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기자] 열심히 노력해서 안 되는 것도 있다
[책 읽어주는 기자] 열심히 노력해서 안 되는 것도 있다
  • 김무엽 특임기자
  • 승인 2014.03.04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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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대학의 위계는 이제 수험생들과 대학생들에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평생을 좌우하는 굴레로 작용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이영주 기자>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이 정체불명의 단어는 대한민국의 수험생이라는 과정을 거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이것은 소위 '인(in)서울'이라 불리는 대학들의 위계를 나눈 것으로, 입시결과를 기준으로 같은 '급'의 대학을 서너 개씩 묶어놓은 것이다. 인서울 대학만 이런 위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전국으로 범위를 넓히면 또 하나의 위계가 생긴다. 대한민국의 최고 대학이라 불리는 SKY 대학부터 시작해 앞서 말했던 인서울 대학, 그리고 속칭 지거국(지방거점국립대학)이라고 불리는 대학, 마지막으로 지잡대라고 비하당하는 대학 순이다.

이러한 대학의 위계는 이제 수험생들과 대학생들에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평생을 좌우하는 굴레로 작용하고 있다. 이제까지 이 암묵적인 위계를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보여주는 이는 없었다. 그러던 지난해 말, 오찬호라는 사회학자가 이런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설명해주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란 책을 냈다.

자기계발의 논리에 빠진 20대

이 책은 저자가 대학 강의를 하던 와중에 받았던 예상치 못한 대학생들의 반응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당시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이슈를 다루고 있었다. 저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동일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대원칙에 따라 합당한 처사이며, 이후 노동자로서 살아갈 대학생들이 이 이슈에 깊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생들의 반응은 예상 외였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자 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라는 반응이었다. 저자는 대학생들의 이러한 반응에 충격 받았다. KTX 여승무원이 처한 상황은 대학생들이 미래에 똑같이 겪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의 이유를 '자기계발'에서 찾았다. 자기계발의 논리란 어떤 문제의 원인이 외적인 것, 즉 사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를 더 계발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학생들이 사회적 약자의 상황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그 사회적 약자가 사회의 불합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계발하지 못해 문제 상황에 봉착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솔직히 힘들어요. 벌써 6년째 같은 생활이 반복되는 것도 힘들고 토익공부 등을 그저 점수만 바라보고 하는 것도 짜증나죠. 돈이 없으니 즐기지도 못하고 생활을 쥐어짜는 것도 그래요. 그런데,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취업의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으니 어떡해요. 그나마 아직 희망을 갖고 스펙을 채워서 이력서를 넣을 수 있다는 것이 어딘가요. 이렇게 자기계발하고 있으니 좋은 일 있을 거라 믿어요.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잖아요. 이겨내야죠. 힘들지만, 매뉴얼에 맞추어서 내 자신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솔직히 게으른 사람보다는 그래도 이것이 괜찮은 거잖아요."(p.51)

이 책에 등장하는 한 청년의 말이다. 이 청년은 자신이 취업을 하지 못하는 것이 오로지 스펙이 부족해서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게으른 사람보다는 이것이 괜찮은 거"라고 자위한다. 자신이 취업하지 못하는 것이 극단적인 사회 양극화로 인한 '고용 없는 성장'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이 청년의 머릿속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자기계발의 논리에 빠진 전형적인 모습이다.

▲ 이 청년은 자신이 취업을 하지 못하는 것이 오로지 스펙이 부족해서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이는 자기계발의 논리에 빠진 전형적인 모습이다.

치환의 방어기제, 학력위계의 내면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인정할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을 받으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방어기제라는 것을 발동시킨다. 방어기제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여기서 이야기할 것은 바로 '치환'이라는 방어기제다. 치환이란, 심리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발산하는 반응이다.

자기계발의 논리가 극단에 이르면 치환의 방어기제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인정의 욕구는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싶어 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내가 타인보다 더 낫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욕구는 다양한 방향으로 발산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천편일률적이기를 강요받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좋은 곳에 취업하는 것이 곧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이다. 하지만 취업은 이제 쉽게 이룰 수 없는 것이 됐다. 그렇다면 나보다 못한 사람을 멸시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 외에 남은 방법이 없다. 이것이 학력위계구조를 발생시키는 원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 학력위계구조를 이루는 뼈대는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다. 수능 점수는 대한민국 청년의 인생을 결정짓는 분기점이자 그들의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공신력 있다고 '믿어지는' 것이다. 이 점수를 통해 입학할 수 있는 대학이 정해진다, 그 대학의 가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20대 스스로의 가치와 동일시된다. 현재 20대에 대한 평가는 수능 점수에서 멈춰 있으며, 20대 스스로 이 평가에 순응한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외적인 영향 있다는 사실 깨달아야"

지금 대부분의 20대가 맹신하고 있는 자기계발의 논리는 얼핏 보면 다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것을 간과하고 있다. 그 예로 최근 논란이 일었던 소치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경기를 들 수 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챔피언인 김연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연기를 펼쳤다. 세계의 많은 이들이 김연아의 금메달을 예상했다. 하지만 금메달은 러시아 선수인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돌아갔다. 누가 어떤 점수를 줬는지 공개되지 않는 피겨스케이팅 경기이기 때문에 그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분노했다. 김연아가 능력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자기계발의 논리는 여기서 깨진다. 능력을 극한까지 계발한 이도 외적인 영향에 의해 그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견고한 자기계발의 논리가 허상임을 인지하는 것이 굴레를 깨는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투 스트라이크를 맞은 상태로 인생을 시작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기가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하며 산다"(p.214)고 말하면서, 스스로 노력하는 것으로 바꿀 수 없는 외적인 영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온갖 공정하지 못한 기회와 과정으로 인해 나타난 결과의 피해자들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자기 스스로 지고 있다"(p.227)는 저자의 말은 괴물이 된 20대의 자화상을 향한 일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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