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학이 살아야 한국 문학이 산다"
"지역 문학이 살아야 한국 문학이 산다"
  • 안희석 학보편집국장
  • 승인 2015.10.0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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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쓰는 작가, 이상섭

바람이 선선해지고 공기의 온도가 낮아지는 가을이 찾아왔다. 책 읽기 좋은 계절에 책 쓰는 작가를 만났다. 바로 부산 문학 살리기에 힘쓰는 이상섭 작가다.

이상섭 작가는 우리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출신이다. 단편 소설 '슬픔의 두께'로 199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펼치며 『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2006),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2009), 『굳세어라 국제시장』(2010), 『챔피언』(2014) 등을 발표했다.

그는 현재 해운대관광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러 부산진구 당감동의 한 카페를 찾아갔다.

"소설은 하나의 수공예 작품"

- 첫 소설집 『슬픔의 두께』를 굉장히 재밌게 읽었어요. 첫 소설집이다 보니 애착이 많이 갈 텐데 어떤가요?

『슬픔의 두께』 별론데요.(웃음) 사실 '작품집을 엮어내야 한다'는 압박이 많이 묻어있는 책이에요. 스토리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아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없어서 아쉬운 작품이죠. 애착 가기는 하지만, 세월 지나서 읽어보니 당시의 고됨이 드러나는 안타까운 작품이에요.

- 학교 졸업 후에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기까지 작가가 되려고 따로 준비한 건가요?

졸업하자마자 작가 준비는 따로 안 했어요. 학교 다닐 때 아버지의 권유로 교사가 되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국어국문학과에서 상위 10% 정도의 성적이면 교직을 이수할 수 있다기에 학점 관리에만 집중했어요. 자연스레 문학을 조금 멀리했죠. 그러다가 졸업 후에 교사가 됐는데, 사실 교사직에 큰 흥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교사 월급으로 현대 문학을 사서 읽으며 소설을 써보자고 결심했죠.

소설을 혼자서만 쓴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부산소설가협회'에 들어갔어요. 거기는 일반 사람들에게 소설 쓰는 법, 구체적으로 문장을 어떻게 꾸리고 주제를 어떻게 드러내는지 등을 부산 소설가들이 가르쳐주는 곳이거든요.

6개월짜리 과정을 마치고 같이 수료한 사람들과 소설 공부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서로의 작품을 공유하거나 기성 소설가에게 특강료를 주고 강의를 부탁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3년을 공부하고 '슬픔의 두께' 단편을 썼어요. 사실 이 작품이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이 될 줄은 진짜 몰랐어요.

- 『슬픔의 두께』부터 『챔피언』에 이르기까지 바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많던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요?

유능하고 젊은 작가나 서울에서 이름 날리는 작가들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과 정면 대결하기엔 지리적으로 열악한 면이 사실 많아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부산 출신인 만큼 바다 이야기를 많이 써보고자 했어요. '바다 이야기'하면 '이상섭'이 떠오르게 특화하고 싶었죠. 그런데 자꾸 바다 이야기만 쓰다 보니까 너무 틀에 갇히는 것 같아서 『챔피언』에서는 바다 배경을 좀 빼기도 했어요.

그래도 바다 이야기라는 이상섭만의 색깔은 버리지 않을 거예요. 바다 사람들의 애환이 소설로 만들어져서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다면 큰 보람으로 다가오니까요.

-『슬픔의 두께』 속 작품들은 모두 아버지상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던데 『챔피언』에서는 그런 모습이 적더라고요. 심경 변화라도 있었던 건가요?

『슬픔의 두께』를 쓸 땐 내가 아버지를 부정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어요. 근데 단편을 모아서 작품집으로 만들고 나니까 하나같이 아버지상을 깎아내리고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아버지라는 존재를 『가시고기』(조창인, 2000)처럼 헌신적인 사람으로 그리고자 노력했어요. 왜냐면 나 역시도 한 가정의 아버지고, 사실은 우리 아버지 엄청 자상하셨거든요.(웃음) 이렇게 아버지의 존재를 재고하다 보니 『챔피언』에선 자상한 아버지도 등장한 거죠.

- 보통 소설 소재를 어디서 가져오는지 궁금해요. 개인 경험에서 가져오나요?

소설 속 삽화로 개인 경험을 아주 조금 가미하긴 해요. 그런데 아직 제 경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린 적은 없어요. 작가 본인의 이야기 전부를 소설로 쓴다는 건 더는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는 걸 뜻해요. 저는 주로 다른 작품을 읽다가 느끼는 것들이나 머리를 탁 치는 상상력 등을 메모해요. 그런 다음에 '아, 이 이야기를 삽화로 넣으면 좋겠다'할 때 메모한 것들을 차용해요.

사실 소설은 일종의 '수공예 작품'이에요. 이야기를 하나하나 엮어서 풀어내니까요. 시는 영감이 떠오를 때 짧은 글로 완성할 수 있어요. 그런데 소설은 짧은 시간 안에 완성이 안 돼요. 기본 원고지 80매에 가까운 분량을 써내려면 엉덩이가 버텨줘야 해요. 오죽하면 "소설은 엉덩이로 쓰는 거다"라는 말이 있겠어요.

