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스크 칼럼ㅣ 추락한 대자보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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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정서 기자
  • 승인 2016.12.06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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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서 편집국장

대자보는 '큰 글씨로 쓴 벽보'라는 뜻으로, 중국 역사에서 유래된 고유명사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부터 민주화를 외치는 학생단체를 중심으로 대자보 문화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간간이 이어지던 대자보 문화는 지난 2013년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으로 다시금 떠올랐다. 당시 고려대 학생이 "수상한 시절에 모두 안녕하시냐"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여 국민들의 여론을 환기했다. 이후 철도 민영화, 불법 대선 개입 등에 대한 정치적 무관심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곳곳으로 확산됐고, 이는 다양한 연구논문의 주제가 될 정도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처럼 대자보는 사회가 알려주지 않는 뒷이야기를 속 시원히 표출함으로써 나름의 정당성과 도덕적 의지를 담은 상징물로 평가돼왔다. 그러나 일각에선 선동에 현혹되기 쉬운 집단행동의 결과물이라는 이유로 대자보를 단순히 지하간행물 쯤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지난달 23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학생회 선거 기간에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기표소 부근 게시판에는 물론, 투표함 바로 뒤편에까지 학생회 후보와 중앙선관위가 쓴 대자보가 덕지덕지 나붙었다. 하지만 이는 대자보 본래의 의미인 '공적 견해 표출'보다, 매 선거기간마다 유권자로 바뀌는 일반 학생들에게 앞다퉈 올리는 일종의 '호소문'에 가까웠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대자보 앞에 서서, 학생들은 선거 과정에서 최소한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고 마치 경쟁하듯 써 붙이던 행태를 봤을 때, 그들이 진정으로 위하는 대상에 과연 유권자가 존재했는지는 미지수다.

 소셜 네트워크의 등장과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이어진 정보 공유망은 오래전부터 수많은 아날로그 매체를 위협했다. 빛을 잃어가는 활자 문화를 최전방에서 아슬아슬하게나마 지키고 있는 것은 대자보다. 대자보는 또한 대학신문과 함께 앞으로도 종이가 '공론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 대자보의 그런 기능과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는 것이 누구인가. 그는 다름 아닌 대자보를 사익 추구에 이용함으로써 공신력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학생들이다.이번 대자보 전쟁으로 학생회 후보 및 중앙선관위가 얻은 효과는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학내 게시판은 개인 혹은 일부 집단의 눈치게임 현장이 아니다. 또한 대자보는 누군가가 규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므로, 학생 스스로가 신중한 자세로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해야 한다.

커다란 종이 위에 펜을 들기 전, 그 한 장이 일으킬 거대한 파장을 고려하는 것만이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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