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기행 모티] 신라 천년의 역사를 따라 삼릉 가는 길
[지역기행 모티] 신라 천년의 역사를 따라 삼릉 가는 길
  • 성혜정 기자
  • 승인 2014.11.10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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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 : '모퉁이'의 경상도 사투리. 잘못된 일이나 엉뚱한 장소라는 의미로도 쓰임

▲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이 잠들어 있는 삼릉.

경주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볼거리가 많다. 주말이면 전국에서 모인 차들로 도심은 주차장이 되지만 신기하게도 사람이 없는 길이 있다. 포석정에서 삼릉까지 걸어가며 마주친 사람이라곤 스님, 나물 파는 할머니, 두 딸을 옆에 앉혀두고 절을 하던 아저씨, 등산객 몇 명 뿐이었다. 가을이 깊어가던 10월의 어느 날, '삼릉 가는 길'을 걸어봤다.

포석정은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왕의 별장 같은 곳이다. 신라 경애왕이 신료들과 술을 즐기다 견훤의 침공을 받고 죽었다고 전해지는 비극적인 장소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물이 흘렀던 곡수거만 남아 있다. 옛 신라인들은 물이 흐르는 곡수거에 술잔을 띄워놓고 그 술잔이 자기 앞에 올 때까지 시를 지어야 했다. 시를 짓지 못한 사람은 벌칙으로 술을 석 잔 마셨다. 지금으로 치면 '술 게임'인 셈이다. 이 놀이를 '유상곡수'라고 부르는데, 중국과 일본에서도 즐겨 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것은 술잔이 멈추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데 비해 포석정은 술잔이 흘러가다 물이 굽이치는 곳에서 잔이 맴돌거나 멈추는 곳이 약 12곳이나 있어 시를 짓는 시간을 좀 더 벌어주었다.

▲ 경주 포석정의 모습. 지금은 물이 흘렀던 곡수거만 남아있다.

포석정을 나오면 주차장 옆으로 작은 길이 하나 있다. 남산 둘레에 걸쳐진 이 길은 산책로라기엔 약간 험하고 등산로라기엔 완만하다. 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생태공원인 태진지가 나온다. 작은 연못 주위로 수풀이 우거져 있는데 계절마다 다르게 피는 야생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연못 옆엔 정자와 벤치가 놓여있어 앉아 쉬기에도 좋다. 벤치에 앉아 눈을 감으면 불어오는 바람과 따사로운 가을볕을 느낄 수 있다.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태진지를 지나 다시 산길을 걸었다. 출발한 지 몇 분이 지나고 산책이 아닌 등산처럼 느껴질 때쯤 삼불사가 나온다. 삼불사에 가면 꼭 봐야 할 것이 있다. 석조여래삼존입상이라고 불리는 세 개의 석불이다. 삼존불 가운데 석불은 성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원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삼존불 위에 설치된 보호각 때문이다. 석불이 햇볕을 받아 얼굴에 그림자가 지면 그것이 꼭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였는데 햇볕이 가려진 뒤부터 표정이 달라졌다. 햇볕을 가리려다 부처의 미소까지 가려버린 것이다. 석불의 미소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달래주기 위한 걸까. 보호각 기둥에는 미소 짓고 있는 석불 사진이 붙어있다. 그 온화한 미소를 사진으로밖에 만날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여정의 마지막 장소인 삼릉으로 떠났다.

▲ 삼릉 주위를 둘러싼 소나무 숲.

삼릉은 신라 제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하지만 무덤보단 그 주위를 둘러싼 소나무 숲으로 더 유명하다. 안개가 내려앉고 소나무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는 이른 아침에 가면 그 풍경이 특히 환상적이다. 이 몽환적인 아름다움에 반해 봄가을이면 전국의 사진가들이 삼릉으로 찾아온다. 해 질 무렵이라 그 몽환적인 풍경은 볼 수 없었지만 넘어가는 해가 소나무 사이로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그 아름다운 모습은 저절로 셔터를 누르게 했다.

포석정과 삼릉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경주의 문화재이지만 그 사이를 잇는 길은 비교적 덜 알려진 편이다. 이미 유명한 장소를 가는 것도 좋지만 숨어 있는 길을 내가 먼저 찾아보는 건 어떨까. 헤매더라도 나만 알고 있는 길을 걸을 때 여행의 매력은 배가되는 법이다.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좋다. 당장 표를 끊고 경주로 떠나보자. 집에만 있기엔 가을은 너무나도 짧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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