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별과제 잔혹사
조별과제 잔혹사
  • 주희라
  • 승인 2016.11.1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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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플하다 도망친 이 학생을 잡아주세요."

 한 여성의 몽타주가 인쇄된 대자보 사진이 SNS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학생이 쓴 해당 대자보에는 "발표를 맡은 조원이 발표 당일 잠수를 타고 SNS에 사진을 올렸다"며 "경희대 내에서 몽타주와 같은 사람을 보신다면 신고해달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 게시물은 200만이 넘는 좋아요를 받았고,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조별과제 경험을 떠올리며 대자보의 내용에 댓글을 달았다. 이후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학생들이 몽타주의 영향력에 대한 실험을 위해 대자보를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들이 '팀플하다 도망친 학생'의 몽타주에 공감한 이유는 뭘까. 대학생들이 실제로 조별과제를 진행하면서 겪는 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조별과제와 무임승차

 조별과제는 조원들이 협력해 과업을 달성하는 과제다.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모든 조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모든 조원이 공평하게 역할을 분담하고,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조별과제에서 소수의 학생이 과제 대부분을 떠안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결과물에 대한 점수는 모든 조원에게 똑같이 부여되는 경우가 많다. 한 조원이 맡은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음에도 다른 조원들의 노력으로 결과물의 성과가 좋다면, 그 불성실한 조원까지 함께 높은 학점을 받는 것이다. 조별과제의 결과물은 공동 생산물이기 때문에 누가 더 열심히 참여했고, 누가 불성실했는지는 점수에 반영되지 않는다. 우리 대학 김보경(신문방송학 2) 학생은 "조별과제를 하다보면 맡은 일을 대충하는 조원이 있다"며 "결국은 대충 한 조원도 열심히 한 조원과 같은 점수를 받게 되니까 속상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이 대학 조별과제에서 많이 발생하다보니 열심히 하는 조원에게 묻어가려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바로 '무임승차자(Free rider)'가 그것이다. 조원으로서 맡은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다른 조원의 노력에 기대는 행동을, 차비를 내지 않고 차를 탑승한다는 의미의 '무임승차'에 빗댄 것이다.

 학생들은 공감할 수 없는 조별과제가 있는 이유

 학생들의 불만과 원성이 자자하지만, 조별과제는 여전히 대학가에서 자주 쓰이는 과제 형식이다. 조별과제를 통해 다양한 학습가치를 배울 수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조별과제는 협동심,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리더십 등을 기를 수 있도록 해준다. 조별과제에서 생기는 갈등을 협력을 통해 해결하면서 그러한 능력들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또 교수의 강의를 받아 적고 암기하는 수동적 공부가 아닌, 강의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스스로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발표함으로써 자기 주도적인 공부가 가능하다. 팀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강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학생도 학습 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우리 대학 남창우(교육학) 교수는 "조별과제는 팀워크 기술, 협업능력과 현실에서 맞을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맥락에 맞게 대처할 수 있는 문제해결력을 키울 수 있게 해준다"며 "조별 과제 수행 중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갈등조정 능력을 함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조별과제가 순탄하게만 이뤄진다면 학생들이 얻어가는 학습 가치는 크다. 하지만 과거 조별과제를 해본 경험이 있거나, 하고 있는 학생들이 모두 그 가치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안은수(경영학 2) 학생은 "조별과제가 협동심을 기르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조원들과 과제를 완성하는 것이 힘겨워 협동심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조별과제를 진행하면서 생기는 조원들 간의 갈등과 불신은 협동심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학생들은 조별과제로 인해 협동심보다는 팀 작업에 대한 거부감만 늘어간다. 때문에 수강신청을 할 때 강의계획서를 보고 조별과제가 없는 강의에 등록하는 학생도 있다. 양수현(경영정보학 2) 학생은 "수강신청을 할 때 조별과제의 유무를 고려하는 편"이라며 "할 수만 있다면 조별과제가 있는 강의는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뻔한 조별과제가 아닌 Fun한 조별과제

 이처럼 조별과제는 학생들에게 기피대상 1호다. 어쩔 수 없이 조별과제를 마주했을 때 학생들은 '빨리 해치우자'는 마음으로 조별과제에 임한다. 조별과제를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는 마음보다는 어렵고 힘든 과제를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과제를 해결한다. 여기에 형식마저 딱딱하고 재미없다면 학생들의 거부감은 더욱 커진다. '한번 보고 말 사이'라는 생각으로 조별과제에 임하는 조원들은 자연스레 각자의 역할에 소홀해진다. 때문에 조별과제의 진정한 목적인 협동심, 커뮤니케이션 능력 향상이나 자기 주도적 학습 효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어려움을 참고 조별과제를 하는 것 외에 방법은 없는 것일까.

