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를 잊은 학문에 미래는 없다
기초를 잊은 학문에 미래는 없다
  • 김동빈 기자
  • 승인 2016.11.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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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에 버려진 기초학문, 꾸준한 지원 필요

 '도쿄공업대학 명예교수 오스미 요스노리,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올해도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의기양양한 그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 언론과 국민들은 씁쓸함을 느끼는 한편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못하는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자율적인 주제를 가지고 기초연구를 할 연구환경의 부재, 짧은 연구비 지원 기간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2016년 예산에 따르면 약 19조 원 중 기초연구지원비는 6%가량 밖에 안 된다. 대부분의 연구개발비는 국가가 정한 주제에 대한 사업인 국책사업이나 신제품 개발 등 실용적인 방면에 들어간다. 그리고 대부분 연구비 지원기간이 짧으면 3년, 길어야 7년이라 연구원은 안정적으로 연구에 집중하지 못한다. 이런 기초연구에 대한 홀대와 더불어 제기된 것이 기초연구를 하려는 사람을 양성하는 대학의 교육 현황, 더 나아가 기초학문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문제다.

 

기피되는 기초학문

 기초학문이란 각종 분야에 있어서 기초가 되는 학문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학문을 말한다. 인문계에서는 철학, 사학 등을 포함하는 인문학을 말하고, 자연계에서는 수학, 물리학, 지리학 등 자연과학을 기초학문이라고 한다. 이들 자격을 갖추려면 오랜 시간 투자가 필요하고 높은 지식을 요구하기 때문에 대학에서 인기 없는 학과로 꼽히곤 한다. 기초학문의 높은 난이도는 해당 학과에 들어가도 학문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 방해가 된다. 김문주(수학 1) 학생은 "나를 비롯한 많은 친구가 수학의 중요성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냥 성적을 받으려면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기초학문 중에서도 인문학 계열의 학과는 취업률마저 낮아 원서를 쓰는 기간이 되면 기피대상이 된다.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을 묶어서 부르는 단어) 학과는 피해라'는 말은 예전부터 입시원서를 쓸 때마다 나왔고 지금도 그렇다.

 자신이 원해 비인기 학과에 들어가더라도 취업이 여의치 않아 전공 살리기를 포기하는 현상도 보인다. 지난 2015년 10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청년취업아카데미의 대학 교과개편 유도효과 및 인문사회계열 취업지원중심 개선방안연구'에 따르면 아카데미에 지원한 인문계열 학생 중 57.1%가 전공과 관련된 취업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자연계열 학생은 65.4%로 나타나 약 10% 포인트의 차이를 보였다. 또한 인문계열 학생은 '취업을 위해 이공계 교육을 받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절반 이상이 그렇다고 답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일부 기관뿐 아니라 대부분의 대학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2000년대를 지나면서 출산율 저하로 대학 입학자가 줄었고, 교육부의 지시로 대학들은 등록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릴 수 없게 됐다. 각 대학은 운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학과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학과 통폐합으로 학사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정부에서 실시하는 재정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연관성이 부족한 학과끼리 통폐합을 단행하기도 했다. 학과 통폐합의 기준은 주로 취업률이기 때문에, 기초학문을 배우는 학과는 상대적으로 경쟁에서 불리한 것이 현실이다. 2016년 국정감사 발표 자료에 의하면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사업(프라임사업)'에 선정된 총 21개 대학에서 정원이 조정됐다. 5,351명의 대학생 중 기초학문 분야에서 총 4,105명이 줄어들었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높은 공학 분야는 4,856명 늘어났다. '기초학문과 지원금을 바꿨다', '대학교는 더 이상 지성의 요람이 아니라 직업교육학교다'라는 목소리가 매년 끊이지 않는다.


"그거 해서 어떻게 먹고 살래?"

 "자녀분이 순수 예술이나 철학을 전공했다면 걱정하셔도 좋습니다. 자녀분들이 졸업장을 들고 취직할 곳은 고대 그리스뿐이거든요." 2011년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이자 사회자인 코난 오브라이언이 미국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다트머스대학 졸업식에서 한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기초학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기초학문을 연구하는 직업을 가지면 흔히 "그거 해서 어떻게 먹고 살래?"라는 걱정 섞인 말을 듣기 쉽다. 이런 우려는 기초학문에 대한 편견과 취업과 관련된 우울한 통계 결과로 더욱 심화된다.

 

지난 2014년 12월 한국교육개발원이 발간한 『교육개발』 제190호에 따르면 2014년 인문계 졸업자의 취업률은 45.9%로 나타났다. 자연계 졸업자의 취업률도 55.6%로 교육계(63.6%)와 의약계(72.8%)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였다. 기초학문 학과의 학생이 학과와 연계된 취업을 하기 위해선 대학원 진학이 필수적인데, 대학원 진학은 취업률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기초학문 관련 학과의 취업률은 예체능 관련 학과와 함께 하위권에 머무른다. 특히 인문계열은 공학 계열과 비교해 취업이 불리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어 더욱 상황이 힘들다.

