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전성기의 일등공신, 스포츠
동아 전성기의 일등공신, 스포츠
  • 배아현 기자
  • 승인 2016.10.04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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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이들이 대학 스포츠의 위상 약화를 지적한다. 철옹성 같은 대기업을 등에 업은 각종 구단들의 활약에 묻혀, 상대적으로 우수 선수 유치와 홍보에 취약한 대학 스포츠는 자연스레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반면 제31회 리우 올림픽의 열기는 지난여름의 폭염만큼이나 대단했다. 삶에 지친 국민들은 또다시 벅찬 감동을 맞이했다. 이처럼 스포츠의 성장은 곧 국위선양으로 이어지기에, 그 영광을 차지하려는 대학들의 노력 또한 여전하다. 하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다. 자신을 먼저 파악해야 상대도 이긴다. 이번 개교 70주년 특집 기사에서는 우리 대학교의 찬란한 스포츠 역사를 되짚어봄으로써 '스포츠 명문 동아'의 위상과 발전 가능성을 가늠해보도록 한다.

 

▲ 1996년 전국체전 결단식을 하는 우리 대학 선수들.

 "서울에서 부산대는 몰라도 동아대는 안다"고 할 정도로 우리 대학 선수들에 대한 입소문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복싱의 손영찬·양석진·김현치, 세계복싱평의회(WBC) 챔피언 출신인 박찬희,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첫 금메달리스트인 레슬링 선수 양정모, LA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유도의 하형주(현 예술체육대학장), 통쾌한 발차기로 아테네 올림픽에서 KO승을 거둔 문대성, 우리나라에 이종격투기를 알린 최홍만, 국가대표 수비수로서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김태영 등 이름만 들어도 알아주는 유명선수들이 우리 대학을 거쳤다. 그리고 지난 8월, 우리 대학은 리우 올림픽에서 불굴의 의지로 동메달을 따낸 김태훈 선수를 그 명단에 포함하는데 성공했다.

 이처럼 전설적인 선수들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선수 개인의 기본 역량도 필요하지만, 많은 학생을 관리해야 하는 대학의 특성상 인재양성을 위한 조직 또한 탄탄하게 구성돼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 대학 스포츠단(단장 우진희)이다. 1948년 체육부 창설을 시작으로 꾸준히 스포츠의 기틀을 잡아나가던 우리 대학은 지난 2014년 체육부를 스포츠단으로 명칭 변경했다. 현재는 △야구부 △축구부 △유도부 △육상부 △태권도부 등을 비롯해 총 10개의 부를 두고 있다. 각 부의 역사나 창단 배경은 제각각이지만, 체육인을 꿈꾸는 학생들이 동고동락하며 최대한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 1996년 천마기 전국 대학 야구대회에서 우승한 야구단

'나갔다 하면 우승'이었던 야구부
 지금은 많은 이들이 한국야구라고 하면 프로야구를 떠올리지만, 실은 그 역사의 깊이가 대학야구를 따라가지 못한다. 한국 대학야구의 첫 시작은 1946년 조선대학야구연맹이 결성되면서부터다. 그 해 제1회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가 개최되면서 대학야구가 점차 활기를 띠는 듯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 휴전협정 때까지 빛을 보지 못했다. 그 후 1955년 대학야구연맹이 대한학생야구연맹으로 개칭함에 따라 고교야구와 대학야구를 함께 주최했다.

 우리 대학 야구부 또한 그 역사의 선두에 있었다. 1946년 개교를 하면서 야구반이 창설되고 2년 뒤인 1948년 야구부를 정식 창단했다. 1954년 제1회 대한학생야구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둔 야구부는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춘·추계 전국대학연맹전 등에서 준우승과 우승을 거듭했다. 출전이 곧 우승이었던 야구부는 창단 이후 현재까지 70회에 가까운 입상실적을 이뤄냈다. 2011년 제66회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이후로 우승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있던 야구부는 지난달 11일 열린 '2016 한국대학야구연맹회장기 전국대학야구대회'에서 성균관대를 꺾고 우승하면서 다시금 그 명성을 회복하고 있다. 야구부 이재헌 감독은 "대학 당국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해줘서 큰 힘이 됐다"며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고생을 많이 했고, 이기겠다는 의지도 강해서 우승한 것 같다"고 말했다.

 KBO 리그에 진출한 우리 대학 출신 선수도 다수다. 현역에는 롯데 자이언츠 소속 신본기와 이정민, 김대륙, NC 다이노스의 용덕한, 한화 이글스의 주현상 등 각 팀에 많은 선수들이 포진돼 있다. 지난해까지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맡았던 이종운, 두산 베어스 감독에서 현재는 해설가를 맡고 있는 김진욱, 명예 경영학 학사 학위를 받은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 등 지도자의 길로 나선 이들도 있다.

 하지만 야구부가 항상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프로야구에 밀려 터전을 잃었던 적도 있다. 지난 2011년 NC 다이노스가 창단되면서 야구부는 무상으로 사용하던 진해 구장을 3년간 사용하지 못해 떠돌이 생활을 했다. 바로 다음해인 2012년에는 축구부 등과 함께 존폐 위기를 맞기도 했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전용구장이 없어 고등학교 운동장을 남는 시간에 부탁해 빌려 썼다. 현재는 학교의 지원으로 진해 구장에서 훈련 중이다. 이재헌 감독은 "학원 스포츠의 축소는 야구부만의 일이 아니기에 스포츠인으로서 안타까웠다"며 "좋은 환경에서 선수들이 운동할 수 있다면 바랄게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학생들에겐 강의가 우선인데, 전용구장이 학교와 멀다보니 불편해하는 것 같다"며 "구장이 학교와 가깝다면 일반 학생들과도 잘 어울릴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올해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야구부는 제4회 총장기 야구대회를 준비 중이다. 이재헌 감독은 "야구부를 잘 모르는 학생들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이번 경기 때 많은 학생들이 서울까지 올라와 응원을 해줘서 감동을 받았다"며 "경기가 있을 때마다 동아 가족들이 함께 뭉쳐 즐겼으면 한다"고 전했다.

