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人터뷰] 28살 교장선생님
[동아人터뷰] 28살 교장선생님
  • 김승연 인턴기자
  • 승인 2015.03.02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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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야학교장 은현범(산업경영공학 4)
▲ 형설야학교장 은현범(산업경영공학 4) 학생

우리 대학교에 교장선생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러 나섰다. 첫 만남은 그의 전화벨 소리로 시작했다. 그는 이후로도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에 친절하게 응했다. 넓은 도로를 지나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갔다. 오래된 건물의 3층을 가리키며 그는 "여깁니다"라고 말했다. 입구에 아직 달리지 않은 간판이 놓여 있었다. 얼마 전에 괴정으로 이전한 형설야학은 새 단장으로 분주하다. 여러 사람이 좁은 계단을 통해 들락거렸다. 도착하자마자 복사기 기사와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그는 우리 대학교에 재학 중인 은현범(산업경영공학 4) 학생이다.

삼수를 한 그는 2008년 학교에 등록하고 바로 입대했다. 전역 후 4살이나 어린 친구들과 수업을 들으려니 적응도 안됐다. 문득 나를 위한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일 년 휴학을 결심했다. 시곗바늘을 멈추니 정리가 된 느낌이었다. 복학한 그는 마음을 다잡고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교외활동도 해보기로 했다. 그는 "그때 게시판에 붙어 있던 형설야학 교사 모집 광고를 봤다"며 "야학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고 교사를 모집한다기에 일단 와봤다"고 말했다.

당시 형설야학은 지하에 있었다. 경사진 계단은 위태로웠다. 교실은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고 책상은 녹슬어 있었다. 방화장치와 화장실도 없었다. 그렇지만 당시 참관수업을 하면서 본 열성적인 어르신들의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이곳 수업의 중심은 아버님, 어머님이에요. 40세부터 83세까지 계십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바로 말씀하시고 항상 아직 다 못 적었다고 칠판을 지우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는 이런 야학의 모습에 매료됐다.

'교장'이라는 직함만큼 은현범 학생이 하는 일은 많다. 현재 형설야학은 초·중·고반, 한글반, 주말반 등 5개 반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학교 운영과 직결되는 재정 부분을 전담하고 있다. 형설야학은 비영리로 운영된다. 교육청 등 여러 기관에서 실시하는 문해교육(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 사업에 신청서를 제출하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그는 "이렇게 하면 재정의 40%는 해결이 된다"고 말했다. 나머지 60%는 교장의 역량으로 채운다. 발로 뛰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서류철에는 형설야학에 관한 프레젠테이션 자료와 수십 가지 명함이 들어있다. 어디든 가서 형설야학을 알린다. 그는 야학 공간 이전을 위해 사하구청 희망복지지원단에 도움을 요청하고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모금활동을 벌였다. 보름 만에 600여 명의 네티즌이 정성을 보내왔다. 특히 부산의 한 후원자가 "이전 비용의 상당 부분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가 발품을 판 덕에 형설야학은 더 좋은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은현범 학생이 야학을 시작한 지 2년 5개월이 지났다. 4학년이 봉사 때문에 시간을 뺏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걱정 섞인 시선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교과지식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은현범 학생은 형설야학을 통해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야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문을 닫는 데에 있다"고 했다. 야학은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올해 전국 야학 50여 곳이 문을 닫았다. 학생 수가 아닌 재정적인 문제가 원인이었다. 그는 "아직 야학은 운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현범 학생은 난방이 되지 않아 얼어붙은 손으로 인터뷰 중간에 오는 전화를 수시로 받았다. 야학 관련 전화들이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감사합니다." 넉살 좋게 대화를 이어간다. 이렇게 그는 하루에 수십 통의 전화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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