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높이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그 사이로 분주히 발길을 재촉하는 학생과 선생들. 요즘 어느 대학의 캠퍼스에서나 흔히 마주치게 되는 모습이다. 모두가 바쁘다. 학부생들은 과제 하랴, 아르바이트 하랴, 틈틈이 놀랴 정신이 없고, 대학원생이나 교수들은 "이래저래 해야 하는데 제가 통 바빠서……"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대학이 일차적으로 지식을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라면 대학 안의 우리들은 그렇게 지식을 얻고 또 만들어 내기 위해서 바쁘다. 그러나 과연 대학이 더 이상 지식의 양과 그 생산의 속도만으로 승부할 수 있을까. 대학원생이 네이버에 질문을 올리면 '초딩'이 가장 먼저 답을 단다는 말이 있다. 우스갯소리일지언정 빈 소리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비롯한 매체의 발달로 지식에 접근하는 문턱이 매우 낮아진 지금, 양과 속도만을 갖춘 지식이 더 이상 진정한 경쟁력을 지닐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다.
그렇다면 대학은 더욱 깊이 있는 지식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깊이 있는 지식이란 곧 지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식이 지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학 안에서 공부하고 탐구하는 자들에게 여유가 있어야 한다.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타고 캠퍼스를 지나가 보기도 하고, 한가한 때에 여유 있게 그 길을 걸어가 보기도 한 사람은 그 차이를 알게 된다.
은행나무 잎사귀의 나부낌, 그 사이로 비춰드는 오전의 햇살, 우울해 보이거나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마다의 표정, 내 곁을 지나치는 이들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 빨리 지나치며 보거나 듣지 못했던 것들을 여유롭고 느리게 마주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느끼게 된다. 대상은 시간에 쫓겨 서두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얕은 지식을 건네줄 뿐이지만 여유를 갖고 말을 걸어 주는 사람에게는 비로소 지혜를 내어준다.
여유를 가져야겠다는 마음만으로 여유로워질 수는 없다. 재빨리 움직여야 하는 엄연한 현실 속에서 억지로 여유를 부리려고 하면 도리어 조급증만 커질 뿐이다. 여유 역시 환경과 시스템을 통해 보장되는 것이다. 우리는 혹시 공부의 내용보다 그것의 양으로 학생의 성적을 평가하고, 논문의 내용보다 그것의 양으로 연구자들의 업적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다. 땀의 성분이 아닌 그 질량만을 계측하는 사회 환경에서는 땀을 무조건 많이 쏟아내기 위해 모두들 바쁘게 몸을 혹사시킬 수밖에 없고, 지혜가 아닌 한낱 지식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학생이나 연구자를 평가할 때 노력의 양보다 노력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갖추어야 비로소 대학의 구성원들은 여유를 찾고 가치 있는 지식을 배우고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빨리 빨리 돌아가는 대학은 일회용 물건처럼 빨리 폐기되는 지식만을 만들어내기 십상이다. 우리 대학에 좀 더 여유가 생기기를 바란다. 오래 발효하여 만든 장(醬)처럼, 오래 익혀 오래 가는 지혜가 우리 대학에서 풍성히 담가지기를 바란다. 정중동(靜中動)의 자세로 여유로운 교정. 그 안의 각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진지하고 치열한 지식의 탐구가 이뤄지길 바란다.
박상석(교양교육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