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 열풍, 한국을 삼키다
공무원 시험 열풍, 한국을 삼키다
  • 주희라
  • 승인 2016.06.07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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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업계의 조사에 따르면 공무원 시험 시장 규모는 약 3,000억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량진을 중심으로 우후죽순 생겨난 공무원 시험 학원뿐만 아니라 인터넷강의와 다양한 공무원 시험 교재들이 그 시장 규모를 실감하게 한다. 공무원 시험 시장 규모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학원이나 인터넷강의에 등록하고 교재를 구매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언젠가부터 도서관이나 열람실에서 공무원 시험 교재를 가득 쌓아놓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자주 보인다. 2015년 5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의 취업준비생 중 34.9%가 일반직 공무원 임용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5월 기준 취업준비생 63만 3,000명 가운데 약 22만 명이 일반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셈이다.
이렇듯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공무원을 열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시생·공딩·40~50대까지
전 세대로 번져

 1990년대 초반, 공무원은 지금처럼 인기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당시 대학 졸업생들은 월급이 높은 대기업을 선호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높은 월급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면서 공무원 열풍이 시작됐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증가로 노량진을 중심으로 공무원 시험 학원, 고시원 등이 생겨났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줄임말인 '공시생'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다.

 1997년부터 불기 시작한 공무원 열풍은 계속된 경기침체로 2016년 현재도 식을 줄 모른다. 2016년 인사혁신처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월 실시한 9급 공무원 시험에는 총 22만 2,650명의 수험생이 지원했다. 이는 지난해 9급 공채 접수인원인 19만 987명보다 16.6% 증가한 수치이다. 9급 공무원 접수자 수는 2013년 처음으로 20만 명을 넘어선 후 19만 명 대를 유지하다가 올해 다시 20만 명을 넘어섰다.

 공무원 시험 열풍이 취업을 준비하는 20대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공시생'이라는 단어와 함께 '공딩'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공딩은 공무원과 고등학생을 합친 말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을 뜻한다. 이들은 고등학생이지만 대입 시험 대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심지어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특별반을 만들기도 한다. 이는 공무원 열풍이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뿐만 아니라 청소년층까지 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지난 1월 치러진 9급 공무원 시험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0대가 약 3,000명 응시했다.
 

 최근에는 공무원 합격으로 인생 이모작을 꿈꾸는 4·50대 공시생도 증가하고 있다. 2009년부터 9급 공무원 응시자 연령제한이 사라지면서 4·50대 응시자가 늘어난 것이다. 이번 9급 공채에 지원한 40대 응시생은 9,756명으로 4년 전에 비해 2배 넘게 늘었다. 정년이 10년도 남지 않은 50대 응시생도 957명에 이른다. 공무원 열풍이 청년, 고등학생을 넘어 4·50대에도 불고 있는 것이다.

 

▲ 일러스트레이션 = 신예진 인턴기자

공무원 합격자 수 = 대학 경쟁력?

 최근 청소년층까지 공무원 열풍이 퍼지면서 공무원 시험 합격자 수가 대학 입시 결과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공무원 시험 합격자 수가 대학을 평가하는 주요 경쟁력이 되어버린 것이다. 때문에 최근 대학 캠퍼스 곳곳에서 재학생이나 동문의 공무원 시험 합격을 알리는 현수막을 볼 수 있다.
다수의 공무원 합격자를 배출해 경쟁력을 높여야하는 대학들은 공시생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일부 대학에서는 국가고시 준비반을 만들어 공시생이 공부할 공간을 제공해준다. 또 국가고시 1차 합격자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몇몇 대학에서는 '공공인재학부'라는 이름으로 공무원 양성이 목표인 학부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 대학교 역시 공시생에게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행정학과에서 운영하는 '사회대 국가고시준비반'은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학습 공간을 제공해주고 인터넷강의를 지원해준다. 2015학년도부터는 교과과정으로 공무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취업지원실에서 지역인재 국가직 7급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운영하는 지역인재 특별반과 국가고시 합격, 공공기관 및 공기업 입문 등을 목표로 하는 석당인재학부가 있다.

