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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 왕좌의 게임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스튜어트
김민지 기자  |  hakbokmj@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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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02  12: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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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스튜어트(왼쪽)와 엘리자베스 1세(오른쪽). <일러스트레이션 = 이영주 기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그리고 북아일랜드로 이뤄져있다. 16세기에 이르러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두 나라는 여왕의 시대를 맞이한다.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와 잉글랜드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각각 출신과 종교적 이유로 자신의 나라에서 왕위를 위협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촌 지간인 두 사람은 잉글랜드의 왕위를 놓고 격돌한다.

메리 스튜어트와 엘리자베스 1세는 서로 상반된 환경에서 자랐다. 메리 여왕은 당시 스코틀랜드의 왕조였던 스튜어트가의 유일한 왕위 계승권자였다. 아버지인 제임스 5세가 전쟁 중 얻은 병으로 30세에 요절하자 태어난 지 6일 된 메리에게 왕권이 돌아갔다. 스코틀랜드 주위 국가들은 스코틀랜드를 장악하기 위해 메리 쟁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코틀랜드에 손을 내민 것이 프랑스였다. 메리는 프랑스에서 평온하게 지내다 16살이 되던 해 프랑스의 왕세자와 결혼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메리는 결혼 후 1년 만에 남편을 잃었고 스코틀랜드에서 섭정을 하던 메리의 어머니마저 죽었다. 프랑스에서 입지가 좁아진 메리는 스코틀랜드로 돌아가 왕위를 이었다.

이에 반해 엘리자베스는 시녀 출신인 어머니와 헨리 8세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보호 아래 프랑스에서 평온한 생활을 보낸 메리와 달리 엘리자베스의 어머니는 엘리자베스를 낳은 후, 간통을 이유로 1536년 참수당했다. 이후 그녀는 아버지인 헨리 8세에게도 버림받았다. 엘리자베스를 서출이라고 공표해버린 것이다.

헨리 8세 서거 이후 잉글랜드의 왕관은 에드워드를 잠시 거쳐 엘리자베스의 배 다른 언니, 메리 1세(메리 튜더)가 썼다. 메리 1세는 당시 많은 학살과 공포정치를 펼쳤다. 엘리자베스도 예외일 수 없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언니에게 핍박받고 서출이라 무시 받는 상황에서도 다양한 학문과 언어를 배우며 누구보다 뛰어난 학자가 되길 원했다. 이후 아이가 없던 메리 1세는 결국 엘리자베스를 다음 왕권 계승자로 지목했다.

메리와 엘리자베스는 여왕으로서 각각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스코틀랜드는 장로교도들을 중심으로 교회 국가를 만들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메리가 왕위를 잇자 장로교는 그녀가 가톨릭 신자이자 스코틀랜드를 버린 프랑스 왕비였음을 주장하며 그녀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메리의 통치 능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갖은 모함과 함정, 그리고 수많은 남자문제로 인해 민심은 서서히 떠나갔다. 결국 폐위당한 메리는 복위를 위해 탈출을 감행했다. 그리고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상황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 또한 잉글랜드에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서출이라고 공표됐기 때문에 왕에 즉위할 명분이 취약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국 국교회와 대부분의 잉글랜드 국민들은 그녀를 왕으로 인정했다. 엘리자베스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신의 처녀성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신성시되고 있었다. 또한 핍박받으면서도 꾸준히 쌓아온 학문적 지식 덕분에 정치적으로도 훌륭한 면모를 보였다. 엘리자베스의 유일한 약점은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핏줄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통성을 가진 왕권 계승자 메리가 잉글랜드로 온다는 것은 엘리자베스에게 썩 좋지 못한 소식이었다. 잉글랜드에 망명 후 메리는 재판을 통해 유죄를 선고 받았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는 큰 위협이 되는 메리를 죽이지 않고 품에 안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실 메리는 엘리자베스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왕위 계승권으로만 따지면 메리가 더 높은 위치에 있었다. 메리는 엘리자베스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잉글랜드의 왕위를 계승하지 않았는데 메리는 자신의 문장(紋章)에 잉글랜드의 왕관을 새겨 넣었다. 이는 잉글랜드의 왕인 엘리자베스 1세에게 큰 모욕감을 안겨주었다.

메리는 방치되는 듯 지내다 결국 반(反) 엘리자베스 세력과 결탁해 모반을 일으켰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는 번번이 못 본 척 해줬다. 그럼에도 메리는 꾸준히 모반을 일으켜 잉글랜드 왕의 자리를 탐냈다. 계속적인 왕권 위협에 결국 엘리자베스는 모반의 증거를 남긴 메리를 참수시키고 말았다.

하나뿐인 잉글랜드의 왕좌를 노린 두 사람이었지만 결국 역사적 승리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거머쥐었다. 어린 시절부터 핍박받으며 불우한 시절을 보낸 것이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는 밑거름이 됐을 것이다. 만약 그 시절을 이겨내지 못했더라면 우리가 아는 영국은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참고도서 <타임라이프북스, 『엘리자베스 여왕의 왕국』, 가람기획,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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