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
[기고]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
  • 학보편집국
  • 승인 2015.03.0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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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욱 교수 한국어문학과

인간이 홀로 생존하기 어려운 사회적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인간은 또한 각각의 개별적인 삶을 살아가는 단독자이다. 우리는 대체로 그 단독성과 사회성의 조화와 어긋남 사이에서 요동하며 살아간다. 과학 기술이 미비했던 전근대적 삶의 조건이 사람들끼리의 공고한 협력을 필요로 했다면, 첨단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식의 협력적 공동체 의식은 지극히 희박하다. 심지어 현대의 삶이란 다른 이들을 적대적인 경쟁자로 여기는 생존투쟁의 살벌한 전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는 타인과의 적대마저도 넘어서, 오직 자기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자기 착취의 '피로사회'(한병철)라는 견해마저도 각광을 얻고 있지 않은가. 히키코모리와 오타쿠가 이미 일종의 사회문화적 현상이 된 일본의 사정이 유별난 것은 아니다.

은둔하는 외톨이들은 반사회성을 증명하는 사례라기보다는 차라리 사회성의 과잉이 낳은 병리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대개 그들은 사회에 속하고 싶은 그들의 열망이 좌절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배타적인 공동체는 그 사회적 집단의 공통성과 어긋난 사람들을 소수화하면서 배제한다. 이른바 '왕따'는 특이한 약소자에 대한 배타적 공동체의 처벌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집단에 소속되지 못한 자들의 은둔이란 실로 극단적인 고립이다. 이는 그들의 반사회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배제한 집단이 과잉 요구하는 사회성의 배타적 폭력성을 부각시킨다. 이런 폭력성의 에토스는 개인의 삶에 대한 그 사회의 야만적인 간섭을 극명하게 가시화한다. 소수적인 삶의 단독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곳에서 개인의 한갓 외로움은 절대적인 고독으로 비약하기 어렵다.

외로움의 정념에 지친 사람이 자기를 외롭게 만든 사회에 적개심을 보이는 사례를 우리는 심심찮게 목격한다. 점증하는 '묻지마 범죄'들과 소위 '일베'들의 소란은 외로운 자들의 뒤틀린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타인과의 건전한 교류에 실패하고 고립될 때 발생하는 정념이 외로움이라면, 그 외로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오래 고립된 사람은 결국 자기를 고립시킨 사람들과 그 집단에 대해 증오의 정념으로써 대항한다. 그리고 타인을 향한 증오의 크기에 비례하는 자기애로 외로운 자기를 보호하려 한다. 어떤 의미에서 나르시시즘은 외로움에 짓눌린 유약한 사람들의 불행한 도취인 것이다.

처절한 외로움 속에서 타인들을 증오하며 병리적인 자기애에 빠진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그 사회는 위험해진다. 공동체로부터 고립된 사람들은 그 공동체를 신뢰하지 않으며, 결국 타인에 대한 신뢰마저 거두고 자폐적인 은둔으로 자기의 삶을 황폐화시킨다. 외로움의 정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건전한 공동체를 기대하기 힘들다. 반대로 고립의 두려움 때문에 사회의 시류에 영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도 건전한 공동체에 대한 기대는 무망해진다. 당대 사회의 주류적 시속에서 벗어나는 것에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느끼는 것 역시, 실은 은둔의 외톨이들과 같은 심사다. 외로움에 지친 사람이나 외롭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사람이나, 그 마음은 공히 고립에 대한 공포의 표현인 것이다.

집에 가만히 앉아 사색에 잠기는 일상은 현대인들에게는 점점 낯선 것이 되고 있다. 심심함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무언가에 몰두함으로써 창의적인 여백의 시간을 소비하고 마는 것이 지금의 세태다. 아마 미디어 중독이 그 분명한 표정일 것이다. 스마트폰이라는 일개 도구에 지배당한 심심한 시간들은 사실 창조적인 것들을 사색하고 궁리할 수 있는 시간이다. 심심함을 참지 못해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쇼핑을 하고, 채팅을 하고, SNS에 빠져들 때, 결국 우리는 '외로움'을 추방하는 대가로 그 창의적인 '고독'의 시간을 소비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도널드 위니콧의 말을 빌리자면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우정(사랑)이 형성되는 조건이다." 고립에 대한 두려움에 떨지 말고, 고독으로 비약되지 못하는 외로움 속에서 주눅 들지도 말고, 도저한 마음으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혼자서 가는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드디어 친구를 만나고 우정을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좋은 공동체란 바로 그런 우정 위에서 가능한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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