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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치열하고 아름다운 경쟁
박현재 인턴기자  |  hyunj92@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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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2  14:4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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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선수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까지도 F1의 라이벌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다. <일러스트레이션=이승은 기자>

'The winner takes it all'.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1984년 F1 모나코 그랑프리에선 승자보다 주목받은 사람이 있다. 바로 F1 드라이버 아일톤 세나다.

모나코 그랑프리 결승전. 그는 예선을 통과한 20명 중 13번째 위치에서 출발했다. 모나코 그랑프리는 시가지 코스로 평소에도 추월이 어려운 서킷(경주용 도로)으로 유명하다. 결승 당일 많은 비까지 오면서 경기는 더 어려워졌다. 이런 환경 속에서 데뷔 1년 차인 세나는 믿을 수 없는 주행으로 단숨에 2등까지 치고 올라와 선두 알랭 프로스트를 위협했다. 하지만 비로 인한 사고 위험 때문에 경기가 중단됐고, 당시 선두에 있었던 프로스트의 우승으로 그랑프리는 끝나버렸다. 급하게 마무리된 경기 탓인지 팬들은 우승자인 프로스트보다 세나의 경이로운 주행에 더 열광했다. 이 경기가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의 치열한 라이벌 구도의 출발점이다.

두 선수는 라이벌 관계를 증명하듯 주행 스타일이 극명하게 달랐다. 프랑스 출신의 알랭 프로스트는 철저한 서킷 분석과 조용하고 안정된 주행으로 '서킷 위의 교수'라고 불렸다. 그는 1985년과 1986년 월드챔피언을 차지하며 세계 최고의 F1 드라이버로 명성을 떨쳤다. 브라질 출신의 아일톤 세나는 천부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한 과감한 주행을 즐겼다. 특히 빗속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 '레인 마스터'라 불리며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서로 다른 팀에서 활약하던 그들은 1988년, 세나가 프로스트의 소속팀 맥라렌으로 이적하면서 동료가 됐다. 둘 사이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당시의 F1은 16번의 그랑프리로 한 시즌이 구성됐다. 각 그랑프리가 끝나면 순위별로 점수를 부여하고, 시즌이 끝나면 점수를 합산해 월드챔피언을 결정한다. 1988년, 세나는 8회, 프로스트는 7회의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종료 후 점수를 합산한 결과 세나가 프로스트를 3점 차로 밀어내고 생애 첫 월드챔피언에 올랐다. 팀 입장에서는 두 선수의 활약이 반가웠겠지만, 같은 팀에 최고의 선수들이 있으니 치열한 자존심 싸움이 이어졌고, 정비인력이 정보를 공유하지 않기도 했다.

그들의 감정은 1989년 일본 그랑프리에서 폭발했다. 프로스트는 세나가 그랑프리 점수만 차지하지 않는다면 다시 월드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다. 세나는 월드챔피언의 기회를 이어가기 위해선 무조건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해야 했다. 경기가 과열되면서 두 선수는 경기 중에 충돌했다. 프로스트는 이전까진 세나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여러 번 순위를 양보해주었지만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충돌 후 프로스트는 그대로 경기를 기권했다. 그러나 세나는 레이스를 재개했고 가장 먼저 결승점을 통과했다. 하지만 대회 운영위원회는 그가 정규 코스를 이탈해 주행했다는 이유로 실격을 선언했다. 그렇게 1989년 월드챔피언은 프로스트의 차지가 됐다.

세나는 반발했다. 프로스트가 당시 세계자동차연맹(FIA) 회장 '장-마리 발레스트르'와 친분이 있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세나와 프로스트의 소속팀 맥라렌 역시 이의를 제기하고 조사를 신청했다. 하지만 이의제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프로스트는 자신의 소속팀까지 이의를 제기하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프로스트는 더 이상 세나와 한솥밥을 먹는 것이 불가능하다 판단했고, 결국 페라리로 소속팀을 옮겼다.

이듬해인 1990년, 일본 그랑프리에선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된다. 이번에는 프로스트가 점수를 획득하지 못하면 세나가 월드챔피언을 차지하는 것이다. 세나는 예선전에서 1위를 차지해 결승전 선두자리에서 출발했다. 유리한 자리였지만 노면이 좋지 않았다. 세나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공격적인 주행을 펼쳤다. 결국 두 번째 자리에서 출발한 프로스트와 첫 코너에서 충돌하고 두 선수 모두 경기를 기권했다. 이 사고로 1990년 월드챔피언은 세나의 차지가 됐다. 이때 프로스트는 세나를 향해 "정말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성적 부진으로 1991년 페라리에서 해고당한 프로스트는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1993년 윌리암스와 2년 계약을 맺고 다시 F1에 참여했다. 그해 그랑프리 7승을 거두며 월드챔피언에 올랐으나 돌연 은퇴를 했다. 소속팀 윌리암스가 세나의 영입에 관심이 있으며, 세나와 결코 같은 팀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1994년 세나는 윌리암스로 이적한다. 최고의 라이벌이 떠난 서킷에 홀로 남은 세나는 고독함 탓인지 1994년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불의의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자동차를 조종하지 못하고 평범한 코너에서 벽에 충돌한 것이다.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계 결함이 가장 유력했다. 그의 사망소식은 전 세계 F1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세나의 조국 브라질은 그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렀고, 전 국민이 애도를 표했다. 평생의 라이벌 프로스트는 사고 당시 세나의 마지막 경기를 해설하고 있었는데, 그 역시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세나의 장례식에서 운구를 맡을 정도로 세나의 죽음을 애도했다. 현재 프로스트는 '아일톤 세나 재단'의 이사로 일하고 있다.

두 선수는 당시 누가 더 잘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자랑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F1의 라이벌을 이야기할 때 그들은 빠지지 않는다. 치열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경쟁은 F1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기억될 것이다.

 ※참고 자료
<세나 : F1의 신화, 아시프 카파디아, 2011>

<전설, 너를 꺾어야 신화가 된다, 매거진S, 제148호, 2011>
<'서킷의 교수' 알랭 프로스트, F1 드라이버 열전, 김태종,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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