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매섭게 찾아온 수능 한파는 일 년 전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 고3이라는 무게를 대학이 덜어줄 것만 같았고, 대학에 들어가면 모든 것에서 해방될 줄만 알았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진학하고 보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도리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1면의 "밤새는 줄 모르겠네" 기사는, 필자의 이런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문구를 떠올리게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기사문을 함께 게재했더라면 가독성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행사 취재의 의도가 독서를 권장하려는 것이었을 텐데 사진 한 장으로는 이를 온전히 담아내는 데 무리가 있어 보였다.
2면의 '신입생 정원 8% 감축…' 기사는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라고들 하지만 지금도 그 말이 유효한지는 자꾸만 의문이 든다. 내년부터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가 통합된다는 소식은 국문과에 재학 중인 필자에게 꽤나 충격적이었다. 진로마저 이제는 자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인 듯해 할 말을 잃게 했다.
4면에 배치한 후보자 소개는 현명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경선으로 진행된 단대 중 그 후보자들이 게재되지 않은 경우가 있어 아쉬움이 남는 면이었다.
5면 '공약이 변해가네' 기사는 그동안의 발자취를 보는 것 같아 새로웠으며 기자의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하지만 2면의 '장애학생 복지, 세심한 관심 필요해' 기사와 관련지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선거공약이 학생 복지를 최우선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은, 장애학생들의 권리와 충분히 연관 지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를 잡아내지 못한 것은 지난호에서도 보였던 안타까운 점이었다. 기사 간의 연관성을 제고하는 노력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필자는 사람·광장 면에 매번 흥미를 갖는다. "이십대는 실패해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회복이 가능하다"는 김준호 동문의 말이 인상 깊었다. 오피니언 면 정영기 교수의 한마디도 가슴에 와 닿았다. "땀은 열심히 몸을 움직여 노력하는 사람만이 흘릴 수 있고, 침은 가만히 앉아 부러워하는 사람만이 흘리는 것이다." 누군가가 그어놓은 잣대를 좇아가는 삶은 재미가 없다. 필자가 대학에 진학하고서 뜻 모를 회의를 품었던 것도 남의 성공에 침을 흘리고 그것만을 좇았던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십대에게 특권이 있다면 다름 아닌 열정, 그리고 패기일 것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맘때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자. 답이 나왔다면, 아니 해답은 어쩌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일단 한 발 내딛어보자.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우리는 이십대이지 않은가.
최우리(국어국문학 1) 독자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