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삭제된 섬, 삶, 말
[기고] 삭제된 섬, 삶, 말
  • 학보편집국
  • 승인 2014.12.0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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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희 교수 국어국문학과

시공사의 'Just Go' 시리즈는 여행정보 가이드북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구하기도 쉽다. 이 가이드북은 여행을 떠날 사람들에게 여행지의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 한권만 들면 여행지 안에서 어디든지 돌아다닐 수 있을 것처럼 광고되기도 한다. "명소 총망라"라든지 "완벽 가이드"는 이런 가이드북에 늘 따라붙어 다니는 광고 문구이다.

필자가 오키나와에 가게 되었을 때에도, 도서관에서 'Just Go' 시리즈의 『오키나와』 편을 빌려 읽었다. 이 책은 오키나와를 북부 중부 남부, 공항이 있는 나하시, 그리고 케라마 열도로 나누어 설명한다. 필자는 오키나와에 가기 전까지 그곳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에, 이 여행 책자에서 설명하는 오키나와 본섬과 케라마 열도가 오키나와의 전부인 줄 알았다. 사실, 일본의 오키나와현은 오키나와 제도, 다이토우 제도, 미야코 제도, 아에야마 제도 등 총 363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근처에 중국과의 분쟁 지역인 센카쿠 열도도 있다.

그런데 한국의 여행 가이드북에는 오키나와를 이루는 수많은 섬들이 제외되어 있다. 한국의 여행 가이드북에는 없는 섬-한국이나 한국인과는 전혀 관계없는 남국 혹은 일본의 일부분일 뿐인 것처럼 느껴지는 섬들. 한국인들에게 '오키나와'의 섬들은 왜 삭제되어 버린 것일까.

사실, 오키나와는 한국영사관이 있을 정도로 한국 정부와 직접적인 관계를 지속해 왔던 곳이다.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1972년까지 미군정의 통치를 받아 왔던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되자, 오키나와에서는 재빨리 조총련과 민단이 조직되었다. 한국은 오키나와에 영사관을 설치함으로써 안보 문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군의 동향을 살피는 한편, 조총련의 활동을 견제하는 기능을 하도록 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에 군부나 병사로서 그리고 일본군위안부로서 희생되었던 '조선인'에 대한 규명이나 당시 오키나와에 살고 있었던 1,000여 명의 한 국인에 대한 지원보다, 냉전 상황에서의 '정치적 군사적 고려'가 우선시 되었던 것이다. 오키나와는 휴전선 없이 남과 북이 뒤섞여 팽팽한 긴장상태를 유지해 갔던 냉전의 이데올로기가 현현되는 공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키나와의 역사와 오키나와로 갔던 '조선인'들의 역사는 한국인에게서 서서히 잊히고 인식의 지도에서 삭제되어 간다.

1973년부터 1995년까지 '조총련'의 활동과 '북괴'를 견제하며 오키나와의 나하시(市)에 주재했던 대한민국영사관은 이제 없다. 또한 1972년부터 1998년까지 활동했던 오키나와의 조총련 조직도 이미 해산했다. 이제는 오키나와에서의 조선인의 삶, 조선인의 고난, 조선인의 역사는 잊히고 '아름다운 휴양지 오키나와'의 이미지만 남아 있다. 한국인에게 '휴양지' 혹은 '관광지'로 인식되는 오키나와가 다이토우 제도, 미야코 제도, 아에야마 제도를 포함한 363개의 섬일 필요는 없다. 일반적인 관광지, 휴양지로서의 '오키나와'는 본섬과 케라마 열도 '정도'로 족하기 때문이다.

여행 가이드북에선 소개하지 않은 미야코 제도의 미야코 섬에는 일본군 위안부를 추모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아리랑의 비'와 12개의 언어로 반전평화의 메시지가 새겨져 있는 '여자들에게'라는 기념비가 있다. 일본 자위대가 주둔하고 있는 장소 옆, 작은 비석이 놓여 있는 벌판의 주위는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군의 위안소가 있었던 곳이다. 한국인에게 잊힌 섬, '오키나와'의 미야코 제도에는 잊히고 배제되어 왔던 그들의 '말'이 남아있다. 그런 오키나와에 가는 일은 우리가 냉전기를 지나면서 삭제시켜 온 '섬'들, '삶'들, 그리고 '말'들을 만나는 것, 그리고 '섬'들, '삶'들, '말'들을 되살리고 듣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장수희(국어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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