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이번 역은 부산입니다 l 노포동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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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희석 학보편집국장
  • 승인 2015.11.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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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부산종합버스터미널
▲부산종합버스터미널 입구.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날 선 바람이 사방에서 때려댔다. 체온을 안 뺏기려 최대한 몸을 구기며 노포동 부산종합버스터미널 앞에 도착했다. 길게 늘어선 택시 행렬 옆에서 택시 기사들이 언 발을 동동 굴리며 담배를 태우고 있다. 그들 앞을 지나가자 다들 똑같이 말한다. "추운데 빨리 타시죠?"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거절하고 터미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지극히도 평범한 새벽의 터미널

시외버스터미널이라 노숙인이 많을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타 지역 대학 '과잠'을 입은 학생들, 낮고 마른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노부부, 본인 몸만 한 짐을 곁에 둔 채 스마트폰에 심취한 여자 등 지극히 평범한 사람뿐이다.

오늘의 첫차는 6시 25분 출발인데, 2시간 전부터 여기 있는 걸 보니 꽤나 부지런한 사람들이지 싶다. 그러다 과잠을 입은 학생 중 한 명이 꼬인 발음으로 말한다. "아, 차라리 찜질방에서 더 자고 천천히 출발할걸. 아직도 술이 안 깬다." 모두가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었다. 또 오산이다.

오늘의 첫차 출발을 보기 전, 허기진 배를 채우려 1층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참고로 부산종합버스터미널은 비탈길에 있어서 2층 대합실과 1층 플랫폼 모두 지상과 연결된다. 이른 새벽의 플랫폼은 어둑하고 싸늘하다. 하지만 한쪽에 자리 잡은 24시간 운영 분식집은 따뜻해 보인다. 망설임 없이 들어가 만두라면을 주문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4인 가족이 막 식사를 끝냈다. 갓난아기를 안고, 그보다 좀 더 큰 아이를 무릎에 앉힌 채 도시철도 첫차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막내가 우렁차게 울어 재낀다. 분식집 아주머니가 괜스레 핀잔을 준다. "거 얼라 추워죽는다! 그 돈 얼마 한다꼬. 다른 데 아끼고 고마 택시 타고 가이소!" 말투가 뾰족해서 그렇지 맞는 말이다. 만두라면을 반쯤 비운 20대 기자도 발이 얼어붙는 날씨다. 가족은 주섬주섬 짐을 챙겨 분식집을 나선다.

첫차, 그리고 '꿀팁'

다시 2층으로 올라왔다. 방금 1층으로 내려갈 때까지만 해도 난로 앞에서 눈을 붙이던 경비원이 대합실 TV 전원을 켜고 있다. 곧 뉴스 앵커 목소리가 퍼질 줄 알았는데, 뜻밖에 예능 프로그램의 웃음소리가 대합실을 메운다. 오전 5시, 굳게 닫혀있던 매표소도 셔터를 올린다.

밖이 푸르스름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길고 긴 체감시간을 견딘 몇 사람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켠다. 각자의 짐을 들고 플랫폼으로 내려간다. 부산종합버스터미널은 앞서 본지가 찾아갔던 부산역이나 국제여객터미널보다 배차 간격이 짧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급박하게 뛰어가는 승객은 찾아보기 힘들다. 느긋하게 승객들을 따라가 첫차의 출발을 지켜봤다. 사실 대단한 건 없다. 매일 이렇게 첫차가 출발했을 것이고, 내일도 같을 거다.

다시 대합실을 어슬렁거리는데, 웬 아저씨가 말을 건다. "학생 서울 가요? 싸게 해주는데." 잠깐 멈칫했다가 슬쩍 가격을 물어봤다. "매표소는 비싸. 근데 우리는 다이렉트로 끊어주니까 이삼천 원은 더 싸게 해주지." 알고 보니 그는 버스운전기사다. 중개 업소 격인 매표소를 거치지 않고 기사에게 돈을 주면 싸게 태워준다는 거다.

불법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의 눈빛이 그런 건 묻지 말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거절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걸 시쳇말로 '꿀팁'이라고 해야 하나. 언젠가 서울 갈 일이 생기면 그의 눈빛을 찾아봐야겠다.

해가 한창 떠 있는 시각의 터미널은 여유롭다. 버스가 한 번에 많은 인원을 수용하지 않아서인지 부산을 떠나는 승객도, 방문한 승객도 바쁜 걸음은 아니다. 높은 천장 옆 채광창에서 오후의 햇살이 쏟아진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듯한 아이 서너 명이 채광창에서 떨어진 햇빛 자국을 맴돌며 까르르 웃어댄다. 잠깐이지만 대합실 사람들이 스마트폰에서 아이들로 시선을 고정한다. 누가 보든 말든 상관없이 아이들은 계속 뱅뱅 돈다.

대부분 잠들며 끝난 터미널의 하루

▲'쉼터'에서 승객들이 허기진 배를 달래고 있다.

대합실 한편에 '쉼터'라는 분식집이 있다. 가게 이름에 걸맞게 승객들이 잠깐 서서 허기를 채우고 떠난다. 특히 저녁식사 때가 지난 오후 9시 정도면 손님으로 가득하다. 모두 긴 여정에 오르기 전 배를 든든히 채운다.

쉼터의 메뉴는 여러 가지지만 대개 어묵을 택한다. 날이 추워서인지 한 20대 초반의 여자가 어묵 국물을 연신 홀짝인다.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가 한 마디 던진다. "야 적당히 마셔라, 가다가 터지면 답도 없다." 고속버스 내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조심하라는 건가 보다.

늦은 시각, 터미널과 연결된 부산도시철도 1호선 노포동역의 셔터가 내려온다. 신평행 막차가 막 떠난 것이다. 비슷한 시간에 터미널 내 가게들도 문을 닫는다. 매표소는 일찌감치 셔터를 내린 상태고 대합실의 TV도 잠들었다. 하지만 만두라면을 먹었던 분식집과 쉼터, 그리고 편의점은 역내를 밝히고 있다. 이렇게 부산종합버스터미널의 하루가 끝났다.

짐을 챙겨 대합실을 떠나려는데 익숙한 얼굴의 아주머니가 쉼터를 향해 소리친다. "언니야 오늘은 내 먼저 간데이!" 새벽에 1호선 첫차를 기다리던 가족에게 따끔하게 소리친 그분이다. 괜히 아는 척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터미널 밖으로 나섰다. 발을 동동 구르며 담배를 태우는 택시기사에게 다가갔다. "추운데 빨리 타시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택시 안은 꽤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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