 이외에도 좁아지는 취업 시장과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자 하는 청년들의 열망 등은 기초학문을 전공으로 하는 학생들의 의지를 꺾는다. 인문계 학생은 취업에 유리한 자격증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는 경영학을 복수전공하거나 교직 이수로 눈을 돌린다. 자연계 학생은 당장 취업 가능성이 있는 공학 계열로 전과를 검토하기도 한다. 우리 대학교 박지원(사학과 석사과정 2학기, 기록관리학 전공) 대학원생도 "남 일 같지 않다"며 "나도 학부 시절에 취업 걱정으로 국제학부 일본학을 복수전공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 "동기 중에서도 경영대 계열로 전과한 친구가 많다"며 어려움을 말했다. 전소연(화학 2) 학생도 "먼저 취직한 선배들이나 동기들과 취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강사나 교수 등을 제외하고 기초학문만으로 직업을 구하는 게 힘들다는 말이 많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또 "그러다보니 부전공이나 복수전공으로 길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그마저도 마땅치 않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 많다"고 밝혔다.

 

기초학문 개발을 위한 다양한 노력

 기초학문은 이처럼 취직도 어렵고 학과도 통폐합 우선순위에 들어서 기피되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꼭 필요하다. 서정화(신소재물리학) 교수는 "집을 지으려면 기초공사가 필요하다"며 "우수한 응용과학 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이 먼저 탄탄하게 기반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기초학문보다는 실용 위주의 과목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며 "기초가 없는 실용지식은 쉽게 무너진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전부터 기초학문의 중요성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혁신적인 정책이나 대대적인 지원이 없었다. 최근 들어서야 기초학문을 버리고 실용학문에만 집중한다는 지적이 공론화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기초학문을 공부하고 다듬는 일은 몹시 어렵고 시간이 들기 때문에 공부하는 환경부터 제대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박지원 대학원생도 "학부 시절에는 장학금을 받고 대학원은 교육조교를 하면서 장학금을 받아 다니고 있다"며 "등록금은 해결한다 해도 집을 나와 생활하기 때문에 생활비가 드는데, 부모님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장학금 혜택마저 누리지 못한다면 부담은 더욱 커진다. 부모의 지원이 없다면 스스로 생활비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는 그만큼 공부에 집중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 지난달 11일 인문과학대 4층 창의인문인재양성드림센터에서 '코어사업단' 현판식이 열렸다.
 
 

비용 문제를 해결해도 기초학문을 할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헛수고다. 기초학문을 활성화하기 위해 대학 안팎으로 다양한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우리 대학이 선정된 ' 인문역량강화사업(이하 코어사업)'이 대표적이다. 코어사업은 대학에서 인문학을 부흥하는 것이 목적인데, 우리 대학에서는 고고미술사학과·사학과·한국어문학과 등이 대상 학과가 돼 혜택을 받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학부생이 학과와 관련된 직종에 취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취업 컨설팅과 각종 진로 지도를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학과와 관련된 답사와 학회 활동에도 아낌없는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인문학적 역량을 갖춘 인재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각종 커리큘럼도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박지원 대학원생은 "현재 4학년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TA 사업에 선정돼 혜택을 받고 있다"며 "후배들은 학석사 연계과정으로 5년간 지원을 받고 석사과정까지 할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기회를 얻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기초과학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달 26일 '연구자 중심의 연구 지원 강화' 정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정부가 지정해준 사업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하향식 연구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연구 주제는 기초연구보다 이슈가 되는 신기술 개발이 주력이다. 이는 기초연구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화제성이 떨어지기 전에 성과를 내야하므로 연구 결과의 질적 저하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2009년에 노벨상을 받은 영국왕립학회장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도 지난달 28일 열린 기초과학연구원 설립 5주년 특별강연에서 이를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1900년대 초부터 경제 강국이었지만 과학 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1940∼1950년대부터였다. 일본도 1960년대 경제 강국이 되고부터 30∼40년이 지나서야 과학 강국 반열에 올랐다"며 "이보다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의 기초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선 시간을 두고 장기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미래창조과학부는 연구자들이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연구에 집중하도록 하는 상향식 연구개발 지원을 늘리기로 했다. 또한 장기간 연구하는 연구자에 대한 지원도 늘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비 지원이 증가하면 기초연구에 관심 있는 청년들의 전망 또한 밝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기초가 단단해야 나라가 산다

기초학문은 지금껏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용학문에 밀려왔다. 기초학문의 인기 하락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조지메이슨대 행정학과 스티븐 펄스타인 교수가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우수한 학생들도 영문학이나 역사를 전공으로 택하면 무일푼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미국의 현실을 꼬집었다. 노벨상 수상자를 자주 배출하는 일본도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개발비 중 기초연구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14%에 그쳤다. 그래도 끊임없이 노벨상을 비롯한 권위 있는 상을 받는 연구자를 배출해내고 있다. 미국은 전체 정부 연구비의 47%를 기초연구에 배정하고 있으며, 일본은 대학이 중심이 되어 약 50% 정도가 기초연구를 맡고 있다. 탄탄한 기초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김동빈·배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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