 조별과제 자체를 없앨 수 없다면 조별과제의 방식을 바꿔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난 2014년 1월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6부에서는 한 수도권 대학의 독특한 강의를 소개했다. '유쾌한 이노베이션'이라는 이름의 강의는 수업 대부분이 학생들이 조별로 준비한 다양한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된다. 강의 시간에 교수는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이렇게 조별활동을 강조한 수업 방식은 시험 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시험문제에는 "조원의 이름을 통해 거리가 먼 순서대로 적으시오.", "최고의 조원을 적고 그 이유를 적으시오." 같은 조별활동과 관련된 질문이 있다. 두 질문 모두 조모임을 자주하고 조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한양대의 '유쾌한 이노베이션' 강의는 조별과제를 강조하면서도 독특한 시험 출제 방식으로 학생들의 조별과제 참여도를 높인다.

 결과물보다는 조원들끼리 소통하고 협력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수업방식은 결국 조원들의 참여도를 높이고, 좋은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게 한다. 동시에 잦은 만남을 통해 조별과제에 대한 학생들의 거부감도 감소시킨다.

 

 우리 대학의 독특한 조별과제

▲ EBS 다큐프라임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중 한 장면

독특한 조별과제 형식으로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인 강의는 우리 대학에도 있다. 현승용(경영학) 교수가 진행하는 강의는 독특한 조별과제로 유명하다.

 현승용 교수는 조별활동을 위한 인터넷 카페를 운영한다. 각 조는 매주 조모임을 가지고 인증사진을 인터넷 카페에 게시한다. 인증사진과 함께 조모임에서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올린다. 조모임을 통해 자주 조원들과 만나다보니 자연스레 조원들끼리 단합심이 생긴다. 강의를 수강한 신건영(경영학 4) 학생은 "조모임을 하면서 친해지니까 다들 '열심히 하자, 잘하자'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조별과제보다 힘들긴 하지만 조원과의 소통을 통해 단결되는 느낌이 있었다"며 "조원들과 친해지면서 결과물도 더 잘 나왔다"고 말했다. 이러한 방식은 목적 달성을 위한 일회용적 관계라는 인식이 강한 조별과제를 친목 도모의 장으로 만들어 협동심, 커뮤니케이션 능력 향상이라는 조별과제의 목적을 달성한다. 현승용 교수는 "이왕 조별과제를 하는 거 더 재밌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조원들끼리 친해져서 강의실 밖에서도 인사를 하고 지내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친분이 형성되고 협동심이 생겨 '열심히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다보니 수업이나 다른 조의 발표에 대한 집중도도 올라간다. 질문이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레 자기 주도적인 학습도 가능해진다. 신건영 학생은 "발표 이후에 발표에 대한 질문과 추가적인 설명을 인터넷 카페에 올린다"며 "인터넷 카페를 통해 다른 학우들과 활발한 피드백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별과제 결과물 평가도 다른 조별과제와 차이점이 있다. 같은 조라고 해서 모든 조원들의 발표 점수가 똑같지 않다는 것이다. 결과물은 수강자들의 호응성, 피드백, 팀워크를 포함한 6가지 항목을 통해 평가된다. 또 학생들이 조발표 질문 시간에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열심히 한 조원을 추천하고, 발표를 잘한 사람과 유용한 질문을 한 사람을 추천한다. 추천을 받는 학생들에게는 추가점수가 부여된다. 현승용 교수는 "교수가 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가르치고, 학생들의 노력을 존중하면서 정확히 평가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발표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위해서 6가지 항목으로 나눠서 평가한다"고 전했다.

 조별과제의 진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틀에 박힌 조별과제 형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결과물 중심의 평가보다는 조별활동 과정을 중점으로 평가하고, 학생들의 적극적인 조별활동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남창우 교수는 "온라인 학습 커뮤니티 등을 활용하여 학습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독려하고, 이를 성적에 반영한다면 조별과제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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