몸집을 불려 다시 아파트 보유자의 호주머니로 되돌아온다는 것"(『아파트 게임』)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자신의 노력과 수완으로 내 집 마련과 더불어 중산층에 진입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 결과 아파트 신화는 환상으로 남아 하우스 푸어를 양산해냈다. 이제 성장은 멈췄고, 아파트를 지을 곳도 더 이상 많지 않다.

포스트 아파트 시대

하우스 푸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앞으로 가정을 꾸려 아파트를 사야 하는 사람들은 '정말 모든 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내 집이 필요한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방에서 일 하고 사는 사람들은 그나마 덜할지 모르지만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살인적인 아파트 가격에 몸서리칠 수밖에 없다. 아파트 가격만이 문제가 아니다. 갈수록 늘어가는 청년실업률과 '워킹 푸어' 문제까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아파트를 구입한다는 것은 더 이상 급선무가 아니다. 앞선 세대의 신화는 이제 이뤄질 수도 없을 뿐더러 청년들에게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의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

아파트 값의 반절을 빚으로 끼고 사는 '하우스 푸어'의 생활을 감당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런 생활을 하고 싶은 청년은 이제 드물다. 20대 후반에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는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것처럼 숨만 쉬고 10년 이상을 모아야 하는 돈(2011년 기준 대졸 초임 평균 연봉 - 대기업 3,300만 원/중소기업 2,200만 원)이다. 아파트에서 살 수 없다면 남는 것은 '방'이다. 지금 대학생이나 갓 직장에 들어간 이들이 사는 오피스텔, 원룸, 고시원 등과 같은 '방' 말이다. 갈수록 원룸이 고급화되는 이유는 아마 이런 경향을 미리 포착한 임대업자들 때문일 것이다.

포스트 아파트 시대를 사는 한 인물이 있다. 바로 학원 강사 Y씨다. 그녀는 "중등부 1학년만 1,000명이 넘는 기업형 학원"의 국어과 강사로, 학원에서 받는 월급으로 "매달 13평형 원룸의 월세와 의료보험, 적립식 펀드 한 개와 적금을 부어갈 만한 생활력"을 얻는다. 그런데 그녀는 현재의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은지 종종 "사교육만 제대로 받았어도 이러고 있지 않을 텐데"라며 신세 한탄도 하고, "한 1년 묵묵히 공부한 뒤 공기업에 취직한 후배를 보며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침이 고인다』, 김애란)

집안이 부유하거나 유수한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앞서 언급한 생활은 필연적이다. "집세를 받는 집주인이 내는 사교육비로 학원이 유지되고, 그 학원에서 일해 받은 월급으로 다시 집세를 내는 사이클"(『아파트 게임』)은 이 시대를 사는 청년들의 자화상일 것이다. 이런 순환 속에서 아파트를 사기 위한 저축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파트의 시대는 가고 포스트 아파트 시대, 즉 '방'의 시대가 올 것이다. 일본의 버블붕괴처럼, 아파트를 아무도 사지 않아 아파트의 가격이 폭락하는 시기가 오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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