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이 살아있다②] 궁궐의 품격, 동궐도
[박물관이 살아있다②] 궁궐의 품격, 동궐도
  • 김성환 기자
  • 승인 2015.04.07 1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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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대학교 석당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동궐도(국보 제249-2호). <사진제공=석당박물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는 경복궁 근정전이 자주 나오지만, 사실 조선의 왕들이 경복궁에서만 생활했던 것은 아니다. 궁궐도 건축물이라 노후되면 보수·증축해야 하고, 화재나 전쟁으로 새로 짓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조선왕조는 평시에 두 궁궐을 유지했다. 이를 양궐(兩闕)체제라고 한다. 두 궁궐 중 왕실의 주요 생활공간이자 제1의 궁궐을 법궁(法宮), 유사시에 대비해 법궁에 준하는 수준으로 지은 궁궐을 이궁(離宮)이라 부른다.

창덕궁은 최초의 법궁인 경복궁의 이궁으로 태종 5년에 지어졌다. 그리고 성종 14년, 3명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창덕궁 옆에 창경궁을 세웠다. 사람들은 가까이 위치한 창덕궁과 창경궁이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 하여 둘을 묶어서 '동궐'이라고 불렀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경복궁이 소실됐으나, 왕실은 재건을 포기하고 동궐만 복구해 창덕궁이 법궁이 된다. 이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 전까지 동궐은 조선의 주요 궁궐이었다. 우리 대학교 석당박물관의 동궐도는 법궁과 이궁을 오가며 조선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동궐(창덕궁과 창경궁)의 전체적 경관을 그린 작품이다.

동궐도는 순조(재위 1800~1834)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던 시기에 직접 제작을 지시해 그려졌다고 추정된다. 천지인(天地人) 세 부가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두 부만 남아 각각 석당박물관과 고려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고려대 소장본에는 '동궐도 인(人)'이라는 표제가 쓰여 있는데 우리 대학 소장본 표제에는 별다른 표시가 없어 천(天) 또는 지(地)편으로 추정된다. 우리 대학 소장본은 병풍 형태로 원래 궁궐도(보물 제596호)였으나 형식·기법·크기 등에서 동일성을 인정받아 동궐도(국보 제249-2호)로 승격됐다.

▲ 확대한 동궐도. 정밀한 건물 묘사가 돋보인다.<사진제공=석당박물관>

동궐도는 석당박물관 2층 서화실의 가장 안쪽에 있다. 그림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창덕궁과 창경궁이 있고 각종 건축물과 자연의 모습이 평행사선구도와 부감법, 원근법을 활용해 세밀하게 그려졌다. 또한 녹색과 적색의 적절한 사용으로 색감 표현도 뛰어나다. 크기는 세로 274cm, 가로 578.2cm로, 가로는 보통 성인남성 체격인 기자가 큰 걸음으로 8걸음을 걸어야 끝에 닿고 세로는 서화실 천장에 이른다.

거대한 화폭에 매우 정밀하게 궁궐과 전각의 모습을 묘사한 동궐도는 고증적 가치가 높아 일제에 의해 크게 훼손된 창경궁 복원에 큰 도움이 됐다. 석당박물관 박창열 큐레이터는 "동궐도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우리 대학에 들어왔고 석당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내세울 수 있는 작품"이라며 "많은 학생들이 짬을 내 가까이 있는 국보를 감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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