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기 고 l 과거, 감정, 기억, 그리고 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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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보편집국
  • 승인 2015.12.0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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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교수 신문방송학과

2015년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 이 시점에도 '복고열풍'이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12월 현재, 케이블 방송인 tvN에서는 '응답하라'의 세 번째 시리즈인 <응답하라 1988>이 전편보다 더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지상파 SBS 심야 프로그램인 <불타는 청춘>에서는 1990년대 전후로 활동했던 스타급 연예인들을 출연시켜 중년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간직된 오래된 기억들을 되살리고 있다. MBC에서는 '나는 가수다'에 이어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1990년대 전후의 인기가수와 히트송들을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복고문화의 소비층이 40대 이상의 중장년층만이 아니라 당시를 경험하지 못한 10대부터 20~30대 청년층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정도면 복고는 잠시 동안 불고 있는 열풍이 아니라 특정한 형식과 소비층을 가진 하나의 문화장르로 자리매김 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복고열풍에 대해 학자와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과 평가를 내려왔다. 이들의 의견은 크게 세 가지 입장으로 정리된다.

먼저 문화적 퇴행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문화생산자들이 현재와 미래를 주도할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만들지 못해 결국 한물간 과거의 콘텐츠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와는 다르게 지금의 복고열풍은 과거의 콘텐츠를 현재에 맞게 재해석한 것으로 새로운 문화 창출을 도울 수 있는 촉매제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한편 문화 수용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복고열풍은 초연결의 디지털적인 삶 속에서 순식간에 잃어버린 인간 본연의 것을 과거의 아날로그적 삶에서 찾으려는 수용자 욕망의 반영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단 하나의 올바른 문화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 모두가 일리 있는 해석이며 평가다.

필자는 이와는 다르게 '감정과 기억'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최근의 복고열풍을 해석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감정은 특정대상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평가를 반영하는 인간의 심리적 상태로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를 바탕으로 한다면 감정은 대상에 대한 인지적 평가가 선행된 후에야 유발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미국의 심리학자 제이언스(Zajonc)는 "감정은 대상에 대한 평가 없이도 유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오래전에 재밌게 본 영화나 책을 회상할 때, 그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당시의 유쾌한 감정이 기억나거나 유발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이는 우리의 뇌가 대상에 대한 인지정보와 감정정보를 각각 다른 공간에 저장하고 있어서 설령 인지정보가 훼손되었다 하더라도 감정정보에 의존해 정보입력 당시의 감정을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한 감정정보는 인지정보보다 간단명료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흘러도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다.

다시 복고열풍으로 돌아와 보자. 시청률 조사기관의 자료에 의하면 <응답하라 1988>의 시청률은 당시 1988년 당시의 기억유무와 관계없이 10대부터 50대까지 고루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요인에 의해 모든 연령층이 이 드라마에 몰입하고 있는 걸까?

이 드라마가 모든 연령층에서 두루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보다 드라마 자체가 지니고 있는 재미, 높은 완성도, 정교한 플롯, 적절한 캐릭터 설정, 수준 높은 연기력 등이 기본적으로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1988년을 기억하는 지금의 중장년층과 그렇지 않은 청년층은 <응답하라 1988>을 같은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는 걸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렇지 않다. 당시의 기억이 없는 청년층은 재미있고 수준이 높다는 등의 인지적 평가를 통해 드라마 자체만을 소비하고 있지만 중장년층은 드라마와 함께 당시의 감정기억을 동시에 소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응답하라 1988>을 통해 중장년층은 1988년 당시에 입력되었던 행복, 사랑, 열정, 연민, 슬픔 등의 여러 감정기억들을 다시 끄집어내 그때의 감정 상태로 되돌아가는 다소 흥분되는 재미를 추가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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