 

 

▲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고 시상대에 선 양정모 동문.

레슬링부, 건국 이후 최초 금메달 영광

 레슬링부 역시 1963년 창설 이후 많은 유명 선수를 배출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정모 선수, 1984년 LA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손갑도, 1986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 김영구, 이삼성 등이 대표적이다.

 건국 이후의 최초 금메달을 우리나라에 안겨준 양정모 동문은 처음부터 레슬링 선수를 꿈꾸지는 않았다. 양 동문은 지난달 2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연히 체육관에 갔다가 체구가 작아도 할 수 있다는 말에 레슬링을 시작하게 됐다"며 웃었다. 우리 대학과의 인연은 고등학생 때 전국체육대회에 나가 자유형·그레코로만형에서 2관왕을 달성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스포츠계는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다. '프로 선수'라는 개념 자체가 낯선 때였다. 양 동문은 "재학 당시에는 시간적 제약이 많이 없어서 오히려 지금보다 나았던 것 같다"며 현재 선수들의 부족한 훈련 시간을 아쉬워했다.

 레슬링부는 2013년과 2015년 전국 체전에 출전해 각각 F74Kg과 F125kg에서 1위를 이끌어 내는 등 각종 대회를 석권하고 있다. 양 동문은 "우리 대학은 스포츠 명문 사학의 연륜이 있다"며 "앞으로도 좋은 선수들을 배출하려면 장학생 TO를 늘리는 등 레슬링부에 대한 대학 당국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유도부, 종주국 일본도 기죽였던 실력
 유도부 역사도 마찬가지로 개교와 버금갈 정도다. 우리 대학은 1956년 유도반 창설에 이어 1961년 정식으로 유도부를 창설한 이후 많은 동문을 탄생시켰다. 지난달 열린 리우 패럴림픽에서는 우리 대학 출신 이정민 선수가 -81kg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 1996년 전국체전 결단식을 하는 우리 대학 선수들.

하형주 예술체육대학장 역시 유도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하 교수는 선수 시절 우리나라 최초로 유도 국제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정삼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조재기 교수에게 지도를 받았다. 하 교수는 강도 높은 훈련을 거쳤던 태릉선수촌을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LA 올림픽에 나가기 전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하 교수는 "훈련이 힘들기도 했지만 금메달 유력후보들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너무 커서 부담이 됐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훈련 여건 또한 지금보다 열악했다. 당시 유도 매트는 지금처럼 좋은 소재가 아닌 짚으로 엮어 만든 다다미였다. 그래서 발을 곧잘 다치기도 했다. 하 교수의 귀에도 영광의 상처가 남아있다. 일명 '만두귀'라고 불리는데, 귀 모양이 꼭 만두처럼 부풀어 있다고 해서 생긴 단어로 레슬링이나 유도 선수들의 직업병이다. 하 교수는 "유도는 누워서 하는 기술이 많다보니 모세혈관이 터져 그대로 굳어버린 것"이라며 "나는 그래도 귀가 예쁜 편"이라고 웃음을 지었다. 또한 "동아대는 내 터전이자 삶의 전부"라며 학교와의 깊은 인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찬란했던 역사와 상반되게 유도부는 존폐위기를 맞고 있다. 2013년부터 3년간 신입 부원을 받지 않아 현재는 4학년 학생 6명만 남아 있는 상태다. 유도부 임도엽 감독은 "이전에 비해 성적이 안 나온다는 얘기들이 있어 그런 것 같다"고 밝혔다. 소속 학생이 많을 때는 16명까지도 있었지만, 지금은 3개 체급밖에 없어 수적으로 경쟁력이 약하다. 그마저도 전국체전에 나가기 위해서는 선발전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상황은 더 어렵다. 임 감독은 "무엇보다 선수 수급이 가장 시급하다"며 "훈련할 때도 학생 수가 많을 때와 적을 때의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전통 깊은 유도부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소식에 많은 유도부 동문들이 아쉬워하고 있다"며 "올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리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유도부는 허가에 따라 2019년부터 다시 신입생을 뽑을 예정이다.

 

"인성과 지적 호기심 갖춘 체육인 양성할 것"

 우리 대학 스포츠의 위상 약화에 대해 하형주 교수는 학문의 하향평준화를 지적했다. "스포츠가 학교 홍보의 역할을 도맡았는데, 상대적으로 다른 학문이 빛을 못 보니 한때 대학 당국에서 지원을 축소했던 적이 있다"며 "지방대의 영향력 하락 등 여러 상황이 겹쳐 좋은 선수를 발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는 명성 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 교수는 한석정 신임 총장과 뜻을 같이해 '1인 1기'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체대 건물에 훌륭한 우리 대학 출신 선수들의 사진을 건 '스포츠 명예의 전당' 또한 조성할 계획이다. 하 교수는 "기본적인 인성과 지적 호기심을 갖고 '동아 젠틀맨쉽'이 함양된 체육인을 양성하고 싶다"고 전했다.

임정서·배아현 기자
〈사진제공 = 교사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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