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수도 부산, 그 역사를 찾아
피란수도 부산, 그 역사를 찾아
  • 주희라
  • 승인 2016.10.0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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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임시수도'가 아닌 '피란수도'로서의 부산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중앙집중적 사고를 내포한 임시수도와 달리 피란수도는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기간 동안 수도 역할을 했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부산시는 최근 피란수도 부산 건축·문화자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피란수도 세계유산 포럼'을 여러 차례 개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연구성과를 공유하고 확산시켰고 우리 대학교 석당박물관과 공동으로 개최하는 '피란수도 부산야행' 행사를 통해 시민들에게 피란수도 부산의 가치를 알렸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산은 1,023일 동안 수도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부산은 한국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이자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의 고달픈 삶터였다. 한국전쟁 당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부산. 피란수도 부산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 3곳을 소개한다.

▲ 부민캠퍼스 뒤편 임시수도기념관 전경.

 

한국전쟁 겪어낸 임시수도정부청사
 

가을이 성큼 다가온 9월의 어느 날 오후, 현재 우리 대학 석당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임시수도정부청사를 찾았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일까. 임시수도정부청사는 유리로 덮인 현대식 고층 건물 사이에서도 위풍당당했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 준공됐다. 1923년 공사 시작 당시 일제는 병원 건물을 짓는다고 발표했으나 건물 완공 후 경남도청으로 사용했다. 본래 진주에 위치한 경남도청을 부산으로 옮긴 이유는 식민 통치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항만·교통의 중심지인 동시에 산업·문화·교육이 발달한 부산을 대륙 침략의 전초 기지로 활용하려 했던 것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산이 1차 피란수도가 된 1950년 8월부터 10월까지, 2차 피란수도가 된 1951년 1월부터 1953년 8월까지 건물은 임시수도정부청사로 사용됐다. 석당박물관 허란희 연구원은 "임시수도정부청사는 한국전쟁 중 1,023일 동안 정부청사로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석당박물관 건물의 역사는 3층 부산 임시수도정부청사 기록실에서 세세히 살펴볼 수 있다.

 기록실에는 경남도청, 부산 임시수도정부청사 당시 모습과 현재 석당박물관의 모습을 축소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건물의 모습이 생소했다. 건물이 세월을 거치며 조금씩 개조됐기 때문이다. 1925년 건립 당시 정면에서 봤을 때 'ㅡ'자형이던 건물은 이후 '日'자형의 평면으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2년부터 우리 대학에서 건물을 매입해 구조를 보강하고 내부공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건물 후면부의 훼손 부분을 일부 철거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기록실의 다른 한 켠에서는 건물을 수리·복원할 때 수습한 각종 부재들을 전시하고 있다. 부재들을 모아 남겨둔 것이 건물의 과거뿐 아니라 부산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 같이 여겨진다. 복원 당시 건물에 남아있었을 여러 기와와 벽돌을 보니 새로운 감회를 느낄 수 있었다.

 

부산 역사를 간직한 임시수도기념관

 부민캠퍼스 옆 오르막길을 따라 걷다보면 두 개의 동상이 있는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다 오르면 정면에 보이는 것이 바로 임시수도기념관이다.

 임시수도기념관 정문에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견학을 온 것이다. 우리 대학 석당박물관과 임시수도기념관은 역사 교육 및 체험을 위해 인근 학교뿐만 아니라 먼 지역에서도 많이 찾는 편이다.

