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기업윤리, 피켓 든 소비자들
사라진 기업윤리, 피켓 든 소비자들
  • 유선영
  • 승인 2016.06.07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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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남양유업 본사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제품을 강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갑질'이라는 단어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 이후에도 대한항공에서 '땅콩 회항' 사건이 일어나면서 갑질 논란이 재점화 되었다. 이 논란은 기업 책임자들의 갑질 문제에서 나아가 기업윤리 문제로 번지고 있다. 기획재정부 시사 경제 용어사전에는 기업윤리에 대해 '기업이 지속적으로 존속하기 위한 이윤 추구 활동 이외에 법령과 윤리를 준수하고, 기업의 이해 관계자 요구에 적절히 대응함으로써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책임 있는 활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일러스트레이션 = 전은경 기자

 최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특성상 자칫 잘못하면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방법을 쓸 가능성이 있다. 이런 행위에 대한 사회적 폐해를 줄이기 위해 기업윤리가 요구된다. 그러나 최근 언론에 보도된 기업들의 행보를 보면 기업윤리를 지키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현재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역시 한 예다.

 

266명의 죽음, 책임지지 않는 기업

2011년 4월 서울아산병원에 입원 중이던 임산부 5명이 원인 모를 급성 폐 질환으로 사망했다. 정부의 역학조사 결과 그해 8월 사용했던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에서는 서울대에 의뢰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며 제품 수거를 미뤘다. 그러나 결국 같은 해 11월,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 홈플러스는 판매하는 제품들의 유해성을 인정하고 수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의 제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허위광고로 제조사인 옥시레킷벤키저와 홈플러스 등 4곳에 과징금 5,200만 원을 부과한 것에 그쳤다.

 피해자들은 제품을 제조·유통한 업체를 대상으로 민·형사 소송을 시작했다. 2012년 1월에는 국가와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같은 해 8월에는 유족 9명이 옥시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 및 판매업체 10곳을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2015년 1월 국가상대 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피해자들이 낸 형사고발의 경우 검사가 2013년 2월 기소중지 결정을 내렸다. 결국, 사건은 정부의 피해조사 결과가 나온 2014년 3월까지 멈춰졌다. 조사가 중단된 이후 2016년 4월까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더 늘었다. 피해자들이 소송을 추가로 제기해 현재 11개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정부가 사망 피해자로 공식 인정한 95명 중 절반 이상의 피해자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기간이 지났고, 과실치사죄와 업무상 과실치사죄의 공소시효 만료 기간인 5년과 7년이 지난 피해자도 24명에 달해 배상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예정이다.

 한편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올해 4월 25일까지 집계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모두 1,848명, 그중 사망자는 266명이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가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약 17년 동안 판매되어 온 점과 피해자들이 피해를 인지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집계되지 않은 피해자들의 수는 헤아리기 어렵다.

 

사각지대로 스며든 살생물제

 23일 국회입법조사처가 제출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입법·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유독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많이 발생한 이유는 살생물제(Biocide)에 관한 법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살생물제의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아도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제품 판매가 가능했다. 살생물제란 인간의 편의를 위해 해악을 끼치는 유기체들을 관리하기 위해 사용되는 화학물질이다. 유럽연합의 경우 1996년부터 살생물제 관리 지침을 제정해 유해물질을 관리했고 2013년에는 이를 강화한 살생물제 관리법을 발효했다. 미국도 활성 성분과 최종 제품 모두 승인을 받도록 하고 이후 등록번호를 부여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제도가 없어 관리는 물론 처벌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또 다른 위험 요소는 관련 부서 간의 사각지대이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관련된 부서는 제품을 허가해 준 산업통상자원부(구 상공자원부)와 처음 사건이 일어난 이후 조사에 착수했던 질병관리본부, 그리고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환경부와 공산품의 관리를 맡는 지식경제부 산하의 기술표준원 등이 있다. 그러나 살생물제 같은 경우 제품유형에 따라 관련 부서가 달라져 책임 소재를 찾기가 어렵다. 또 같은 제품을 출시하는 데에도 다양한 부서를 거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법적인 사각지대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만 무책임한 해외 기업

