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의 이야기
그와 그의 이야기
  • 송혜민 기자
  • 승인 2015.10.0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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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듯 다른 두 사람, F.S. 피츠제럴드와 J.D.샐린저

"전쟁은 나라를 살찌게 하고, 역경은 좋은 문학을 생산한다"는 말이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갈등과 비도덕으로 가득했던 1920년대 미국에서는 세계문학사를 뒤흔든 작품들이 쏟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또 한 번 위대한 작가들이 등장했다. 두 시기, 닮은 듯 다른 삶을 살아간 두 작가가 있다. 프란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이하 피츠제럴드), 그리고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이하 샐린저)가 바로 그들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당시 파리에서 활동하던 몇몇 작가를 가리켜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고 부른다. '잃어버린 세대'란 전후 상실의식을 대변하는 작가들을 상징한다. 당시 전후 사회가 엄청난 경제적 호황에도 불구하고 향락주의, 상류사회의 비도덕성, 허무감, 전통적 가치의 상실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츠제럴드도 이들 중 하나다.

피츠제럴드는 자신을 '잃어버린 세대'라고 부르는 걸 거부했다. 대신 1920년 발표한 『낙원의 이쪽』에서 자신이 속한 세대를 "앞선 세대들보다 가난에 대한 두려움, 성공을 향한 열망에 사로잡힌 새로운 세대"라고 말하며 전쟁으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려버린 당시 청년들을 작품 속에 그대로 녹여냈다.

한편 샐린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인 1950년대를 '샐린저 시대'로 만들어버렸다. 1950년대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와는 또 달랐다. 냉전 시대가 시작됐고 반공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지배했다. 경제적 풍요를 누렸지만, 사회를 향한 비판은 용납되지 않았다. 감시와 억압이 난무했다. 그런 와중에 샐린저가 발표한 『호밀밭의 파수꾼』(1951)은 시대 흐름에 정면으로 도전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시카고대학의 제임스 밀러 교수는 미네소타 작가 시리즈 중 하나인 『J.D. 샐린저』에서 "1920년대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작가도 샐린저만큼 대중적, 비평적 관심을 끌었던 작가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샐린저의 책을 읽었고, 현실에 반기를 드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를 자신과 동일시했다.

전쟁부터 데뷔까지

피츠제럴드는 1896년 미국 미네소타주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작가의 꿈을 꾸며 자랐다. 프린스턴대학에 진학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학업을 중단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군인으로 복무하던 시절 만난 젤다 세이어와 약혼하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별을 통보받는다. 하지만 그의 데뷔작 『낙원의 이쪽』(1920)이 큰 성공을 거두자, 축적한 부로 젤다와 결혼할 수 있게 됐다.

▲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젤다(알리슨 필 분)와 피츠제럴드(톰 히들스턴 분) <출처=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캡쳐>

샐린저 역시 피츠제럴드와 같은 미국 출생이며 피츠제럴드보다 23년 늦은 1919년에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시점이다. 전쟁 직후였으나 사업가 아버지 밑에서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샐린저는 1940년 『휘트 버넷 단편지』에 첫 단편 '젊은이들'을 발표했다. 이후 당대의 유명 잡지 『콜리어스』, 『에스콰이어』, 『뉴요커』 등에서 동시에 신예작가로 발탁돼 화려하게 데뷔한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샐린저 역시 부사관으로 입대해 통신부대와 정보부대에서 근무한다. 군에서도 집필활동을 계속한 그는 1951년 『호밀밭의 파수꾼』을 발표한다.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인 『호밀밭의 파수꾼』은 샐린저를 195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만들었다.

세상 밖으로 나오거나, 등지거나

피츠제럴드와 샐린저 모두 세계대전을 거치며 명성을 얻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명성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너무 달랐다.

데뷔작부터 성공 가도를 달린 피츠제럴드는 성공과 젊음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그는 거둬들인 부와 명예를 자신과 젤다를 위해 모두 써버릴 것처럼 성공을 즐겼다. 당시 피츠제럴드 부부의 나이는 24살, 20살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젊은 부부의 삶은 인기에 취해 휘청거린다.

늘 사교계에서 환영받던 피츠제럴드지만, 『낙원의 이쪽』의 성공으로 쌓은 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유흥비를 감당하기 위해 여러 대중잡지에 글을 써야 했고 심지어 빚을 내기도 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술에 취해 호텔에서 쫓겨나는 해프닝이 잦았다고 전해진다. 젤다는 '남편의 음주를 부추기는 아내'라고 비난받기도 했다.

