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기 고 l 상식이 무너진 자리에 난무하는 이율배반의 언어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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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보편집국
  • 승인 2015.11.0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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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권 교수 사학과

2013년 제69회 유엔총회에 제출된 '역사교과서와 역사교육에 관한 문화적 권리 분야의 특별 조사관의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 역사교육은 과거를 단지 기념하기만 해서는 안 되며 과거가 기념되는 방식을 사유해야 하고, 선택적이며 자의적인 기억의 속성을 들춰내는 데 기여해야 한다. 사건에 얽혀있는 집단과 개인들의 기억을 사료로써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러한 기억 방식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역사교육의 방향이어야 한다. 역사교육은 관용, 상호 이해, 인권, 민주주의 같은 근본적 가치들의 증진을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가치들은 근대 국가 형성 과정에서 많은 갈등을 통해 탄생하고 받아들여진 개념이기 때문에 그러한 갈등에 대한 사실 인정을 하지 않고서는 역사교육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함양하는 장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위 '보고서'에서 말하는 역사교육의 방향이란 곧 역사교육의 '세계화'와 일맥상통한다. 지금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정부는 자신들이 검정하여 학교 현장에 배부한 역사교과서가 좌편향으로 대한민국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이를 국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어이없는 자가당착적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는 일단 차치하고, 우선 역사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역사학과 역사교육학에서 정의하는 역사교육의 주요한 목적은 크게 3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민족(국가) 또는 민족문화의 정체성 확립, 둘째 역사적 사고력과 판단력의 신장, 셋째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가치와 태도의 함양 등이다.

전통적인 역사교육관은 첫째 '정체성 확립'을 보다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던 반면에, 오늘날 대부분 선진국의 역사교육은 둘째 '사고력 신장'이나 셋째 '민주적 가치 교육'을 더욱 중시한다. 지나친 국가주의에 입각한 역사교육은 날로 다원화·다문화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의 추세와도 맞지 않을 뿐더러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와 비판적 판단 능력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객관적 역사 사실과 함께 다양한 관점의 역사인식과 역사 해석이 제공되어야 한다.

따라서 역사교과서의 검정발행제도 가능하면 자유발행제로 바꾸는 것이 오히려 시대의 흐름에 맞다. 이는 지금 정부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일부 연구자조차 과거에 찬동했던 주장이다. 그렇다면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화는 전진해야 할 상황에서 후진 기어를 놓고 가속페달을 밟은 격이다.

역사교육을 정부가 직접 관장하여 학생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하겠다는 발상은 헌법에서 명시한 교육의 중립성과도 배치된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뀔 수 있지만, 후대를 양성하는 교육은 정치로부터 자유롭고 그 바탕이 굳건해야 제대로 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란 말은 절로 생겨난 게 아니다. 역사교육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여러 사람의 생각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으로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있음직한 일이다. 오늘날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의 나라치고 국정역사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주변 이웃 나라들 가운데서도 북한을 제외한 중국, 일본, 대만 모두 국정교과서를 쓰지 않는다. 더구나 과거 이승만 정부 때도 없었던 일이고, 1974년 유신체제를 떠받치기 위해서 처음 생긴 제도가 국정국사교과서였다.

중국 춘추시대 공자는 군자의 세상을 꿈꾸었다. 군자의 세계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지만, 화합하는 세상이다.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인정하는데서 화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대로 공자가 비판한 소인의 세계는 동이불화(同而不和)이다. 생각은 같지만 화합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생각이 같아도 각자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저들이 말하는 '국민통합'이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기 위한 감언이설에 불과한 꼼수가 아닐는지 매우 우려된다.'역사교육의 민주화'를 '국민통합 국정교과서로' 이루겠다니, 짜깁기의 이율배반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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