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오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소문만 무성하고 실제로 본 사람은 없는 경우'를 뜻한다. 흙오이 유행은 과거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시장에서 흙이 잔뜩 묻은 오이를 먹는 사진에서 시작된다. 해당 사진은 당시 누리꾼들 입에 오르내렸다. 흙도 안 털어내고 억지로 입에 넣는 모양새가 웃겼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작 그 사진을 실제로 봤다는 사람은 드물었다. 인터넷 어디를 뒤져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사진 찾기를 포기했고, 이후 허울뿐인 소문을 가리켜 흙오이라 불렀다.
우리 대학교에도 흙오이가 종종 등장한다. 바로 총학생회 후보들의 터무니 없는 공약들이다. 사실 총학생회 선거는 공약을 통한 이미지 싸움이다. 학생들은 후보의 인성이나 실력보다 공약을 보고 투표한다. 이에 몇몇 후보는 학생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려 이벤트성 공약을 남발한다.
흙오이 공약이 나오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부터다. 2010년 당시 '올인' 총학생회는 인문대 앞 108계단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학생들은 환호했다. 땀 흘리며 강의실로 들어가는 날들은 이제 없을 줄 알았다. 다들 언제쯤이면 에스컬레이터에 오를 수 있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임기 절반이 지나도록 108계단은 그대로였다. 올인 총학생회는 '예산 부족'이라는 진부함으로 변명했다. 완벽한 흙오이를 남긴 것이다.
흙오이는 지난해와 올해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바로 학생증 관련 공약이다. 지난해, '다같이 다가치' 총학생회는 부산은행, 농협, 기업은행 등과 논의 후 체크카드 겸용 학생증을 발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여름 방학이 지나도록 발급은커녕 소식조차 없었다. 이에 지난해 9월쯤 본지에서 공약이행 상황을 묻자 2학기부터 발급할 예정이라고 했다. 결과는 역시 흙오이였다.
이번해 '오늘의 감동 오감' 총학생회도 학생증에 체크카드 기능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설마 올해도?'하고 의심했지만 그래도 믿어보자 싶었다. 2년 연속 허황된 약속은 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오감 총학생회도 '예산 부족' 명목으로 흙오이를 남겼다.
'공약(公約)'은 어떤 일을 꼭 실행하겠다고 학생들과 약속하는 행위다. 공적으로 맺은 약속을 쉬이 여겨선 안 된다. 총학생회 후보는 "당선되면 피자를 돌리겠습니다" 했다가 "엄마가 비싸서 안 된대요"라고 얼버무리는 초등학교 반장 후보가 아니다. 이번 총학생회 후보들은 실천 가능한 공약을 들고나오길 바란다. 흙오이 공약만 만연한 선거는 투표의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