 임시수도기념관에는 임시수도 시기 대통령 관저와 전시관이 있다. 대통령 관저는 원래 경남도지사 관사로 쓰였다. 근처에 지금의 석당박물관인 경남도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경남도청이 임시수도정부청사로 사용됐고, 경남도지사 관사도 대통령 관저로 사용됐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경남도지사 관사로 사용하다 1983년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하면서 부산시에서 건물을 매입해 1984년 한국전쟁기의 각종 자료를 전시하는 임시수도기념관으로 개관했다. 2000년 이후 건물 복원 공사와 전시실 공사를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임시수도기념관 대통령 관저는 특이하게도 신발을 벗고 실내화를 신고 입장해야했다. 신발을 벗고 전시장을 관람한 것은 처음이라 다소 생소했다. 발밑 목재 바닥의 삐그덕대는 소리를 들으며 대통령 관저를 살펴봤다. 대통령 관저 1층은 당시의 실내 구조와 분위기를 재현했다. 2층에는 전시실이 있다. 원래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된 공간이지만 지금은 이승만 대통령의 유품 및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대통령 관저 뒤편 전시관으로 향하는 길목 곳곳에는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피란수도 시절 국제시장, 영도다리, 부산항 등의 모습과 피란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어있다. 전쟁 통에 살아남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의 고달픈 삶을 사진으로 느낄 수 있었다.

 관저 뒤편에 위치한 임시수도기념관 전시관은 1987년 9월 개원한 부산고등검찰청의 검사장 관사 용도로 지어졌다. 이후 검찰청사가 이전하면서 2002년부터 임시수도기념관 영상관으로 사용됐다. 2012년에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면서 지금의 전시관 모습을 갖추게 됐다. 전시관에서는 한국전쟁의 과정과 당시 피란민들의 삶, 1,023일 동안의 임시수도 시절 부산의 모습을 다양한 유물을 통해 보여준다.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피란학교를 세워 교육을 멈추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을 그 당시의 교과서를 통해 설명한다. 또 부산의 명물이자 대표적인 여름 음식인 밀면의 유래를 설명한다. 전쟁을 피해 월남한 북한 피란민들이 부산에 정착하면서 북한의 냉면장사를 시작했다. 이 냉면이 밀가루를 혼합한 밀면으로 재탄생하면서 오늘날까지 부산의 대표음식으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 비석문화마을 곳곳에서 담벼락에 박혀있는 비석을 볼 수 있다.

피란민의 고달픈
삶이 녹아든 비석문화마을

 비석문화마을은 한국전쟁 발발 이후 9,000여 기의 일본인 묘지가 있었던 공간에 부산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생겨났다. 이들은 묘지의 비석과 상석을 이용해 계단과 집을 지었다. 세월이 흐른 현재까지도 마을 계단이나 집 축대 등 곳곳에서 비석들을 발견할 수 있다.
비석문화마을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아미치안센터에서 내렸다. 좁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이어지는 마을 특성 때문에 40분을 헤맨 끝에 비석문화마을에 도착했다. 부산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비석문화마을의 골목에서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여정을 시작했다.

 비석문화마을은 감천문화마을과 이웃해 있다. 벽화로 잘 알려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감천문화마을에 비해 비석문화마을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덕분에 북적대는 단체 관광객 없이 혼자 느긋하게 조용한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조용한 골목을 돌아다니면 옹기종기 붙어있는 집에서 사람 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곳은 관광지이기 이전에 사람 사는 마을인 것이다. 마을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발소리를 줄여 골목을 오른다.

 마을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비석을 볼 수 있다. 계단에서도 집의 축대에서도 비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허란희 연구원은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은 살 곳을 찾아서 산으로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며 "묘지 위에 천막만 얹고 살았다"고 설명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몰리면서 부산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갑자기 늘어난 인구에 비해 좁은 평지에는 피란민들이 살 땅이 없었다.

결국 피란민들은 살 곳을 찾아 산으로 올라갔고 묘가 있던 아미동에 정착하게 된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묘지 위에 집을 지었다. 묘의 비석과 상석을 사용해 집의 축대를 만들고, 계단을 만들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난리 통에 살아남기 위해 만든 집은 아직 마을에 남아있다.

 비석문화마을은 감천문화마을과 같이 벽화가 많다. 도시재생을 위한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과 행복마을만들기 사업으로 마을 곳곳에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졌다. 골목 한 구석에서는 화가가 벽화 밑그림에 색칠을 하고 있었다. 비석문화마을에는 역사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재미뿐만 아니라 골목을 다니며 벽화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참고자료
『피란수도:부산 건축·문화자산의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를 위한 기초연구』(김형균 외 9인, 부 산발전연구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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