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자각타임] 사랑하고 있습니다, 어딘가의 그녀를
[현실자각타임] 사랑하고 있습니다, 어딘가의 그녀를
  • 안희석 기자
  • 승인 2015.03.02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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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녀(Her)>
▲ 영화 <그녀(Her)> 포스터

견우와 직녀는 서로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꼬박 365일을 기다린다. 그들이 한 해를 견딜 수 있었던 건 멀리 있어도 언젠가는 꼭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대화는 가능하지만 영원히 만날 수도, 볼 수도 없는 존재와 사랑해야 한다면 어떨까. 영화 <Her>는 형체 없는 대상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혼 후의 삶을 버티기 힘들어하던 남자가 호기심에 인공지능 운영체제를 구입한다. 컴퓨터에 운영체제('그녀'라고 하겠다)를 설치하면 모바일 기기로 24시간 대화할 수 있다. 그녀와 첫인사를 나눈 남자는 놀라울 정도로 진짜 같은 말투와 목소리에 매료된다. 그는 늘 이어폰을 꽂은 채 그녀와 일상을 나눈다. 둘은 점점 친밀감을 쌓더니 급기야 사랑에 빠진다. 남자는 목소리만 들리는 그녀와 대화하며 애정을 쌓아간다.

사랑에 스킨십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살을 맞대면 몸에서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 호르몬은 정서 안정에 매우 효과적이다. 스킨십으로 유대감을 형성하면서 더욱 깊은 관계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스킨십 없는 사랑을 지향하는 플라토닉 러브의 경우, 상대방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인지하면서 애착을 형성한다. 이처럼 내 곁의 누군가가 있음을 느끼고 존재를 확인할 수 있어야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체가 없고 살을 맞댈 수 없는 운영체제에게 존재감과 애착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 운영체제는 실제 여자에게 하루만 자신의 껍데기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딱한 사정에 감동한 여자는 운영체제의 목소리에 따라 연기한다. 이어폰을 꽂은 채 서로를 어루만지는 몸의 대화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껍데기 역의 여자가 남자와 입을 맞추려는 순간 긴장감에 입술이 떨렸고, 현실을 자각한 남자는 여자에게 그만하자고 한다.

운영체제와 할 수 있는 애정표현은 사랑한다, 좋아한다 등의 대화가 전부다. 국내의 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교제 기간이 길어질수록 언어를 이용한 애정표현 빈도가 줄어든다. 반면 스킨십 여부와 연인 간의 육체적 활동 횟수는 교제 기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언어가 필요 없는 애정표현이 대화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운영체제와 남자 사이에서도 시간이 갈수록 언어를 이용한 애정표현 빈도가 낮아질 것임은 빤히 보인다. 그런데 대화가 전부인 그들의 연애에는 대화를 대신할 애정표현이 딱히 없다.

"저렇게 지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상상해요. 내가 몸을 갖고 당신 곁에 서서 걸어가는 그런 상상." 영화 속 운영체제가 했던 말이다. 같이 사진을 찍을 수도, 맛있는 음식을 서로에게 떠먹여 줄 수도 없는 사랑은 아직 우리에게 익숙지 않다. 그렇게 대화로만 사랑을 키워나가다 훗날 결혼이라도 약속한다면 비참하지 않을까. 모니터에 면사포를 씌우고 곁에 서서 사진을 찍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현재 기술이 발전하면서 나름의 인공지능 운영체제가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아이폰의 '시리(Siri)'인데, 시리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우린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요"와 같은 재치있는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하나의 인격체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이런 인공지능 운영체제에게 온전한 내 사랑을 전달하기는 힘들다. 미래에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사랑을 받을 대상은 서로를 보듬어줄 수 있는, 지구를 같이 밟고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참고자료
<이지연, 「낭만적 사랑의 지속기간에 따른 애정표현행동의 변화」, 중앙대 석사학위논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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