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기행 모티] 대나무 따라 10리, 십리대밭
[지역기행 모티] 대나무 따라 10리, 십리대밭
  • 안희석 기자
  • 승인 2014.09.01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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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리대밭

모티 : '모퉁이'의 경상도 사투리. 잘못된 일이나 엉뚱한 장소라는 의미로도 쓰임

▲ 길 양옆을 빽빽히 채우고 있는 대나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던 신하는 왜 하필 대나무로 둘러싸인 곳에서 비밀을 외쳤을까. 그 공간만의 특별한 기운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직접 느껴보기 위해 울산 태화강 주변 대나무 숲으로 달려갔다.

태화강변을 따라 펼쳐진 대나무 숲의 이름은 '십리대밭'이다. 대나무가 10리(약 4.3km)에 걸쳐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하여 십리대밭이라 불린다. 울산 관광명소 중 하나지만 관광객이 적고, 강 건너편에 아파트촌까지 있어 오히려 도심 속의 안식처라는 느낌을 준다.

강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를 걷다 보면 저 멀리 대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 등장하는 작은 무리의 대나무를 오른쪽에 끼고 10분 정도 걸으면 십리대밭 입구가 나온다. 숲으로 들어가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 뜨거운 정수리를 식혀줬다. 고개를 들어보니 대나무 잎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십리대밭의 끝은 아득하다. 전체적으로 곧게 뻗은 길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산책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길 양옆은 대나무로 빽빽해 숲길은 다소 어둡다. 걷는 도중 지루하거나 쉬고 싶을 땐 벤치에 앉으면 된다. 드문드문 등장하는 벤치에 앉아 등을 기대고 있으면 강바람이 대나무 사이를 통과해 들어온다. 바람이 강하게 불 땐 대나무 잎이 서로 비벼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빌딩 숲 속에선 칼바람이 분다 해도 들을 수 없는 소리다. 바람 따라 대나무가 여유롭게 흔들리고 사람도 적어서인지 말투나 행동거지도 자연스레 차분해진다.

십리대밭에 애완견을 데리고 왔다면 꼭 목줄을 착용해야 한다. 뜬금없이 등장한 너구리를 따라 개가 달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엔 너구리가 살고 있으며 주로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새벽에 출몰한다고 한다. 숲의 중반을 지나면 나오는 동그란 쉼터에는 너구리를 주의하라는 팻말도 있다. 반려견이 너구리를 쫓다 유기견이 되는 슬픈 드라마를 쓰고 싶지 않다면 주의사항을 반드시 따르자.

'너구리 주의' 팻말을 지나 천천히 30분 정도 더 걸으면 대나무 무리의 밀도가 듬성듬성해진다. 하늘과 주변을 덮던 것들이 없어지니 밖은 굉장히 밝아 보인다. 숲을 완전히 빠져나와 조금만 더 걸으면 '만회정'이 보인다. 만회정은 코스 마지막에 있는 정자로, 산책을 마무리하는 곳이다. 신발을 벗고 정자에 올라서면 태화강이 흐르는 걸 볼 수 있다. 흐르는 강물 옆에는 방금 지나온 십리대밭의 대나무들이 흔들리고 있다. 지나온 곳의 출발점이 보이지 않으니 다시 한 번 10리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정자에는 산책을 끝낸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아이고 죽겠다"며 벌렁 누워버리는 아주머니들을 보니 보통 코스는 아닌가보다. 하지만 입으론 힘들다 하면서도 표정은 모두 밝다.

▲ 산책로 끝에 위치한 만회정.

만회정을 마지막으로 십리대밭 코스가 끝나면 공원을 통해 출발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숲길은 구불구불해서 오래 걸리지만 공원을 따라 일직선으로 걸으면 금방 입구 쪽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돌아가는 길엔 작은 개울과 징검다리가 있으며 나비생태원도 볼 수 있다. 또한 곳곳에 천막이 쳐져 있어 누구든 돗자리만 가지고 오면 그늘 밑에 누울 수 있다.

십리대밭을 걸어보니 임금의 치부를 소리친 신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늘을 덮은 대나무가 비밀을 숨겨줄 것 같았다. 빌딩 숲을 벗어나 그 속으로 차분히 걸어보자.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면 그에게 고민을 얘기해 보는 건 어떨까. 대나무들이 대화를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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