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대의 기억을 선물합니다 #1
동아대의 기억을 선물합니다 #1
  • 강지윤, 이수정 기자
  • 승인 2014.10.06 1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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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에, 제약도 많던 그때 그 시절

오는 11월 1일은 우리 대학교의 68번째 생일이다. 1946년 개교한 우리 대학은 70년 가까이 되는 역사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46년에 입학한 학생들은 이미 나라와 기업체의 중역이 됐고 1970~1980년대 학생운동을 겪은 이들도 지금은 어엿한 사회 구성원이 되었다. 학생들이 성장하는 동안 우리 대학 또한 세월의 성장통을 겪었다. 캠퍼스의 모습, 학과, 과목도 모두 변했다. 오래된 역사만큼 성장한 우리 대학의 지난날을 되돌아봤다.

 

민주화 운동에, 제약도 많던 그때 그 시절

▲ 강영수(경영학 78학번) 동문.

1979년 10월 박정희의 유신체제에 반대한 민주화 운동, 부마항쟁이 일어났다. 대학을 상아탑이라 불렀던 그들에게 학생운동은 '권리'이자 '의무'였다. 우리 대학에서도 많은 학생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대학교 내 강의실은 한산했다. 강영수(경영학 78학번) 동문은 "저학년 때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선배, 동기 할 것 없이 학생운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강 동문은 "학생운동으로 광복동 분위기가 살벌했는데 학생들이 많이 다친 채 등교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공부에 대한 열의가 넘치는 학생이 도서관에 많았다는 것은 지금과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지금보다 취업에 대한 압박이 덜 했기 때문인지 오히려 마음 편히 공부 할 수 있었다. 강 동문은 "군 제대 후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때도 토익을 공부해야 했지만 지금처럼 취업을 위한 필수요소는 아니었다. 강 동문은 "반드시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공부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1970~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학생들은 캠퍼스 주변 친환경적인 장소에서 학업 스트레스를 풀었다. 강 동문은 "대신동 캠퍼스(현 구덕캠퍼스)는 공기 좋고 낭만이 넘쳤다"며 "대신동 캠퍼스 근처에 구덕공원이 있었는데 저수지가 참 깨끗하고 좋았다"고 전했다. 많은 동문은 구덕공원 저수지에서 진로나 취업 정보를 공유하며 얘기를 나눴다. 공감대를 나누며 고민을 해결하는 모습은 지금의 청춘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82년도 신입생이었던 성태경(화학공학 82학번) 동문에게는 요즘 대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인 '취업'에 대해 물었다. 성 동문은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기 때문에 엘리트 의식이 있었다"며 "좋은 기업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취업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려웠다. 그 당시 우리 대학은 현재의 취업지원실과 같이 대학에서 취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이 없었다. 그는 "당시에는 대기업에 쉽게 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웠다"고 전했다.

당시 학생들은 학교에서 지정한 아르바이트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기업은 물론 일반 상점조차도 아르바이트가 금지됐다. 학생운동을 막기 위해서였다. 특히 대학생이 개인과외를 한 것이 적발되면 국가에서 반동으로 생각해 단속했다. 학교에서 지정해준 합법적인 아르바이트는 도서관 사서나 학과 조교활동 혹은 아침 등굣길 교통정리 등이었다. 그 외 학생들이 학비를 충족하는 방법은 장학금뿐이었다.

예전 우리 대학은 '패션의 메카'라고 불릴 정도로 화사한 여학생들이 많았다. 성태경 동문은 "지금은 부산대나 경성대·부경대 앞이 더 붐비지만 그 당시엔 동아대 하면 모두 '화사한 여대생'들을 떠올렸다"고 회상했다. 여학생들이 예쁘다는 소문 때문에 많은 남학생이 동아대로 놀러왔다고 한다.

성태경 동문은 CC(캠퍼스 커플)로 결혼에 골인했다. 당시 CC들은 대부분 비밀 연애를 했다고 한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자유로운 연애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학생들은 연애한다는 소문이 날까 봐 비밀로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당시에도 공개적으로 연애를 했던 학생이 있었지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공개하는 것에 부담이 컸던 시절이었다. 김병진(무역학 77학번) 동문도 "지금처럼 자유로운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대부분 동성친구들끼리 더 어울리는 분위기였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좀 더 자유로워진 환경이지만 여전히 CC에 대해선 조심스러워하는 학생들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관계는 힘든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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