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스크 칼럼ㅣ 그들의 비뚤어진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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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정서 기자
  • 승인 2016.10.04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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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서 편집국장

조직에서 요직을 맡고 있는 당신이,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 수도 있는 상황에 맞닥뜨렸다고 가정하자. 아니나 다를까 기자가 당신에게 인터뷰 요청을 해온다. 내키지 않지만 별 수 없이 요청을 받아들인 당신은 예상보다 부드러운 기자의 질문에 경계를 푼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며 다음날 나온 기사를 확인한 당신은 경악한다. 사실과 다른 내용은 없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위 사례를 보고 흔히들 '언론에 뒤통수를 맞았다'고 표현한다. 보통 학생회의 실수나 인사 문제, 각종 학내제도에 대한 비판조의 기사를 쓸 때 이런 상황들이 발생한다. 필자 또한 "왜 이렇게 냈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보의 재가공 과정을 알고 있는 기자와 알지 못하는 취재원의 입장차가 여기서 나타난다. 이는 단순히 취재원의 말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차이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런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 취재원에게 기사 의도와 전체적인 맥락을 상세히 설명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자가 그렇듯 기사 의도를 완전히 밝히는 것은 일종의 사전검열이라 여기기 때문에, 이를 꺼려하는 것이 사실이다.

 특정 언론사를 지목하지 않더라도, 현재 생산되는 많은 기사들은 일종의 '합의'와 '협의'의 산물이다. 여기서 합의의 대상은 사건의 당사자들이 될 수도 있고, 기사를 쓰는 기자 본인이 될 수도 있다. 협의의 방식도 제각각이다. '기사를 이렇게 내도 되겠느냐'고 묻는 것은 직접적 협의다. 때로는 외부 압력 없이도 기자가 개인의 판단으로 정보를 축소 혹은 취사선택하기도 한다. 기사가 나간 후 일어나는 취재원과의 마찰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결국 기자들은 하는 수 없이 직접적 협의를 거치는 상황까지 이른다.

 많은 이들이 뉴스가 언론 윤리를 잃은 지 오래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현 세태로 보아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언론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얽힐 때에만 그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당사자나 기관에서 그들과 관련한 기사에 불편함을 드러낼 때 주로 쓰는 단어가 '비협조'라는 것을 보면 말이다. 누군가 "언론은 그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음에도, 많은 이들은 이미 언론이 그들에게 협조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당위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언론에 대한 잘못된 요구 대부분은 언론사와 홍보 매체를 동일시하려는 생각에서 나온다. 언론을 단지 개인 혹은 조직의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행동은 그 자체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결국 나아가 언론이 독자적·자발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여론을 주도해야 한다는 인식을 점점 축소시킨다.

 누군가는 '언론의 위상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지금껏 상식과 윤리를 위반한 다수 기자들의 책임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동의하는 바다. 언론이 소송에 걸리지 않는 아슬아슬한 선에서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언론은 자유라는 명목으로 도의적 책임에서도 자유롭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보도하던 KBS 막내기자들은 스스로를 '팽목항 기레기'라 칭하며 사내게시판에 반성문을 올렸다. 시민들은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할 당시의 영상을 기자들이 고의로 편집했다며 비판 섞인 비난을 던졌다.

 이와 유사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도 있다. 1964년 뉴욕타임스는 전면광고를 싣는 과정에서 몽고메리 시의 경찰력에 대해 허위 기술을 했다는 이유로 시 의원 설리반에게 소송을 당했다. 이는 명백한 오보에 해당했지만, 연방 대법원은 이후 뉴욕타임스의 항소에 손을 들어줬다. 판결의 근거는 뉴욕타임스가 악의적 의도를 갖고 광고를 게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해당 판결은 이후에도 많은 논란을 낳았다.
이처럼 제 역할을 못한 언론을 나무라는 것은 독자들의 중요한 권리다. 하지만 이것이 언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확장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언론에 어떠한 비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기자를 상대로 도덕적 저널리즘을 요구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뉴스가 생산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안다면, 누구나 완벽한 저널리즘의 범위를 섣불리 지정하긴 힘들다. 하지만 단지 보도 자체에 대한 불만이나, 언론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지적하며 비뚤어진 저널리즘을 강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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