"개방과 융합은 부산 문학만의 강점"

- 부산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게 힘들지 않은지요?

지역적 한계는 분명히 있어요. 글을 실어낼 지면이 별로 없어요. '슬픔의 두께'로 등단했을 때 '나도 드디어 작가가 됐구나'하고 기뻤어요.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록 원고 청탁 한 번 안 오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중앙 무대를 뚫으라는 주변 조언을 바탕으로 수도권 진출을 준비했어요.

하지만 젊은 작가들 틈에서 당시 40대인 제가 경쟁하는 건 힘들었어요. 그래서 문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어요. 창작과 비평, 문학동네 등에서 나오는 계간지를 모조리 구입하고 읽었어요.

젊은 작가들은 어떤 글을 쓰는지 보면서 일종의 '문학 트렌드'를 톺아봤죠. 꼬박 6년 걸렸어요. 이후 마침내 『창작과 비평』에 등단했죠.

그리고 지역 작가들이 문학 작품만으로 돈을 버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해요. 매년 있는 문학상, 한국예술문화위원회의 창작기금 등밖에 없어요. 한국예술문화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서 창작기금 1,000만 원을 받는다 해도 1년에 한 번이에요. 연봉이 1,000만 원인 셈이죠. 사실 작품을 매년 창작하기란 쉽지 않아요. 괜찮은 작품은 최소 3년은 걸리는데, 결국 3년에 한 번 1,000만 원 받을까 말까 한 거죠. 저는 그나마 교직이라는 생계수단이 있으니까, 지역 작가로 살 수 있는 거예요.

게다가 부산의 특성, 즉 방언을 문학 속에 녹이면 핸디캡이 따라와요. 요산 김정한 선생이 『모래톱 이야기』(1966)를 썼는데, 그게 옛날에는 살아났어요. 그런데 지금은 지역 작가라는 게 드러나면 평가절하되다 보니까 사투리를 잘 안 써요. 이런 것들이 전반적으로 부산 작가에게 힘든 부분이죠.

- 그렇다면 부산 문학만의 강점은 무엇일까요?

일단 부산의 지역적 특성을 꼽아보자면, 개방성과 융합성이에요. 부산은 근대 문물을 제일 먼저 받아들였어요. 밀면이나 국밥 같은 음식들도 사실 피란민들이 몰려와서 만든 음식이잖아요? 개방을 토대로 한 융합이라고 볼 수 있죠.

게다가 부산은 도심이 고(古)도심, 구도심, 신도심 등 총 세 곳이에요. 동래, 남포동, 연제구. 이렇게 세 곳이죠. 도심이 세 곳이라는 말은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거예요. 이처럼 개방성과 융합성이 가득하고 이야깃거리가 많은 부산의 지역적 특징, 이런 걸 잘 살리면 부산 이야기로 문학상을 휩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재능이 있다면 언제든 후배들 응원"

- 향후 작품 활동 계획이 궁금해요. 어떤 소설을 쓸 예정인가요?

몇 년 후에 퇴직하면 장편소설을 쓸 예정이에요. 『굳세어라 국제시장』을 준비할 때, 장사꾼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차츰 구성을 짜고 있어요. 요약하자면 '삼대 이야기'에요. 나라가 없어서 힘든 할아버지 세대, 돈이 없어서 힘든 아버지 세대, 직업이 없어서 힘든 젊은 세대. 이렇게 힘든 삼대의 이야기를 엮어서 장편소설을 쓸 겁니다.

- 소설 작가를 지망하는 동아대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해주세요.

사실 동아대에 문예창작학과가 생기고 나서부터 쭉 지켜봤어요. 근데 소설로 등단하는 학생은 거의 없더라고요. 현실이 도와주지 않는 거죠.

지금 젊은 세대들은 취직하려면 기업에서 요구하는 게 너무 많잖아요. 토익이라든지 자격증이라든지 등등. 그런데 소설은, 문학은 현실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는 공간이에요. 각박한 현실에 치이는 학생들이 과연 상상의 공간에서 놀 수 있겠어요? 급하고 팍팍한데. 여유가 없죠.

그래도 작가를 희망한다면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꼭 확인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본인에게 재능이 있다는 걸 알려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해요. 여러 교수님께 글을 보여주고 그분들이 재능이 있다 하면 시작해보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그런 과정 없이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작가가 되면, 작품을 만들 때마다 쥐어짜내는 고통이 수반돼요. 그런 삶은 살지 말라고 말하고 싶네요.

재능을 찾은 뒤에 열정적으로 문학을 붙잡고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언제든 응원합니다.

- 마지막으로 부산 문학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역 문학이 살아야 한국 문학이 살아요. 그런데 이젠 지역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작품화 할 수 없으니까 안타까워요. 부산에 어떤 작가들이 있는지만 알아줬으면 해요. 그리고서 시간 날 때 작품도 읽어줬으면 하고요. 작가 입장에서는 읽어주는 게 제일 고마워요. 읽어주면 더 쓸 힘이 생기니까. 지역 작가들한테 애정을 가져주면 더 좋은 작품, 부산에서만 나올 수 있는 걸작들이 쏟아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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