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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 물러설 수 없는 각자의 영화관장예모와 천 카이거
정재훈 기자  |  puple3033@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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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1.10  11: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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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예모 감독과 천 카이거 감독은 중국을 알리고, 중국의 사회와 현실을 담아낸 제5세대 감독들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맞수다. <일러스트레이션=이승은 기자>

중국 영화사는 감독들이 살아온 시대를 기준으로 세대 분류를 한다. 1905년 <정군산>을 시작으로 중국 영화를 시작한 제1세대, 기존의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간 제2세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국가정책의 선전에 주력한 제3세대, 소련과 동유럽권의 영향을 받아 사실주의적 색채가 강한 제4세대, 그리고 중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주도했다고 평가받는 제5세대와 상업영화를 거부하고 '지하영화'를 표방한 제6세대, 마지막으로 현재의 제7세대까지로 나뉜다.

중국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세대는 마오쩌둥 사망 이후 나타난 '제5세대' 감독들이다. 제5세대 감독들의 영화는 기존의 중국영화와 달리 세계적으로 중국을 알리는데 공헌하고, 또 중국의 사회와 현실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다른 세대보다 특별하다. 장예모 감독과 천 카이거 감독은 제5세대 감독들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맞수다.

최근 개봉한 <5일의 마중>의 장예모 감독은 중국 근대사를 그린 영화 <인생>(1994)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중국 시안이라는 농촌에서 태어난 그는 매일 방직공장과 농지를 오가며 열심히 일했다. 반면 <무극>(2005) 등으로 유명한 천 카이거 감독은 베이징에서 영화감독 아버지 아래 자랐다. 다른 청소년기를 보낸 둘은 1978년 베이징영화학교에 같이 입학하게 됐고, 서로의 재능을 알아본 두 사람은 가깝게 지냈다.

베이징영화학교 졸업 후 먼저 광시영화촬영소에서 감독직을 맡게된 천 카이거는 장예모를 촬영감독으로 고용해 같이 영화 <황토지>(1984)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당시 중국의 정치상황과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해 중국 내에서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황토지>는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고, 이 영화는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은표범상을 수상하며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장예모의 이름까지도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둘은 영화 촬영 도중 자주 다퉜다. 천 카이거는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화면에 표현하는 것을 중요시했지만, 장예모는 영상미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둘은 포스터 색 선정에서도 노란색이냐, 빨간색이냐로 언쟁을 했다. 이후 장예모는 "천 카이거 혼자 <황토지>의 영광을 독차지했다"며 둘의 사이가 이미 틀어졌음을 밝혔다. 결국 <황토지>의 차기작 <대열병>(1985) 이후 둘은 결별한다.

장예모는 1989년 <붉은 수수밭>으로 감독에 데뷔한다. 중국의 당대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이 영화는 <황토지> 이후 중국은 물론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고, 장예모는 이 영화로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다. 이후 장예모는 먼저 유명해진 천 카이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화감독 반열에 오르게 된다.

두 사람은 유명세를 얻은 후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장예모는 천 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1993)를 "대중이 알아듣기 힘든 어려운 메시지를 담아 잘난척하고 있다"고 신랄한 비판을 했고, 천 카이거는 장예모 감독의 영화 중 최고의 영화라 평가받는 <인생>을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서민의 이야기를 다뤄 대중의 인기에 편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천 카이거는 1998년 <시황제 암살>이라는 영화를 통해 진시황을 폭군으로 설정했다. 장예모는 이를 비판하듯 2002년 <영웅>이라는 영화를 제작해 "이 영화를 통해 진시황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며 천 카이거와는 달리 진시황을 천하를 제패한 영웅으로 설정했다.

서로의 영화관에 동의하지 않는 두 사람이었지만 이상형은 같았는지, 두 사람 모두 영화배우 공리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장예모 감독은 데뷔작 <붉은 수수밭>에서 주연을 맡은 공리에게 반해 수많은 노력 끝에 연인사이로 발전했다. 천 카이거는 영화 <시황제 암살>에서 공리만을 위한 캐릭터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천 카이거는 장예모와 결별한 공리와 연인관계가 된다. 하지만 이후 공리는 장예모도, 천 카이거도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

두 감독의 다툼은 대중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장예모는 "이러한 경쟁이 재밌고 즐겁다"고 밝힌 적 있다. 그리고 지금, 서로 경쟁하던 두 사람은 중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이 됐다. 어쩌면 그 둘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경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관련도서 <이종철, 『중국영화 르네상스를 꿈꾸다』, 학고방,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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