 한국 소비자들에 대한 해외 기업의 태도도 문제가 있다. 문제를 일으킨 외국 기업 중 한국 소비자에게 제대로 사과를 하고 책임을 지지 않은 과거 사례는 많다. 지난해 10월 폭스바겐은 경유차 배출가스 저감 장치 조작사건을 일으켜 세계적인 비난을 받았다. 이후 폭스바겐은 북미 소비자에게는 1,000달러 상당의 상품권을 지급하고 미국 소비자에게 1인당 5,000달러(약 560만 원)를 배상할 것을 약속했다. 일본에서는 차 값을 170여만 원 인하하는 등 적극적인 보상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허술한 리콜조치 계획서를 내놓는 등 아직까지 피해 대처방안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홈플러스의 경우 과거 2011년에서 2015년 동안 경품행사 등을 통해 수집한 고객의 개인정보를 보험사에 팔아 213억 원의 이득을 보았지만, 지난해 홈플러스가 사모펀드에 팔려간 뒤 본사인 테스코에서는 소비자 배상 소식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렇게 기업들이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불만에 안이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소비자 구제제도에 허술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큰 한계점은 '소비자 집단 소송제'이다. 소비자 집단 소송제란 다수의 소비자가 같은 피해를 본 경우 일부가 제기한 소송의 효력을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피해자들도 누릴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그러나 이 법은 현재 증권 관련 피해에만 적용된다. 또 징벌적 손해배상제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갑질과 관련된 하도급거래와 기간제 근로자 파견 등에만 적용되는 등 제한점이 있다. 이러한 허점들을 통해 기업들은 대형법무법인을 앞세워 그동안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 대학교 김서현(신문방송학 2) 학생은 기업들의 이런 태도에 대해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준을 택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고객을 위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인데 순간의 이익을 위해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이)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힐 정도의 기준을 채택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배상 책임을 지게 할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보니 외국 기업들이 더 한국에 안하무인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우리 대학에서 '기업윤리' 과목을 강의한 적 있는 한 강사는 "지금까지 영국은 '영국신사도', '정직', '6.25 참전국', '미국 다음으로 수교를 맺은 전통의 우방국' 등 좋은 이미지로 우리 국민들에게 인식되었다"며 "그러나 이번 옥시레킷벤키저의 경우는 (이런 이미지를 이용해) 인간의 건강과 생명에 치명타를 주는 행위로 기업윤리를 어겼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매체를 통해서 보면 10년 전부터 인체의 유해성이 상부에 보고된 근거가 있다고 밝혀지고 있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한국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며 "(기업이 갖추어야 할) '진성 리더십'은 자기의 잘못은 언제든 인정하고 그것을 고칠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신뢰를 잃은 기업, 등 돌린 소비자들

 '살균 99.9%, 아이에게도 안심.'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 중 과반수를 낳은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의 광고 문구이다. 그러나 옥시레킷벤키저는 2001년에 PHMG를 사용할 당시 살생물제 안전 확인 제조사 책임 제도가 한국에 없는 것을 이용해 안전성 확인 실험을 하지 않고 시판했다.

 이에 소비자들은 해당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9일 56개 단체와 100여 명의 개인들이 옥시 제품 불매 집중 행동기간을 선언하고 시민들의 옥시 불매운동 참여 독려 SNS캠페인, 대형마트의 옥시 제품 철수 및 판매중단 촉구 등을 벌였다. 환경운동연합에서는 옥시 제품 125종을 정리해 옥시 제품 수거와 불매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는 사건 관련 성명서를 내고, 옥시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는 등 꾸준히 기업에 책임을 묻고 있다.

 대학생 단체도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26일 성공회대 학생모임과 청년참여연대는 서울 중구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자리에 모인 대학생과 피해자들 외에도, 모든 대학생과 자취생들도 많은 피해자를 발생시킨 옥시레킷벤키저 불매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부탁했다. 청년참여연대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사회에는 이윤을 위해 생명을 경시하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옥시 불매는 단순히 한 살인기업의 제품을 불매하는 것을 넘어 이윤을 이유로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또 "옥시와 같이 책임지지 않고 사건을 은폐 조작하는 기업을 완전히 퇴출시켜야 우리의 미래와 가치를 지켜낼 수 있다"며 "옥시의 제품은 쓰거나 사지 않고 가정이나 학교, 직장에서도 불매운동에 동참하길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기업을 신뢰하고 샀던 제품들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소비자들은 더 이상 기업을 믿지 않는다. 최근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노케미족(No-Chemi 族)이 등장했다. 이들은 세제나 화장품, 탈취제 등을 직접 만들어 쓰며 기업이 생산해 낸 제품들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을 거부한다. 기업에서 생산해 낸 방향제, 살균제, 물티슈, 세정제와 같은 일상적인 제품이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이번 사건을 통해 느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존에 화학물질이 차지했던 자리를 베이킹소다나 구연산, 식초 같은 천연재료들을 이용해 대신하고 있다.
 강병근(컴퓨터공학 2) 학생은 "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다가 매일 같이 사용하던 페브리즈 역시 위험한 화학약품이 들어가 있단 것을 보고 놀랐다"며 "화학제품에 경각심을 가지고 최근 레몬과 소주를 이용한 탈취제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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