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사투리의 넋두리
사라져 가는 사투리의 넋두리
  • 정재훈 기자
  • 승인 2014.10.06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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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가 문젠교? 고마 그냥 놔 두이소, 모하며 열지 말고 고마 꾹 닫아 두이소…' 2011년에 메타와 렉스가 발표한 '무까끼하이'라는 노래다. 이 노래는 경상도 사투리로 가사를 만들었고, 같은 해 제9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랩&힙합'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 노래는 TV에 나오지는 못했다. '무까끼하이'라는 단어가 일본어처럼 들린다는 이유였다. 비슷한 예로 허경환의 '자이자이'라는 노래 역시 '입 주디 주 터져봐야'라는 표현이 비속어 같다는 이유로 방송에 나올 수 없었다.

사투리가 사라지고 있다

여러 매체에서도 사투리를 쓰는 배역들은 다혈질이거나 촌스럽고, 조폭이나 소시민 역할이 많다. 마찬가지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투리를 쓰는 건실한 회장님이나 고위 공직자들은 찾기 힘들다. 그저 사투리를 쓴다는 그 자체가 '촌스러운 사람'이거나 '품격 없는 사람', '교양 없는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물론 반대로 표준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비교적 세련된 이미지로 그려진다.

지역민마저 사투리를 외면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지역 억양을 사용하더라도 사투리보다는 표준어로 대화를 하면서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는 한때 '서울말 배우기 운동'을 추진하기도 했다. 제주도 사투리는 독특한 폐쇄적 환경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더 옛날 국어의 모습을 담고 있다. 제주도는 최근 이러한 사투리의 가치를 깨닫고 보존에 나서고 있다. 현재 유네스코는 제주도 사투리를 소멸 위기 언어 가운데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분류했다. 아무리 언어를 보전하려 노력해도 사용하지 않으면 그 언어는 사라진다. 우리 대학교 김영선 언어교육원장은 "사투리가 사라지고 젊은 세대만 사용하는 통신언어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면 세대 간 의사소통 장애가 더 심화될 것"이라며 우려를 전했다.

2010년 국립국어원에서 진행한 언어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 남녀 5,000명 대상) 73.7%가 표준어만 구사하거나 표준어와 사투리 두 개 다 구사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웬만하면 표준어를 쓰고 부득이하게 사투리를 쓰더라도 표준어는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러난다. 최근에는 사투리 교정을 전문으로 하는 학원이나 수업이 유행하고 있고, 우리 대학에서도 '사투리 교정 클리닉' 수업이 인기다. 기업 면접 때 사투리보다는 표준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우대하는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공직자 SNS 사용원칙과 요령방안'에는 지역갈등을 야기할 수 있으니 사투리를 쓰지 말라는 지침이 들어있어 논란이 됐다.

사투리보다 표준어? 뭐라카노!

▲ 사투리는 표준어에 비해 성조를 가지고 있어 활용성이 높다.

하지만 사투리는 표준어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는 말이 아니다. '2의 2승, 2승 e승, e의 2승, e의 e승.' 사투리가 가진 장점의 대표적 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사투리는 표준어에 없는 성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옛날 국어의 흔적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글자 옆에 방점을 찍어 성조를 표시했다고 전해진다. 표준어에는 이러한 성조가 없는 것에 비해 사투리는 성조를 사용해 같은 단어라도 의미구별이 분명하다.

또한 사투리는 발음이 표준어에 비해 경제적이다. 발음할 때 중복되는 자음을 최소화 시키는 경우가 그러한데, '주둥이'를 '주디', 궁둥이를 '궁디' 라고 말하는 것이 그 예다. 또, 혀의 움직임을 줄이기 위해 변화된 경우도 있는데, 경상도 사투리의 'ㄱ'발음이 'ㅈ'발음으로 변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가령 경상도 어르신이 '김치'를 '짐치', '기름'을 '지름'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는데, 'ㄱ'자음이 'ㅣ' 모음이 소리나는 곳보다 비교적 먼 입 안쪽 '연구개'에서 소리나는 반면 'ㅈ'자음은 'ㅣ'모음이 조음점과 비교적 가까운 '치조(치아가 있는 상·하악골의 공간)'에서 소리가 난다. 때문에 '김치'를 '짐치'라고 발음하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있다.

사투리는 표준어보다 언어의 변화가 늦게 반영돼 우리말의 옛 모습을 대부분 담고 있다. 경상도 사투리 중 비속어로 알려진 '씨부리다'는 15세기의 '히부리다'라는 단어의 모습을 간직한 것이며, 경상도 사투리인 '무시'는 과거에 무가 '무수' 또는 '무시'라고 불리다가 '무우'로 변화해, 현재 무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감자의 제주도 사투리인 '지슬'은 감자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지실(地實)'이라고 불렸던 흔적이다. 이렇듯 사투리는 옛날 국어 복원에 근거를 제시해 준다.

특히 사투리는 지역 사람들의 정서를 그대로 보여주며, 정감이나 친근함을 보여주는 언어다. 올해 초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 <변호인>은 부산 변호사 송우석의 사투리로 순수하고 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황산벌>은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를 재미있게 해석해 각 지역의 특색을 잘 보여줬다. 반면 사투리는 지역색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어 다른 지역민들이 알아듣기가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

사투리 보존 움직임

최근 지역 사투리의 생태계는 변하고 있다. 뿌리처럼 굳어진 표준어 중심 교육정책도 그렇지만, 대기업 면접, 젊은 층의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 등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투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외국에서도 사투리, 즉 지역어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일본은 40년째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일본방언연구 학술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지역어 사전과 지역어 책자의 유통이 활발하다. 독일은 1960년대 들어 지역어를 사용 금지시켰다. 이 때문에 25세 이하의 젊은 층에서는 사투리를 사용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현재는 지역어의 보전을 위해 지역어 학교를 따로 설립해 운영한다. 지역어 학교에서는 마을주민들이 함께 하는 세미나가 진행되고, 각 지역에서는 지역어 파티가 열린다고 한다. 또,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가입한 것으로 유명한 바이에른어진흥협회(FBSD)라는 시민단체를 설립해 지역어의 인식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우리 대핛에서도 사투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활발하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열린 '부산 사투리 뽐내기 대회' 예선. <사진=강지윤 기자>

국립국어원에서는 사투리의 보전을 위해 올해 9월 강원도에서 '마카 오서요, 사투리 한마당' 행사를 열고, 매년 '전국 사투리 상품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다. 또 각 지역의 사투리를 음성자료와 문서로 기록해 보존하고 있다. 또, 부산 해운대구청은 해수욕장에서 표준말 버전과 함께 사투리 버전 안내방송을 만들고, 부산 사투리로 지역 관광 상품과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등 사투리 관광 상품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 대학에서도 사투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활발하다. 지난달 26일 우리 대학교 국어문화원은 부민캠퍼스 국제관 3층에서 '부산 사투리 뽐내기 대회' 예선을 진행했다. 이 행사는 부산·경남 사투리의 언어 문화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열렸다. 사투리를 사용해 진행된 이 대회는 학교 내 행사에 그치지 않고 부산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언어교육원 김영선 원장은 "사투리는 비천한 말이 아니다"며 "사투리 그 자체가 지역 재화로서의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투리는 그 지역의 정서와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때문에 사투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지역의 문화와 정서가 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턴가 사투리를 등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투리를 꼭 촌스럽고 고쳐야 할 말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지역이 가지는 하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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