방탕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피츠제럴드는 또 하나의 걸작을 세상에 내놓는다. 바로 『위대한 개츠비』(1925)다. 이 작품으로 피츠제럴드는 미국 문학사에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위대한 개츠비』는 그의 경제적 궁핍까지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심지어 당시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두고 '피츠제럴드의 종언'이라고 혹평했다.

『위대한 개츠비』 발표 후, 피츠제럴드는 계속된 실패를 맛본다. 젤다의 정신병과 피츠제럴드 자신의 심각한 알코올중독까지 겹쳐 불행한 나날을 보낸다. 그는 젤다의 치료비를 대기 위해 필사적으로 글을 쓰다 1940년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는 피츠제럴드의 사망 이후 재조명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재평가됐고, 영화나 연극 등으로 제작되면서 세계적인 스테디셀러로 도약할 수 있었다.

한편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역시 당대의 비판을 비켜갈 수 없었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가 소설 속의 거친 언어와 반사회적인 표현을 곱게 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 분위기를 뚫고 점차 흥행하기 시작한다. 발표한 지 2년 후 페이퍼백(겉표지도 일반 종이로 처리한 가벼운 형태의 책)으로 출간된 『호밀밭의 파수꾼』은 초대형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샐린저는 피츠제럴드와는 달리 철저하게 숨어서 생활한다. 모든 인터뷰는 물론, 작품 홍보 활동마저 거부한다. 이런 은둔생활이 오히려 대중의 호기심을 부추겼는지 그는 '샐린저'라는 이름만으로 작품이 흥행하는 유명작가가 됐다.

하지만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1965년 이후부터 사망할 때까지 40여 년 동안 절필한 채 숨어 지낸다. 그래서 그는 대중에게 '유명하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로 불린다.

당시 샐린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중 한 번은 1986년 자신의 편지 등을 인용한 전기의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 재판을 위해 세상으로 나왔다. 영국 작가 해밀턴은 출간되지 않은 샐린저의 편지를 인용해 '샐린저 전기'를 출판하려 했다.

하지만 샐린저가 사생활 침해라는 명목으로 해밀턴을 법정에 세웠고 결국 판사는 샐린저의 손을 들어줬다. 어쩌면 그의 은둔생활은 자신의 유명세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사회에 대한 저항이었는지도 모른다.

시대를 말한 두 남자

'화려함'과 '은둔' 두 단어로 대비되는 두 작가는 각각의 작품을 통해 시대의 작가로 평가받는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의 '제이 개츠비'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과 부조리한 사회, 광란의 시대를 보내는 '잃어버린 세대'의 혼란을 여실히 드러냈다. 작품에서 파생된 형용사인 '개츠비 같은'(Gatsbyesque)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미국 문학에서 피츠제럴드와 이 작품은 빠지지 않는다.

개츠비는 오로지 사랑하는 여자 '데이지'를 얻기 위해 불법적인 부를 쌓는다. 불법으로 부를 쌓고 향락을 즐기지만, 모두 데이지를 향한 몸부림에 불과하다. 하지만 결국 데이지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는 개츠비의 모습은 1920년대 화려한 사회 이면의 정신적 상실을 잘 설명한다.

▲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샐린저 <출처=<타임>지 공식홈페이지>

1950년대 미국은 '순응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미국인들은 평화와 안정을 원했다. 또 그들은 반체제적인 행동을 거부하며 정치적으로도 매우 보수적인 시대를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성이 사라진 사회 분위기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런 와중에 발표된 『호밀밭의 파수꾼』은 잔잔해 보이는 사회에 돌을 던지는 존재였다.

보수주의자들은 이 작품을 저속하고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비판했다. 하지만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찬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를 미련 없이 떠나는 주인공 홀든의 모습에 좌절과 고뇌를 거듭하던 당시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사실 홀든의 사회 도피는 완벽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는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기를 포기하고 현실로 돌아가지만, 그의 일탈은 순수함을 지키고자 했던 당시 젊은이들의 정신적 방황을 위로했다.

젤다를 얻기 위해, 또 지키기 위해 글을 썼던 피츠제럴드. 자신을 외부에 노출하기를 극도로 꺼리며 스스로를 지키고자 했던 샐린저. 작품 속 개츠비와 홀든은 혼란한 시대 이상과 목표를 찾아 방황해야 했던 세대, 곧 작가 자신이 아니었을까.

※ 참고자료
<강준만, 「개츠비는 왜 위대한가」, 인물과사상, 36-58, 2013>
<심상욱, 「샐린저 문학의 동양사상과 포스트모더니티」, 동서비교문학저널, (9), 57-78, 2003>
<김상률, 「"잃어버린 세대"와 그 불만」, 외국문학연구, (19), 33-50, 2005>
<김성곤(2005), J.D.샐린저와 호밀밭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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