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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이번 역은 부산입니다 l  일상과 설렘이 함께하는 곳①부산역
서영우 선임기자  |  hakbosyw@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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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07  1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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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의 부산역은 고요하다. 첫차 시간까지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잠이 든 승객들, 아마도 매일같이 이곳에서 잠을 청하고 있을 노숙자들, 그리고 어젯밤부터 있었을 당직 역무원들이 새벽의 부산역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하루에도 수만 명이 오가는 부산 최대 규모의 기차역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다. 조명도 최소한으로만 켜놓은 모습이 흡사 거대한 찜질방을 연상케 한다.

6분쯤 지나자 아직 잠이 덜 깬 듯한 역무원이 대합실을 돌아다니며 텔레비전을 켠다. 역내에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니 그제야 조금 기차역다운 분위기가 나기 시작한다. 4시 15분, 예정보다 9분 연착된 서울발 막차가 들어오자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된다.

시간이 갈수록 뉴스를 보는 승객도 점점 늘어난다. 5시 부산발 첫차를 기다리는 그들은 아무도 연락할 사람이 없기 때문인지 스마트폰보단 텔레비전 뉴스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알찬 당일치기 여행을 준비하는 여대생, 출장 때문에 아침 일찍 올라가 봐야 하는 직장인, 그리고 전날 함께 밤을 새운 장거리 연인들이 부산역에서 첫차를 기다린다.

역에선 누구나 진심을 아끼지 않는다

해가 밝아오고 역내 매장들이 하나둘 셔터를 올리기 시작하면 부산역은 사람들로 붐빈다. 불과 몇십 분 사이에 수백 명의 승객이 내리고 타는 모습이 반복된다. 출발 15분 전에 나오는 안내 방송이 끝나자마자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승객이 있는가 하면, 몇 분만을 남겨놓은 채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다.

열차에서 내려 대합실로 들어오는 승객들은 이따금 캐리어를 천천히 끌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혹시나 마중 나온 누군가를 찾는 표정이다. 자신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단 걸 확인한 뒤에야 그들은 담담히 계단을 따라 역을 떠난다.

평소엔 특별하지만 부산역에선 평범한 존재가 있다. 바로 군인이다. 전역 날인지 유독 왼쪽 가슴에 예비군 약장을 단 군인이 많다. 다들 화려한 장식과 부대원들의 이름을 자수로 새겨 넣은 전역모를 쓴 채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부모님과 재회하는 한 군인은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걸어간다. 부산역 바깥 광장에선 여자친구에게 전역신고를 하는 군인의 모습도 눈에 띈다. 21개월 동안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녀에게 키스하는 모습에 몇몇 이들이 박수를 쳐준다.

열차의 출발은 부산역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흔한 행사다. 기차가 가장 정시성이 뛰어난 교통수단인 만큼 승객들은 출발시각 방송에 항상 귀를 기울인다.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싸우던 커플도 열차의 출발 앞에선 그만둘 수밖에 없다.

장거리 연인인 듯한 두 사람은 탑승 안내방송이 나오자 남자는 나가는 문 6번으로, 여자는 타는 곳 6번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바로 옆에서 열차가 떠날 때까지 배웅하는 연인들도 있다. 열차의 창 너머로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사랑해'를 속삭이는 여자, 열차가 출발할 때 플랫폼 끝까지 달리며 배웅하는 남자. 이처럼 연인들의 모습도 가지각색이다.

저마다의 이유로 부산역을 찾는다

역 내부만큼이나 부산역 광장 또한 다양한 것들로 가득하다. 이곳은 기차가 몇 시에 출발하며 자동발매기로 승차권을 구입하면 몇 프로 할인되는지에는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이 모인다.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거나, 목이 쉬도록 자신의 종교를 전파한다. 혹은 자신의 처지를 알리기도 한다.

모 그룹 비리를 고발하는 조끼를 입은 아저씨 세 사람은 벤치에 앉아 무언가 열띤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진지한 모습에 이끌려 가까이 가봤더니, 극진 가라테의 창시자 최배달 선생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중이다.

   
 

밤이 깊어지면 부산역은 잘 준비를 시작한다. 매장들도 하나씩 문을 닫고 직원들도 퇴근한다. 막차를 기다리는 승객 몇몇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막차가 출발하고 나면 역 내의 대부분 조명과 텔레비전 등 거의 모든 시설의 불을 끈다. 달빛이 가득한 2층 만남의 광장은 묘한 아늑함을 자아낸다. 딱딱한 의자에서 잠을 청해야 한다는 것만 빼면 부산역은 숙소로서 알맞은 분위기다.

대중교통이 끊길 무렵, 기차에서 내린 승객들을 맞이하는 건 부산역 택시 정류소 뒤로 끝없이 늘어선 택시 행렬이다. 자정 이후에도 부산역에 도착하는 열차들이 많아서 이곳에 내린 승객들을 태우기 위해 택시 기사들이 줄을 선 것이다. 2열로 늘어선 택시 행렬은 초량역 1번 출구까지 이어져 있다. 열차가 한 번 도착하고 다음 열차가 오기까지 기사들은 택시에서 내려 저마다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낸다. 예전부터 잘 알던 사이인 것처럼 친근한 모습이다.

또다시 셔터를 올리고 텔레비전 전원을 켜야 하는 이들에겐 부산역은 단지 하나의 일상일 뿐이다. 하지만 떠나는 이들에겐 설렘을, 돌아온 이들에겐 편안함을 주는 곳이다. 떠나는 사람이 있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있는 한 부산역의 불은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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