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티 : '모퉁이'의 경상도 사투리. 잘못된 일이나 엉뚱한 장소라는 의미로도 쓰임
푸른 바다와 하얗게 치장한 집으로 상징되는 그리스 산토리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소다. 에게해와 인접한 아름다운 마을을 품은 산토리니는 CF, 영화에서도 자주 보일 정도로 매력적인 섬이다. 산토리니만큼은 못하겠지만 부산에도 이에 필적하는 곳이 있다. 바로 영도구 영선동에 위치한 흰여울길이다. 부산의 산토리니라고도 불리는 흰여울길은 바다 바로 옆에 맞닿아 있어 여러 문화마을 중에서도 가장 산토리니와 흡사하다. 게다가 상업적인 관광지가 되어버린 산토리니와 달리 흰여울길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간직하고 있어 또 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다.
'흰여울길'은 봉래산 기슭에서 시작된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바다로 굽이쳐 내리는 모습이 마치 흰 눈이 내리는 듯해 붙여진 이름이다. 부산역에서 508번 버스를 타고 영도대교를 건너면 영선동에 들어서게 된다. 이송도곡각지 정류장에 내리면 흰여울길 일대를 생활 속 문화예술창작공간으로 재탄생시킨 '흰여울 문화마을' 입구가 보인다. 흰여울길에 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편안한 복장과 신발, 그리고 간단한 음료다. 절벽 위에 세워져 가파른 경사를 오르내리는 것이 만만찮고, 별도의 상업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흰여울길은 해안절벽마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찔한 높이의 낭떠러지 위에 위치해있다. 골목 바로 아래에는 탁 트인 바다가, 그 오른편으로는 암남동(송도)과 영선동(영도)을 이어주는 남항대교가 있다. 흰여울길은 밤에도 빛난다. 남항대교가 여름에는 시원한 느낌을 주는 푸른색 조명으로, 겨울에는 온화한 느낌을 주는 오렌지색 조명으로 밤바다를 밝히기 때문이다. 남항대교를 등지고 절벽 위의 흰여울길을 걷다 보면 왜 이 곳이 산토리니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다. 부산의 주택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둥근 아치형 창문의 집과 해변에 어울리는 푸른 계열 색으로 칠해진 주택이 줄지어 있다.
발걸음을 옮기면 바닷가 마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골목에서 마을 주민의 손길이 배어난 곳들이 눈에 들어온다. 소소하게 꾸며진 화단, 집 앞의 낡은 운동기구, 이발소는 1980년대를 살았던 영선동 주민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골목의 모습은 마치 과거에 돌아간 듯해 자주 등장하곤 한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주인공 최익현(최민식 분)의 여동생이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김서방(마동석 분)과 집으로 찾아가는 그 길이 흰여울길이다.
흰여울길 절벽 아래는 바닷가를 옆에 두고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절영해안산책로가 있다. 산책로로 내려가는 길 중에서도 여러 색깔로 칠해진 피아노 계단은 높은 경사를 자랑한다. 계단을 걸어내려 가면 절영해안산책로의 한 코스인 갈맷길이 시작된다. 특히 아기자기한 타일 벽화와 지압 코스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 있다.
어느새 부산의 다양한 문화마을은 여러 매체를 통해 너무도 유명해져 골목길의 정취보다는 상업적으로 정형화된 모습을 보이는 곳이 많다. 하지만 흰여울길은 유명해진 절영해안산책로에 비해 아직은 숨겨진 명소로, 그 이름조차 낯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거의 거주민들만이 눈에 띄어 한적하면서도 주민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많은 문화마을들 속에서도 주민들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겨울 바닷가 마을을 찾는 그대라면, 영도대교를 건너 흰여울에 빠져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