 

안정감과 복지혜택, 저녁이 있는 삶 → 공무원 선호

 최근 정부청사에 침입해 7급 공무원 시험 성적과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한 공시생이 화제였다. 그는 경찰에 붙잡힌 후 "7급 공무원이 꼭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부청사에 침입해 성적을 조작하는 대담한 범죄를 저지르면서까지 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또 많은 공시생이 공무원을 열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무원 열풍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안정성이다. 공무원은 정년이 확실히 보장되기 때문에 고용 안정성이 높은 편이다. 우리 대학 박진범(행정학 2) 학생은 "직업관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로를 정하다보니 안정적인 공무원을 선택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몇몇 기업이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직업의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우리 대학 윤상우(사회학) 교수는 "최근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고용 안정성을 원하는 청년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안정적인 공무원을 열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복지혜택이다. 공무원의 경우 육아휴직, 유연근무제 등이 보장된다. 또 공무원연금, 복지포인트 등의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 조효진(행정학 2) 학생은 "사기업에서는 여성이 임신·출산하면 눈치가 보이고, 심하면 일을 그만둬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공무원은 사기업에 비해서 그런 경우가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퇴직 후에 공무원연금을 받을 수 있어 노후를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은 4·50대 응시자가 증가한 이유이기도 하다.

 공무원은 '칼퇴근'한다는 소문도 공무원 열풍의 이유다. 야근이 잦고 잔업이 일상인 일반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퇴근할 수 있다는 점은 공무원의 큰 매력이다. 한연주(행정학 2) 학생은 "공무원은 '칼퇴'가 가능하다고 들었다"며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공시생, 불안과 희망 사이

 공시생은 언제 합격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과 언젠가는 합격할 것이라는 희망 사이에서 늘 방황한다. 공시생의 방황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한 학생은 "공부는 계속 하다보니 익숙해졌다"며 "그런데 한번 시험에 떨어져보니까 계속 도전해도 합격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막하다"고 말했다.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보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줄어들 줄 모르는 응시자 수와 경쟁률은 이러한 공시생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킨다. 김형찬(석당인재학부 3) 학생은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높아져서 불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자격증이나 스펙을 준비하지 못한다는 것도 불안의 이유다. 공무원 시험 준비에 집중하다보면 일반 기업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스펙을 쌓는 활동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공무원 시험을 위한 노력이 공무원 시험을 포기할 때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많은 공시생이 계속 되는 불합격에도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지 못한다.

 금전적인 부분도 공시생에게는 큰 걸림돌이다. 학원비와 인터넷강의, 교재비, 독서실비 등을 매달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학생은 "책값과 독서실비, 인터넷강의를 주기적으로 결제해야 하니까 금전적으로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할 거 없으면 공무원 준비나 해." 누군가 쉽게 말하는 이 한마디 말이 공시생에게는 상처가 된다. 공무원 시험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형찬 학생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불안과 방황을 이겨내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공시생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 …'과열' 우려도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4월 청년 실업률은 10.9%다. 4월 실업률만 비교했을 때 역대 최고 실업률이다. 연신 최악을 기록하는 실업률은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을 더욱 절망케 한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겨우 취업을 해도 청년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계속되는 야근과 구조조정, 그리고 임신과 동시에 단절되는 경력이다.

 청년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공무원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복지혜택이 좋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중소기업에서는 찾기 힘들다. 대기업의 상황도 좋은 것은 아니다. 계속되는 야근과 주말근무에 어렵게 취직을 해도 쉽게 지쳐버린다. 이러한 열악한 취업 시장에서 육아휴직, 정년 보장, 공무원연금 등의 복지혜택이 있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최고의 일자리인 것이다.

 한연주(행정학 2) 학생은 "기업 취업 준비도 똑같이 힘들 것"이라며 "그나마 복지 혜택이 좋고 안정적인 공무원을 준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어쩔 수 없이 힘든 경쟁을 해야 한다면 저녁이 있고, 복지가 좋고, 안정적인 직업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과열되는 공무원 열풍이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상우(사회학) 교수는 "국가 인력이 공무원에 쏠리는 상황은 다른 분야의 인력 부족 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며 "과열된 공무원 열풍은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주희라 기자, 임성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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