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비독서 세대, 좋은 책이 아니라 좋은 만남이 중요
[기고] 비독서 세대, 좋은 책이 아니라 좋은 만남이 중요
  • 학보편집국
  • 승인 2015.04.0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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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식 교수 교양교육원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는 『백과사전』에서 "한 세기 두 세기 흘러가면서 연구 성과들이 끝없이 쌓여가다 보면 무수한 책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시대가 오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고 했다.

『개미』로 유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비슷한 말을 했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무의미한 정보들 속에서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정보가 어떤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과잉은 창조를 익사시키고 범람을 걸러내야 하는 비평은 정보의 홍수 앞에 주눅이 들어 버린다." 그의 대표작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 등장하는 말이다.

두 사람 모두 오늘날의 현실을 너무나 적실하게 지적하고 있다. 1700년대를 살면서, 수 세기 후의 일을 정확히 예언한 디드로의 성찰은 감탄 그 자체이며 디드로를 오마주(Hommage)한 베르베르의 날카로운 지적은 놀랍기 그지없다.

두 사람 말대로 오늘날에는 범람하는 출판물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책을 선택하여 마음의 양식으로 삼을 것인가를 고민하다 아예 독서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베르베르는 이를 권력의 문제로 본다. 과거에는 정보를 차단하면서 사람들을 통제했다면 이제는 오히려 정보를 범람시켜서 사람들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진실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권력은 대중들이 쏟아지는 정보를 정신없이 소비하다가 길을 잃게 한다. 결국, 대중들은 도전이나 창조와는 멀어진 채 주어지는 정보를 소비하기에 바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도 정작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통제 지향적 권력이 가장 선호하는 현상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젊은 세대들 가운데 유의미한 독서 경험이 전무한 경우도 있다고 하니 놀랍다. 이른바 '비독서 세대'가 늘고 있는 것이다. 비독서 세대가 늘어나는 이유는 독서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나 경제적·시간적 문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선택의 문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즉,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안 읽는다는 말이다. 그게 그것 같고 비슷한 것이 난무하고 뻔한 말만 되풀이하고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이런 사람들은 독서의 중요성도 알고 있고 독서를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투자할 의지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책과의 좋은 만남이다. '인문학 100선', '00대 선정 필독서'와 같은 제목 나열식으로는 안 된다. 그것들이 '좋은 책'인 것은 분명하겠지만, 반드시 '좋은 만남'을 선사한다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좋은 책이 좋은 만남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 역시 학부 시절에 『자본론』을 접했었지만 결코 유쾌하지는 않았다. 결국, 책 자체의 무게감이 아니라 책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대학교에서 발행한 『청춘의 탐독』은 출판의 범람 속에서 방황하는 비독서 세대들에게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만하다. 여기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책과의 좋은 만남을 선사하기 위해 좋은 책 50권을 골라 소개하고 있다. 두꺼운 책과의 지루한 사투가 아니라 짧은 글의 경쾌한 리듬으로 자신에게 맞는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는 유쾌한 장이 펼쳐져 있다.

곧 '세계 책의 날'(매년 4월 23일)이다. 하지만 한국인 월평균 독서량은 0.9권으로 독서량이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젊은 세대일수록 점점 심하다고 하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만약 비독서 세대 가운데 수많은 책 중에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는 사람이 있다면 『청춘의 탐독』을 디딤돌 삼아 책과의 좋은 만남을 보낸 후, 독서의 진정한 의미를 경험해 보길 바란다. 그래야만 디드로가 말한 '길을 잃은 시대'에서 '길을 찾은 시대'로 나아갈 수 있으며, 베르베르가 말한 '과잉 속에 익사한 창조'를 '과잉 속에서 잉태한 창조'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권력의 통제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할 수 있는 통찰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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