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기고ㅣ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다
ㅣ기고ㅣ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다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승인 2016.06.0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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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성욱 교수 한국어문학과
 

 식민지배와 참혹한 전란을 겪어낸 한국 근현대사의 곡절을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자유는 경이로움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분배의 불평등과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민주적 역량의 숙성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중대한 과제로 남아있다. 이런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의 폭력은 언제나 약자를 향한다. 최근에 벌어진 강남역 살인사건을 대하는 시민들의 심상치 않은 반응은, 지금 이 사회에서 여성의 삶이 처한 근원적인 공포와 불안의 실상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가부장적 규율권력에 의해 추진되어온 한국의 근대화는 이처럼 여러 약자들 중에서도 특히 여성을 향한 부조리한 편견을 고착시켜왔다. 그런 부조리는 탈근대가 운위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여성의 삶이 지금도 봉건적 질곡 속에 놓여있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곳곳에 잔존해 있는 가부장적 유제는 여전히 유무형의 차별과 배제를 생산하고 있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아 새삼 다시 주목을 얻고 있는 한강의 『채식주의자』(창비, 2007)가 그리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만연한 폭력 속의 여성이다. 그 제목과는 달리 소설의 여자 주인공은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어떤 주의를 실천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 어떤 동물성의 사악한 주의(이념)에 맞서 식물성으로 나아가게 된 사람이다. 다시 말해 이 약육강식의 동물적 세계에서 여자는 꽃이 되고 나무가 됨으로써 그 폭력성에 맞서는 사람이다. 여자가 육식을 거부하게 된 것은 무서운 살육의 꿈 때문이었고, 그 꿈속의 어떤 얼굴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악몽의 기원에는 아버지로부터 당한 유년의 가혹한 폭력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이런 식의 평면적 소추는 지극히 풍요로운 암시들로 가득한 이 소설을 일면적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들, 그러니까 아버지, 남편, 형부가 여자에게 가하는 폭력은 그 어떤 암시에도 불구하고 선연하고 명백하다. 그리고 우리는 남자들의 그 폭력에 성적 욕망이 미묘하게 연루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여자를 성적으로 탐닉하는 것으로써 자기들의 권력의지를 관철시키려 한다. 성(性)과 식(食)의 상징적 유비성에 유의한다면, 여자가 육식을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저항인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의 몸에 남아 있던 '몽고반점'은 세속의 폭력으로는 결코 지울 수 없는 원초적 생명력의 표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그러한 저항은 얼마나 성공적일 수 있을까? 여자의 행위가 광기(비정상)로 규정되고 결국은 정신병원에 갇혀 치료를 받게 되는 것은, 그 저항을 감금에 의해 좌절시키는 체제의 폭력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다. 여자는 드디어 육식뿐 아니라 음식 자체를 거부하고, 마침내는 죽음으로써 그 폭력에 맞선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수난당하는 여자의 피동적 몰락이 아니라 폭력의 세계를 내파하는 여자의 능동적인 투쟁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이 연작의 형태로 2004-5년에 걸쳐 문예지에 발표되었을 때, 평단의 주목과는 달리 대중들의 반응은 미미했다. 그렇다면 단 하루에 1만부를 넘게 판매했다는 지금 대중들의 저 열광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평소에는 축구경기를 즐겨보지 않던 사람들이 국가대항전이라면 밤을 새워 열광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저 다수의 독자들 중에는 소설을 소설로서 읽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위상을 드높인 어느 수상작을 애국주의적 열광이나 국가주의적 열정 속에서 열독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옌렌커나 오르한 파묵을 제쳤다며 그 수상 소식을 전하는 언론의 민망한 호들갑은, 노벨상에 목매는 국민들의 민족주의적 감정을 노리고 있음이 명백하다. 그러나 바로 이런 천박한 호들갑 속에 잠복해 있는 이데올로기적 폭력성, 그것에 대한 가장 강렬한 탐미적 저항이 『채식주의자』의 중요한 메시지라면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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